왕궁, 역사의 발자취 어린시절 ‘토끼와 자라’ 동화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임금이 사는 바다 속 궁은 참으로 화려했었다. 어린마음이었지만 그때 느꼈던 ‘궁’은 부족함 없이 채워진 별천지였다. 학창시절 또 하나의 ‘궁’을 만났다. 수학여행지로 다녀온 경복궁. 그곳에서 나는 어린시절 느꼈던 ‘궁’에 대한 화려함 위에 친구들과의 추억만을 남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 다시 찾아간 ‘궁’은 그 의미가 달랐다. 막연한 동경에서 벗어나 역사의 뒤안길을 걷는 기분이랄까. ‘궁’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겪어야했던 역사적 아픔과 소용돌이, 그리고 문화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나라든 ‘임금이 거처했던 궁전’, 즉 왕궁은 그 나라가 걸어온 역사의 길이다.
국왕 지위처럼 높은 3개의 탑 한여름 방콕시는 변덕스러운 시어머니 마음 같았다. 밤에 비가 쏟아졌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이 열렸다. 방콕의 하이라이트는 방콕시가에 있는 왕궁과 사원방문. 왕궁과 사원이 함께 자리 잡은 70만평의 여정을 꿈꾸고 있노라니 기대가 되었다.
“ 민소매와 반바지, 슬리퍼는 안돼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했던가. 우리 일행은 왕궁 앞에서 옷차림 점검을 받았다. 왕궁에 대한 예우는 어느 나라든 그 격이 다르다. 태국의 경우 또한 왕을 신성시하려는 예우는 극진하다. 왕에 대한 모독죄가 행해진다니 말이다. 왕궁에 대한 기대감은 하늘을 찌를 듯한 3개의 탑에서부터 시작됐다. 하늘을 향한 뾰쪽하고 날카로운 탑이 주는 위압감을 느끼며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댔다. 하지만 카메라에 모두 담을 수 없는 탑은 태국왕의 지위만큼이나 높다. 1782년 라마 1세가 세운 궁전, 그리고 궁전 옆에 자리 잡은 사원. 뾰쪽한 타이식과 금박을 뒤집어 쓴 스리랑카 식 그리고 크메르식과의 조화. 자신의 해탈을 중요시 하는 소승불교와 어떤 맥락을 하고 있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태국의 심장 에머랄드 사원
왕궁 안에서 여정을 즐기려니 정신이 없었다. 벽화 또한 휘황찬란했다. 벽화마다 새겨진 동물 형상을 가이드는 설명했다. 태국의 모든 길은 왕궁에서부터 시작된다고나 할까. 이 때문에 태국사람들이 생각하는 왕에 대한 예우는 아주 절대적이다. 심지어 국왕탄생일이 명절로 지정되었을 뿐 아니라 지폐는 물론 태국 어디를 가든지 국왕의 사진이 걸려 있다. 한때 우리나라에도 관공서에 대통령 사진을 걸어 놓던 때가 있었다. 어찌 생각하면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 최고 통솔자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신만이 가능한 것이거늘, 태국사람들이 아직도 국왕을 절대적인 존재로 믿고 있음이 아이러니하다.
왕궁은 태국의 심장부였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에머랄드 사원. 여름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에머랄드사원 입구는 북새통이다. 사원이라지만 엄숙한 분위기는 찾아 볼 수 없고 수도할 만한 여건도 없다. 그저 끊임없이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발길과 에머랄드 불상을 보려는 인간의 속된 마음이 넘실거릴 뿐.
에머랄드 불상은 영원히 살고 싶은 파라오의 욕망은 아닐까?
딸아이와 경내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상 앞에 앉아 있었다.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했다. 어두컴컴한 단상 위에 에머랄드 불상을 보았다. 불상은 생각보다 왜소하고 작았다. 반짝거림도 없었다. 어쩌면 자신의 해탈을 추구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마음보다도 더 순수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불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불상이 최고의 빛을 발하며 에머랄드처럼 귀하고 귀하다고 착각한다. 그 에머랄드빛을 자신의 가슴속에 담아가기를 원하는 것은 아닌지.
국보 제1호 지정될 만큼 태국사람들의 보물이 된 에머랄드 불상. 나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굳이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차별을 두는 것은 아니지만 불교를 국보로 삼고 국민의 위에 국왕이 존재하는 태국. 하지만 그 태국의 에머랄드 사원은 단지 국왕의 휴식처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불상을 바라보며 무엇을 얻는가? 딸아이와 나는 서둘러 사원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나는 사원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부처를 찾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누각, 그리고 벽화, 태국의 많은 의례행사가 거행되는 환상적인 궁전. 그 장엄하고 환상적인 유럽풍들의 건축양식을 바라보며 나는 허전함을 느꼈다. 지금쯤 방콕시가지도 계절이 바뀌고 있을까? 계절이 바뀔 때마다 국왕이 불상의 옷을 갈아입힌다는 에머랄드 불상. 내가 본 태국의 ‘궁’에서는 근대화의 아버지로 일컫는 국왕의 욕망이 아직도 꿈틀거렸다. 그것은 영원히 살아남고 싶어 하는 파라오의 욕망이 아닐는지. 즉 ‘에머랄드 불상이 혹 국왕 자신을 형상화한 것은 아닐까’ 라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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