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수수, 옥수수 그리고 콩. 바이오에탄올이 세계적 화두다. 국제유가 배럴당 86달러 시대, 석유고갈과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대체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 에탄올 생산국가인 브라질과 미국은 물론 일본, 중국 등 이미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에탄올정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 석유품질관리원도 내년 8월 바이오에탄올 도입을 위한 연구를 마감한다. 상용화를 염두에 둔 조치다. 그러나 곡물에탄올은 빈곤심화, 노예노동 등 또 다른 차원의 환경·인권문제를 낳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세계적 논쟁이 된 바이오에탄올의 명암을 살펴보기 위해 브라질·미국·멕시코 3개국을 현지 취재했다. '곡물에탄올 전쟁, 바이오연료의 명암' 10부작 시리즈 세번째에서는 한 환경운동가의 분신과 브라질 내부의 에탄올논쟁을 다룬다. 이번 취재에는 이유진 녹색연합 에너지기후변화팀장이 동행했다. 현지 통역은 공흥식 '이벤트브라질' 대표가 맡았다. [편집자말] |
"그날은 '판타날 에탄올공장 건립 금지' 집회가 있던 날이었다. 그와 나는 여러 친구들과 함께 시위대에 섞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얘기 도중 그가 불쑥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잠깐만 맡아달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잡담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보도블럭 왼편에서는 시뻘건 불기둥이 치솟고 있었다. 소화기를 찾아 뿌렸지만 그는 이미 양팔을 벌린 채 숯덩이가 돼 있었다. 내게 맡긴 서류는 11통의 유서였다. 판타날을 보전하기 위해 내 인생 전부를 걸었지만 한계를 느낀다, 실망스럽다는 게 핵심이었다."프란시스코 안셀모 데 바로스. 그는 30년간 판타날 보호운동을 벌인 환경운동가다. 그의 친구 도글라스 변호사는 벌써 2년 전 일이 됐는데도 또렷이 그의 최후를 기억하고 있었다.
65세 일기로 생을 마감한 환경운동가 안셀모. 그는 2005년 11월 12일 하늘이 높다랗던 어느 평범한 토요일의 오후, 이승과 안녕했다. 아마존과 마찬가지로 판타날도 지구의 허파라고 강조해왔던 사람. 그는 세계 최대의 습지 판타날이 사라지는 날 지구의 생명도 연장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늘 전달해왔다.
인생을 전부 건 싸움, 그리고 분신
가톨릭국가의 특성상 자살이 죄악시 되어있는 브라질에서 환경운동가가 분신을 결행한 이유는 뭘까. 왜 스스로 죽음을 택해 판타날을 구하려 했을까. 취재진은 지난달 21일 오전 8시, 그의 분신 2주기를 기념해 건립된 생태공원 개장식에 참석해 그 답을 찾고자 했다.
"그는 깜뽀그란지의 대표적 지식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가 온몸에 시너를 붓고 분신하게 된 데는 좌파정권인 룰라정부와 손잡은 제까 도 뻬떼 전 마또그로수 도 술 주정부 주지사가 2003년 사탕수수 에너지 생산 확대정책을 펴면서 판타날에 에탄올공장 건립을 허락했기 때문이죠. 판타날을 헤치려는 그 어떤 기도와도 싸웠던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안셀모와 함께 1970년대 환경단체 후코나미스(FUCONAMS)를 세워 활동해온 일본인 친구 곤다가 말했다.
곤다와 안셀모·도글라스 등은 1970년대 록펠러재단이 판타날에 에탄올공장을 건립을 추진할 때부터 반대운동을 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활동덕에 판타날은 30년간 조용했다. 적어도 2000년대 룰라정부가 공격적인 에탄올정책을 펴기 전까지 말이다.
룰라정부의 핵심인사 중 하나였던 제까 도 뻬떼 주지사는 2003년 판타날에 에탄올공장 건립을 추진했고, 이 정책은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질주했다. 후코나미스를 비롯한 환경단체들이 시위와 반대기고, 서명운동 등 별별 활동을 다 했지만 끄떡하지 않았다.
안셀모는 환경운동가들의 노력이 수포에 불과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죽음으로써 항거하는 방법이 제일 빠르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는 브라질 국민들의 가슴에 '실망'이라는 단어를 남기고 불길 속으로 산화해 갔다.
"지구가 푸른 숲을 유지하게 해주시기를"브라질 중부 깜뽀그란지에 조성된 '안셀모 생태공원'에서 그의 추도행사가 진행되던 날, 많은 어린이들이 멀리서 자유롭게 뛰놀고 있었다. 아마도 안셀모는 공원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처럼 미래세대가 영원토록 판타날의 자연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0여명의 초등학생들이 입을 모아 그의 죽음을 노래로 추도했다. 노래제목은 '황야의 달'.
