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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1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인터뷰 중인 노무현 대통령. 이날 인터뷰에는 오연호 대표기자, 이한기 뉴스게릴라본부장, 황방열 기자가 참석했다.
지난 9월 1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인터뷰 중인 노무현 대통령. 이날 인터뷰에는 오연호 대표기자, 이한기 뉴스게릴라본부장, 황방열 기자가 참석했다. ⓒ 청와대 제공

세 번째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다. 지난 토요일(10월 20일) 청와대 관저에서였다. 남북정상회담 뒷이야기를 들었고,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감상기도 들었다.

- 정동영 후보가 노 대통령을 만나자고 하는데, 화해할 겁니까?
이런 질문도 했다.
- 친노 후보인 이해찬씨가 3등을 했는데, 기분이 어떠했습니까?
조금 있다가, 그에 대한 노 대통령의 답을 들려드리겠다. 그 이전에...

첫 인터뷰가 지난 9월 2일이었다. 그때에는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이 막 시작될 때였다. 손학규·정동영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달리고 있고, 친노 3인방(이해찬·한명숙·유시민)은 아직 후보단일화를 이루지 않을 때였다. 그때 "경선판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 같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노 대통령은 뜻밖에도 이렇게 답했다.

"내 컴퓨터에 '원칙이냐 승리냐'라고 써놓았습니다."

'원칙'이라는 단어는 대통령과의 3번의 인터뷰에서 빠짐없이, 자주 나왔다. 특히 정치인과 지도자의 자질을 언급할 때 그랬다.

노 대통령은 "왜 기어이 대통령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나요?"라고 묻자 "조금 웃기는 이야기이지만"이라면서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이인제씨를 이기기 위해서 전력투구하다보니까 대통령까지 됐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원칙 때문이었단다.

"이인제씨와 끝까지 맞섰던 것은, 그 사람의 정책이나 역량이 나보다 처진다는 이유가 아니라 그가 원칙을 유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칙을 담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당합당 때 김영삼씨를 따라간 것, 거기다가 (1997년 대선에서) 경선에 불복한 것, 그리고 그 당에서 보따리 싸서 다른 당으로 이전해 온 것, 그런 것들이 정치윤리상으로는 하나도 제대로 설명이 안되지요."

노 대통령은 원칙을 지키는 것과 신뢰있는 지도자가 되는 것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고 했다.

"우리가 지도자를 이야기할 때 너무 기능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도자 또는 지배집단이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회 사람들의 윤리의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무엇보다 지도자에겐 신뢰가 핵심적으로 중요합니다. 지도자의 행동에 따라 그 사회의 신뢰수준이 달라질 수 있지요.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약속이 무력화되기 때문에 공약 등 기능적인 기대도 다 배반될 수밖에 없어요. 따라서 보수냐, 진보냐 보다 더 중요한, 더 아래의 토대에 있는 것이 신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그 신뢰를 파괴하는 결정적인 것이 기회주의"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정치는 대의를 말하는 직업"이라면서 "그런데 정치인이 말은 대의를 말하면서 행동은 이익을 좇아갈 때 기회주의가 생기고 신뢰가 무너진다"고 했다.

"그럴 때는 정치가 존립할 수가 없죠. 따라서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행위는 사람들의 가치의식과 윤리를 파괴하게 되는 것이죠. 사람들이 전부 힘센 자에게 줄 서고, 속이려 하고. 연고를 가지려고 하고 비합리적 행동을 하게 되거든요."

노무현 대통령은 신뢰 지키기는 곧 원칙 지키기라고 보고 있었다. 그는 "그 신념은 내 개인사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고 했다. "3당합당한 김영삼씨와 결별하고, 그동안 겪었던 인생이 하도 험악했기 때문에 이런 신념에 집착하고 있지만, 나는 이것이 객관적이고 보편적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원칙과 신뢰 이야기를 앞에서 길게 정리한 것은, 노 대통령이 이번 인터뷰에서 정동영 후보와의 화해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할 때도 바로 그 두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원칙의 문제 들어봐야... 왜 당 깼는지, 왜 나를 출당시켰는지"

-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서 결국 정동영씨가 대통령 후보가 됐습니다. 정 후보가 최근 노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으로 압니다. 정 후보와의 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겁니까?
"절차에 하자가 있어도 그것을 이유로 해서 승복을 거부해서는 안되겠지요. 그러나 승복하는 것하고, 지지하는 것하고, 그 다음에 또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하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영 다른 것도 아니지만."

노 대통령은 "줄줄이 이야기할께요"라면서, 속에 있는 마음을 다 풀어놓았다.

"감정상의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적인 감정, 인간적인 도리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그런 것은 극복해야 합니다. 그걸 가지고 문제 삼을 생각은 없어요. 그건 부차적인 것이고."

그러면서 원칙에 대해 말했다.

"그런데 또 원칙의 문제가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의 가치라든가,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라든가. 스스로 창당한 당을 깨야할만한 그런 이유가 있었는지 들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또 내가 당에서 사실상 쫓겨났잖아요. 나를 당에서 그렇게 할만한 심각한 하자가 나에게 뭐가 있었는지 설명이 되어야지요. 어느 나라에서도 당내 권력투쟁은 있어도 당을 깨버리거나 당의 한 정치지도자를 사실상 출당시켜버린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 원칙에 대한 것은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정동영씨가) 풀어야 합니다."

