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있었다. 학교에선 공부하고 친구들과 놀고, PC방에서 게임도 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농구를 좋아했으며 털털한 성격이었다. 무엇이든 다 알고 있는 선생님을 동경했으며, 나중에 커서 꼭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꿈을 키웠다.
소녀는 10살 때 엄마와 헤어졌다.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중국을 떠나 한국에 갔다. 소녀는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다. 엄마가 '한국'이라는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당분간 엄마를 못 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엄마가 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나라 한국에 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친구들과 떨어지는 것도 싫었고, 낯선 땅에 가는 것도 두려웠다.
하지만 엄마는 한국에 오라고 딸을 설득했고, 소녀도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이 깊었다. 결국 소녀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고향인 흑룡강성에는 외할머니와 아버지가 남았다. 엄마와는 10년만의 재회였다.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엄마를 보는 순간 소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 줄기 눈물만이 소녀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소녀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었다. 어엿한 성인으로 한국생활을 해나가는 22살의 중국동포 학생 김해숙(찐 하이슈)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소녀, 한국에서 알바생 되다제보를 받고 찾아간 전북대학교 앞의 한 편의점. 쉽지 않은 인터뷰가 될 것이라곤 생각했다. 아무리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한국어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인터뷰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것 이상이기 때문이다.
"내, 내가 왜 인터뷰를 해요? 그냥 평범한데…"
"다른 나라에서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해숙씨 말대로 평범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저희 매체의 지향점입니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설명은 쉽지 않았다.
"여기 쓰레기 봉투 좀 주세요."
인터뷰 취지를 설명하고 있는 도중에 손님이 왔다.
"몇 리터짜리로 몇 장 드릴까요?"
손님은 해숙씨의 억양에서 한국 사람이 아님을 느꼈나보다.
"um…garbager…"
힘겹게 영어로 설명을 이어 나가는 손님을 보자니 기자는 한국어 통역을 자처 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한국말로 하셔도 돼요. 손님, 몇 리터짜리 몇 장 필요하시죠?"
손님은 반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100ℓ짜리로, 한 장 이요."
"해숙씨~ 여기 100ℓ짜리 한 장이요."
의도치 않은 도움 덕일까. 해숙씨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줬다. 물론 인터넷 신문에 대한 설명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타국에서의 아르바이트. 그녀의 시작은 어땠을까.
"한국에 온 지는 1년 반 정도 됐어요. 현재는 전북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한글 관련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말하기'는 어느 정도 되는데, '쓰기'가 안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수업을 받고나면 마땅히 할 일이 없는 거예요. 내년에 학교를 다니게 되는데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돈도 벌고, 한국어도 연습할 수 있고 좋을 것 같아서 시작했어요." 아무리 한국어를 잘 한다고 해도 다양한 손님을 상대하고 돈 계산까지 하다보면 분명 어려움이 있을 터. 해숙씨 역시 일을 처음 시작 했을 때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계산을 잘 못해서 다음날 돈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제 돈으로 대신 메운 적도 많았죠. 또 처음 일을 할 땐 손님들이 저를 신기하게 바라보거나, 선입견을 갖고 대할까봐 쉽게 인사도 못 건넸어요. 말을 걸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서 그것이 싫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항상 먼저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간혹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오는 손님에게도 친절하게 답해준단다.
"아, 그동안 엄마는 한국에서 이렇게 힘들었구나"그녀가 일하는 시간은 밤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다. 낮엔 공부를 하고 새벽엔 아르바이트를 해 피곤할 법도 할 텐데, 해숙씨는 마냥 웃음이다.
"물론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아침에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서 잠을 자다가 수업에 늦기도 했죠. 그런데 이제는 괜찮아요. 오히려 이렇게 일을 하다 보니 그동안 엄마가 한국에서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벌었는지도 알 것 같아요. 엄마는 10년을 했는데, 전 이제 두 달 됐는 걸요. 일하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니 한국어 실력도 쌓을 수 있어서 오히려 좋습니다."
인터뷰가 진행된 시각은 새벽 1시. 생각보다 많은 손님이 오갔고, 그중에는 술에 취한 손님들도 더러 있었다.
"일하면서 힘든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술 취한 손님들이 와서 계속 말을 걸 때에요. 할 일이 있는데 카운터 앞에서 말을 시키면 자리를 비울 수도 없고 정말 난감해요."
그 때였다. 편의점 문을 열고 한 손님이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걸음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꽤나 많이 드신(?) 모양이다. 매장엔 순간 긴장감이 돌았다. 다행히 손님 일행이 와서 무사히 데리고 나갔다.
다행이라는 듯, 해숙씨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술취한 손님 중에서도 특히 남자친구 있냐고 몇 번씩 물어보며 귀찮게 하는 손님들이 있어요."
그런 손님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해숙씨가 경험에서 우러난 노하우를 알려줬다.
"이런 저런 얘기 다 필요 없고, 제일 확실한 방법이 있어요. 그냥 '있다'라고 대답하면 돼요. 그럼 그냥 가더라고요. 하하~"
그녀는 하루의 20시간을 미래에 저축한다그녀가 한국에 온 지도 어느새 1년 반이 지났다. 지난 시간이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시기였다면 지금부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좀 더 힘을 쏟고 있다.
"내년부터 학교를 다녀요. 어렸을 적부터 꿈이었던 선생님이 되기 위해 학과도 윤리교육학과로 정했죠. 공부를 시작하면 전문적인 것을 배우니까 한국어 실력도 더 키워야 해요."
해숙씨는 앞으로 선생님을 하면서 한국에서 살고 싶단다. "중국에 아버지랑 외할머니가 있어서 중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가능하면 한국에 남아서 어렸을 적부터 되고 싶었던 선생님이 돼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타국 생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는 일을 마치고 서너 시간 잠을 자면 일어나서 수업을 받으러 간다. 고생했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한시도 게을러 질 수 없다. 해숙씨를 고용하기로 결정한 편의점 사장은 "하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가 무엇보다 강해서 망설임 없이 고용했다"라고 말했다.
24시간 중 20시간을 미래에 투자하는 김해숙씨. 그를 지탱하는 건 바로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선샤인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