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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포인트 해변에서 바라본 인도양
 폴포인트 해변에서 바라본 인도양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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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또 빗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타마타브에서 그랬던 것처럼, 폴포인트에도 엄청난 비가 밤새도록 내리고 있다. 정말 웬 비가 이렇게 쏟아질까. 내가 자고 있는 방갈로에서 100m만 내려가면 인도양이 있다. 여름철에는, 그러니까 우기 때는 그곳으로 치명적인 싸이클론이 몰려온다고 한다.

침대에 누워서 퍼붓는 빗소리와 파도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치 폭풍이 오는 것만 같다. 혹시 이 비가 싸이클론으로 변해서 덮치는 것 아닐까. 물론 건기 때는 싸이클론이 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거야 모르는 일 아닌가. 건기에 이렇게 엄청난 비가 퍼붓는데, 건기라고 해서 싸이클론이 오지 말란 법도 없는 것 아닐까?

많은 비가 내리는 휴양지 폴포인트

이 방갈로는 나무로 만든 것이다. 지붕도 나무를 얽어서 덮어 놓았다. 이렇게 쏟아지는데도 용케 비는 새지 않는다. 싸이클론이 덮쳐와도 이 방갈로가 버틸 수 있을까? 침대에 누워서 빗소리를 듣고 있으려니까 온갖 잡생각이 다 든다. 정말 싸이클론이 몰려오면 어떻게 될까? 이 먼 곳에 와서 난데없이 이재민이 되는 것은 아닐까?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아침 7시 30분. 싸이클론이 몰려오더라도 정면에서 맞서고 싶다. 날은 흐리고 하늘에는 구름이 모여있다. 그리고 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비는 밤에 주로 내리고 낮에는 맑아지는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나중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타마타브와 폴포인트 지역은 1년 내내 시도때도없이 이렇게 비가 내린다고 한다. 1년 내내 이런 비를 바라보고 있으면 우울증이 생길 것만도 같다.

폴포인트에서 이틀 동안 쉬었으니 이제 또 이동을 해야 한다. 이번 목적지는 안다시베 국립공원이다. 폴포인트에서 버스를 타고 타마타브로 간 다음에, 거기서 버스를 갈아타고 안다시베(Andasibe) 국립공원으로 갈 예정이다.

나는 시장에서 빵과 국수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기다란 빵은 하나에 우리 돈으로 100원이고, 따뜻한 국물이 있는 국수 한 그릇은 200원이다. 뜨거운 국물이 뱃속으로 들어가니까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이다. 비는 이미 멎었고, 파란 하늘에는 해가 높이 떠있다. 밥을 먹고 한두 시간 동안 빈둥거리던 나는 방갈로에서 배낭을 메고 나왔다. 그때 한 여자아이가 내 앞에 나타나서 목걸이를 내밀었다.

손으로 만든 듯한 목걸이다. 이 아이는 이런 목걸이 수십 개를 팔에 걸고 와서 나에게 사라고 한다. 두꺼운 옷을 입었지만 아이의 발은 맨발이다.

"이거 하나에 얼마니?"

아이는 손가락으로 흙바닥에 숫자를 쓴다. 2000. 그러니까 이천 아리아리다. 우리 돈으로 천원이다. 손으로 만든 목걸이 하나에 천원? 이 목걸이를 산다고 해서 어디에 쓸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폴포인트에 온 기념으로 하나를 샀다. 하나를 사고 이천 아리아리를 건네주었더니, 여자아이는 다른 목걸이 하나를 덤으로 더 준다. 그래서 하나는 목에 걸고 다른 하나는 손목에 둘렀다.

폴포인트를 떠나서 안다시베 국립공원으로

폴포인트 해변의 방갈로 호텔
 폴포인트 해변의 방갈로 호텔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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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를 팔러 온 여자아이
 목걸이를 팔러 온 여자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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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안다시베로 출발이다. 이곳을 떠나면 이제 인도양과도 작별이다. 앞으로 또 인도양을 볼 기회가 있을까? 폴포인트에서 타마타브까지의 미니버스요금은 4천 아리아리다. 1시간 30분을 달려서 타마타브에 도착했고, 타마타브에서 미니버스를 갈아타고 안다시베로 출발했다. 타마타브에서 안다시베까지는 5시간이 걸린다.

안다시베 국립공원은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와 항구도시 타마타브 사이에 있다. 마다가스카르의 많은 국립공원 중에서 수도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이 바로 안다시베 국립공원이다. 그래서인지 이 공원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외국인 여행자도 많고, 현지인들도 많다.

