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남편이 울면서 전화를 했다. 이제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나도 같이 울면서 그러지 말라고 한 달만 더 희망을 갖고 견뎌보라고 했다. 온 몸의 살이 떨리는 느낌, 알고 있나? 이제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 소말리아 피랍선원 한식호(40·선장)씨 부인 김정심씨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5월 15일 마부노호가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당한 뒤 편히 잠자리에 누워본 적이 없다. 남편 한씨가 "화장실에 갈 때도 총을 옆구리에 찌른 채 간다"며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와 눈을 쉽게 감을 수가 없다. 소말리아 해상에서 한식호씨를 비롯한 한국인 선원 4명이 탄 마부노호가 피랍된지 이날(20일)로 150여일이 넘었지만 여전히 사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전국해상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해상노련), '국민차별반대 소말리아 피랍선원을 위한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소말리아 피랍선원 가족들과 함께 20일 오전 11시 명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집회를 열고 피랍선원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과 모금운동을 펼쳤다. 피랍 159일째... "이제 믿을 것은 우리 국민 뿐이다"
피랍선원들의 가족들은 처음에 정부가 피랍된 이들을 무사히 구출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협상에 불리하니 언론과의 접촉을 자제하라"던 정부의 요청에 협조해왔다. 그러나 아프간에서 피랍된 이들이 41일만에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가족들은 좌절했다. 김씨는 "단단한 동아줄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돈 없고 빽 없는 선원들이라서 나서지 않나는 생각까지 했다"며 정부에 대한 실망을 토해냈다. "협상이 끝난 지 보름이나 지났다. 정부는 우리한테 '섣불리 해적이 요구하는 돈을 줘서 선례를 만들 수 없다'며 해적이 요구하는 돈을 주지 않고 있다. 아프간 사태 때는 특사나 국정원장까지 가서 구해내지 않았냐." 박희성 해상노련 위원장도 "지난번 동원호 사태를 겪었으면서도 아무런 대책도 못 세우고 있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며 "이제 믿을 것은 우리나라 국민뿐이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와의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자 소말리아 해적들은 직접 가족들에게 협박전화까지 걸고 있다. 이날도 서울로 올라오는 KTX안에서 피랍선원 조문갑(54·기관장)씨 부인 최경음씨에게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피랍선원 양칠태(55)씨의 부인 조태순씨는 "해적들이 하루에 2번 이상 가족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오고 있다"며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듣는 순간 섬뜩해진다"며 고통스러워했다. "시민들이 10억원 모아 피랍선원들 구출하자"
해적들이 제시한 협상금은 약 110만불. 우리 돈으로 약 10억원이다. 정부는 마부노호의 선주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해상노련과 시민모임은 협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14일 부산에서 서명운동 및 모금활동을 벌여왔다. 19일까지 모금된 금액은 총 3300여만원. 이 밖에도 부산 지역 대학교들과 부산기독교연합의 약 2억원 가량의 성금을 포함하면 약 3억원의 성금이 모였다. 피랍선원 구출을 위한 서명에도 총 1만2천명 이상이 참여했다. 박 위원장을 비롯한 해상노련 관계자들은 소말리아 피랍사태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서명 및 모금 운동 동참을 호소했다. 지나가는 시민들도 서명에 적극 동참하며 "힘내라"고 격려했다. 책상 위에 놓인 서명판이 순식간에 채워졌다. 서명에 동참한 이지호(17·학생)씨는 "아프간 피랍은 뉴스에 많이 나와 알고 있었지만 소말리아 피랍사태는 사실 오늘 처음 들었다"며 "어서 빨리 선원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윤환(35·서울 동작구)씨도 "해외에서 우리 국민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냐"며 "나한테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한 사람의 생명이 걸린 문제라 생각해서 모금에 동참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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