인간이 환경을 파괴해서
황야를 만들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항상 푸른 숲을 유지하게 해주시고
이 땅에 꼭 평화가 있기를.어린아이들의 청아한 노랫소리가 공원 전체에 퍼질 때, 그의 환경운동 동지인 마리아 엘레나 브란쉐는 기자를 찾아와 부르르 떨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녀는 "제까 전 주지사가 판타날에 에탄올공장 건립을 허가하는 법령을 서둘러 추진하는 바람에 고귀한 생명이 숯덩이가 됐다"며 "결국 정치권이 한 환경운동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어서 그는 "판타날 영향권 아래에 있는 파라과이 강 유역에서는 지금도 약 200헥타르가 넘는 사탕수수를 생산하고 있다"며 "생태계의 보고인 세계 최대의 습지 판타날을 죽이고 그 자리에 사탕수수농사를 지어 대체에너지를 만든다는 게 과연 환경적인가"라고 비판했다.
안셀모의 아내 이라세마 산파이오 바호스도 "에탄올이 전세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며 "판타날 산림파괴, 사탕수수 재배경작지 확장으로 인한 숲 훼손, 산업화에 따른 수질오염, 동식물의 생명위협 등은 결국 아마존 밀림도 파괴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될"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그는 "한때 콩 농사 때문에 강이 죽어갔고, 목초지가 콩밭으로 변하면서 지형변화를 일으켜 결국 인류가 지구온난화와 온실가스를 우려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며 "인간의 필요 때문에 지금껏 많은 자연이 파괴됐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자성적으로 인간이 자연을 향해 최소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성찰해야 한다"고 그윽한 눈길로 말했다.
브라질 당국자들의 반론이같은 환경운동가들의 주장과 달리 브라질정부 당국자들과 정치인들은 룰라의 공격적인 에탄올정책에 찬성하고 있다. 에탄올공장이 들어서면 고용이 창출되고 주정부의 세수가 확대된다는 것이다. 고용창출, 농업경제 회생, 지속가능한 대체에너지 개발 등등 여러 장점들을 열거했다.
아리 리고 마또그로수 도 술 주의회 의원은 82년 판타날 지역의 에탄올공장 건립반대 법안을 의회에 상정, 통과시켰던 주역이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 룰라의 에탄올정책에 찬성한다. 룰라와 같은 정당 소속이 아닌데도 말이다.
"판타날은 큰 강을 정점으로 해서 양쪽으로 흘러내려가는 구조를 갖고 있어요. 샛강들도 엄청나게 많지요. 지금 문제는 파라과이 강유역의 수질오염과 노예노동, 급격한 식량작물의 에너지 작물화 등인데…. 수질오염 축소, 기계농 도입을 통한 노예노동 금지, 식량생산 농토에는 사탕수수 에너지작물화 금지 등을 법으로 갖추면 괜찮다고 봅니다."
브라질은 엄청나게 많은 땅을 갖고 있기 때문에 판타날과 직접 연결되는 지역이 아니라면 사탕수수 에탄올공장 건립을 허락해도 좋다는 주장이었다.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노동자들을 혹사시키지만 않는다면 '따봉(좋다!)'이라며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 올렸다.