마다가스카르에 있는 국립공원 대부분이 그렇듯이, 안다시베 국립공원도 멋진 경관을 가지고 있다. 안다시베는 라노마파나처럼 열대우림이다. 그 열대우림 자체는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안다시베가 특별한 이유는 그곳에 인드리 원숭이라는 희귀 여우 원숭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오직 안다시베 국립공원에만 살고 있는 종이다. 라노마파나의 황금 대나무 여우 원숭이처럼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이기도 하다.

인드리 원숭이는 마다가스카르의 여우 원숭이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놈이기도 하다. 이 얘기를 거꾸로 표현하자면, 인드리 원숭이보다 더 덩치가 큰 여우 원숭이들은 모두 멸종했다는 이야기다. 인간이 마다가스카르에 상륙한 이후, 주로 커다란 몸집을 가진 여우 원숭이들이 멸종한 것이다.

멸종의 패턴이 이런 식이라면, 멸종의 다음 차례는 인드리 원숭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안다시베 국립공원은 바로 이 인드리 원숭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공원이다. 공원은 무척 넓지만 나 같은 일반여행객들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는 제한되어있다. 그러니까 그 안에서 볼 수 있는 인드리 원숭이의 숫자도 그만큼 한정되어 있을 것이다.

안다시베에 도착했더니 가랑비가 내린다. 안다시베도 타마타브처럼 우기와 건기를 가리지 않고 비가 내리는 모양이다. 나는 배낭을 메고 커다란 방갈로 호텔로 들어갔다.

"방 있어요?"

그러자 호텔의 지배인은 나에게 가격표를 보여주었다. 1만 7천 아리아리 짜리 방도 있고, 7만 아리아리 짜리 방도 있다. 가격이 싼 방은 화장실과 샤워시설을 공동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비싼 방에는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함께 갖추어져 있다. 난 제일 싼 방을 골랐다.

안다시베의 가이드 클로디아를 만나다

폴포인트 해변의 모습
 폴포인트 해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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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포인트 거리의 상점들
 폴포인트 거리의 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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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을 정하고 짐을 풀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 가고, 여전히 비는 조금씩 내린다. 여기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안다시베 국립공원의 입구가 나온다. 나는 우산을 꺼내서 호텔 밖으로 나가려 했다. 누군가 뒤에서 영어로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뒤를 돌아보자 현지인 여자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두꺼운 점퍼를 입었고 작은 배낭을 등에 메고 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다시 묻는다.

"안다시베 국립공원에 갈 거에요?"
"오늘은 늦어서 안 되고 내일 갈 거에요."
"가이드 구했어요? 아직 안 구했으면 내가 해줄게요."


물론 공짜로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살로나 라노마파나처럼 여기에도 가이드와 함께 공원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그녀는 나에게 국가에서 발급해준 가이드 증명서를 보여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클로디아라고 한다.

"트레킹 코스가 어떻게 되요? 비용은 얼마에요?"

안다시베 국립공원에도 주간 트레킹이 있고 야간 트레킹이 있다. 주간 트레킹은 4시간이다. 공원의 입장료는 2만 5천 아리아리, 4시간 트레킹에 필요한 가이드 비용은 3만 아리아리다. 이살로보다는 조금 싼 가격이다. 그래서 난 내일 오전에 클로디아와 함께 4시간 동안 트레킹을 하기로 정했다. 내가 물었다.

"아침 몇시에 출발해요?"
"내일 아침 7시에 여기서 만나서 출발해요. 트레킹 끝나고 돌아오면 아마 12시쯤 될 거에요."


가이드를 구하는 것도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다. 내일은 아침부터 꽤 서둘러야 할 것 같다. 내일 아침에도 비가 올까? 오늘 비가 계속 내리고 내일은 날이 맑게 개기를 바란다. 맑은 날씨에 해가 뜨면 안다시베의 열대우림 속에서 기분 좋게 땀을 흘릴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인드리 원숭이들도 맑은 날씨에 더 많은 활동을 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점점 기대감이 커진다. 그것은 아마도 그토록 보고 싶었던 인드리 원숭이를 내일이면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다시베 방갈로 호텔의 모습
 안다시베 방갈로 호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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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7년 여름, 한달동안 마다가스카르를 배낭여행 했습니다.



태그:#마다가스카르, #안다시베, #인드리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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