에공 크라체케 브라질 연방환경부 지속가능발전국 국장도 "사탕수수 에탄올은 무공해 연료"라며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발전가능성이 있는 대체 에너지가 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소똥이나 깔렸던 척박한 땅이 에너지작물 생산을 위한 비옥한 땅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며 "사탕수수 업자들은 척박한 땅을 비옥한 땅으로 만들어 땅의 리노베이션 효과를 주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룰라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차원에서도 환경을 위해 에탄올정책 추진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소똥이나 깔렸던 땅이 에너지작물 자라는 비옥한 땅으로"이자께우 씨푸리아노 나쓰시멘토 전 브라질 연방 통합부(에너지+내무+과학기술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깜뽀그란지의 호텔 커피숍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70년대 중반 군사정부 시절부터 브라질은 대체에너지 개발에 힘을 쏟았다"며 "브라질이 에탄올생산량 1위가 된 것은 룰라정부만의 성공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화석연료 고갈시대는 모두가 이미 예언했다"며 "현재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왜 에탄올산업에 주목하고 있는지 그것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공세했다. 조지 소로스 같은 세계적인 투기자본가를 비롯 세계의 다국적기업들이 너도나도 브라질 에탄올산업에 투자하고 성장을 기대하는 것도 이 산업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사탕수수는 옥수수보다 8배나 에탄올 산출량이 높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재생가능한 대체에너지로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편으로 에탄올을 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본도 작년부터 0.5%의 에탄올(E5)을 가솔린에 섞고 있다. 2010년까지는 10%로 끌어올린다는 주장이다. 중국도 진행 중이다. 미국도 이미 10%의 에탄올(E10)을 가솔린에 섞어 판다. 에탄올은 공해 제로 수송용 에너지다. 지구온난화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환경과 생태 때문이라고? 돈 때문이잖아"전·현직 당국자들의 이 같은 주장에 환경생태학자는 위험하다는 경고사인을 보내고 있다. 상파울로 우니캄피나스주립대 출신 비토 꼬마르 환경생태학 박사는 "석유시대가 끝나가는 게 확연해지면서 오랫동안 에탄올을 생산해왔던 브라질에 국제사회의 요구와 세계적 압력이 존재한다"며 "세계 다국적기업들은 미국이 추진하는 옥수수 곡물에탄올보다 8~10배의 경제적 이익이 있는 사탕수수 에탄올에 훨씬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브라질이 에탄올을 선택한 것은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며 "에코시스템이 발동돼도 브라질에서 사탕수수 재배면적은 앞으로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룰라정부도 에탄올 생산면적을 늘려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환경과 생태를 존중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속내는 경제논리로만 보고 있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사탕수수를 심는 데 들어가는 물 자원, 또 그로 인한 자연생태계 파괴, 토양의 질 저하와 같은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 이 막대한 비용은 현재 에탄올을 팔아서 얻는 금전적 이득에 비해 훨씬 더 크다. 자원이 침식되면 그 엄청난 손해는 모두 브라질이 입게 된다. 당장은 금전적 이익을 얻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브라질에게 훨씬 큰 손해가 될 것이다."
그는 브라질에게 에탄올정책은 장기적으로 국가를 상당한 위기로 몰아갈 수 있는 위험요인이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따라서 그는 "지금 펼치는 정책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며 "사회·경제·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에너지 찾기를 위한 새로운 정책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에서 석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가격이 상승했다. 지금 석유는 길어야 25~30년 쓰면 끝이다.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우려가 있기 때문에 미국도 옥수수로 에탄올을 만든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 이 일은 곡물가격을 상승시켜 가난하고 작은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에너지에 대한 미국의 엄청난 수요가 에탄올 수요를 이끌고 있는데 이것은 정답이 아니다. 우리는 석유나 에너지로부터 독립이 필요하다. 어떤 과학적 방법이 있는지 철저하게 고민해야 한다."
세계 바이오에탄올 생산량 1위 국가 브라질. 브라질은 사탕수수 바이오에탄올로 세계에서 '녹색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별명도 얻었다. 룰라정부는 지난 1월말 '브라질 경제촉진 프로그램'을 내놓고 국영에너지기업 페트로브라스가 지휘해 2007년~2010년 총 174억 헤알을 대체에너지 개발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중 121억은 에탄올 생산과 개발에, 11억9000만 헤알은 바이오디젤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룰라정부는 석유자원 고갈시대에 사탕수수 에탄올로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2003년 폴크스바겐의 토탈플렉스 출시 이후로 브라질 국민들도 가솔린 가격보다 저렴한 에탄올 연료를 선호하고 있다. 2006년 브라질에서 생산된 차량 80만대 가운데 60만대(85%)가 가솔린과 에탄올 겸용이 가능한 플렉스(FFV) 차량이며, 새 차를 구매하려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차를 사고 있다.
취재진이 브라질 꾸이아바와 깜뽀그란지 시내의 주유소에서 만난 시민들은 '가격' 때문에 에탄올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지구온난화 해결에 기여한다는 데도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브라질 취재에서 드러난 바는 사탕수수 바이오에탄올이 생산과정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 때문에 사실상 가솔린에 비해 훨씬 환경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탕수수 수확철이 되면 브라질 상파울로 하늘은 불꽃쇼를 방불케 할 정도로 심각한 소각이 벌어지고 있다.
취재진은 이번 현지취재를 통해 사탕수수 바이오에탄올이 환경보다는 경제적 이익 때문에 발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바이오에탄올이 친환경적이라는 것은 홍보수단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이제 취재진은 옥수수 곡물에탄올로 식량위기를 부른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옥수수 에탄올산업을 확대추진하고 있는 미국으로 떠난다. 다음 회는 미국 워싱턴DC에서 뵙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