- 금방 당에서 사실상 쫓겨났다고 말씀 하셨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국민들은 그 당시(2월 28일) 스스로 탈당계를 낸 것으로 아는데요.
"내가 당에서 나올 이유가 어디 있어요? 사실상 쫓겨났지요. 물론 탈당계는 내가 냈습니다만, 사표를 냈다고 다 자기 스스로 나가려고 한 것으로 보면 안되지요. 내 탈당은 자의만은 아닙니다. 정동영씨 등이 탈당하지 말라고 내가 탈당한 측면이 있는 거 아닙니까?"

노 대통령은 "그러나 이런 것들도 지금 내가 내세울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든 나는 현재 당 밖에 있는 사람이고 선거에 중립적 입장을 표방해야할 입장이니까요"라면서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나와의 화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당내의 화합이 필요합니다. 나하고도 문제가 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당내에서 뜻을 모아 화합을 이루는 것이 먼저입니다. 내 문제는 풀면 어떻고 안풀면 어떻습니까. 당내에서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도리를 좇아서 행동할 것으로 봅니다만, 그러나 (정동영 후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생기 있게 역량을 결집하고 힘을 모아내기 위해서는 서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원칙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지요."

"정동영 후보도 다 고민이 있지 않겠습니까"

노 대통령은 "지금의 내 말은 정동영씨에 대한 내 감정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다 냉랭한 사실입니다, 객관적 과정이 그렇다는 거지요, 사리가 그렇다는 거지요"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정동영 후보도 다 고민이 있지 않겠습니까. 나하고 화해하려면 반대하고 반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런 애로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무리하게 그런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그래도 신당하고는 정신적으로 연결이 돼 있는데..."

- 그래도 정동영 후보가 노 대통령을 빨리 만나고 싶다고 요청해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 난 당내의 화합 문제를 먼저 풀라고 말하고 싶어요. 내가 먼저 정동영씨를 만나고, 당에 대고 내가 풀었으니 당신들도 풀어라, 이렇게 해서는 안되지 안겠습니까. 문제를 그런 식으로 풀어서 될 일이 아니고, 사리에 맞게, 당에 있는 사람들이 중요한 것이죠."

-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과정에서, 정동영 후보측 선거운동원에 의해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선거인단에 도용됐었는데, 그 뉴스를 접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그건 우리 정치 수준입니다. 영국의 노동당 당원이 20만명입니다. 독일에도 당원들이 자꾸 줄어들고 있지요. 그런 흐름 가운데서 국민경선을 하려고 하니까 생긴 부작용이지요. 잘했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극복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피해자가 누구냐? 그 사건의 피해자는 내가 아닙니다. 당이고 국민이고 한국 정치입니다."

노 대통령은 지난 9월 2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재임기간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당이 무너질 때"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당이 그렇게 무너지고 깨지고 하니까 내 지지도도 그것 때문에 좀 깨지지 않았겠습니까? 대통령이 뭘 잘못해가지고 당도 하나 제대로 부지하지 못하고 하는, 그런 여론도 생기고..."

이번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은 정동영 후보와의 화해에 대해 "감정 문제도 있지만 그것은 부차적이고 원칙과 신뢰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원칙과 신뢰에 대한 중시. 바로 이 점 때문에 정치인 노무현의, 다른 사람과의 화해방식 혹은 갈등방식은 일반의 예측을 벗어나곤 했다.

대표적인 예가 2002년 대선 투표일 하루 전에 '선택'한 정몽준씨와의 결별이다. 노 대통령은 "그때 주변에서는 모두 정몽준씨와 결별하면 대선에서 진다고 했지만, 나는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 길을 택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동영씨와의 화해는? 그것 또한 일반의 예측보다 어쩌면 더 쉬울 수도, 혹은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최근 컴퓨터에 써 놓았다는 '원칙이냐 승리냐'라는 화두에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해체에 대해 '원칙을 무너뜨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에 대해 "나와 정신적으로 연결돼 있는 당"이라고 강조한 점이었다.

이해찬 3등 "한편으론 미안하고 한편으론 억울하다"

선거엔 언제나 승자가 있다면 패자가 있다. 이번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서도 손학규·이해찬 후보가 패자가 됐다. 노 대통령은 승부사로 불린다. 그런 노 대통령이 그 경선에서 친노후보가 3등을 한 것을 어떻게 감상했을까? 그는 아마도 '원칙을 무너뜨린' 정동영 후보에 비해 이해찬 후보를 '원칙 있는 후보'로 생각했을 법하다. 때문에 더욱 궁금했다.

-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 과정에서 이른바 친노 3인방은 이해찬 후보로 단일화했는데요. 결국 큰 힘을 보여주진 못하고 3등을 했습니다. 물론 이해찬 후보 개인의 한계도 있었겠지만, 친노 후보가 성적이 썩 좋지 않게 나온 대목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나한테 그렇게 큰 지지 집단이 있는 것이 아니죠. 큰 충성스런 집단이 있는 것이 아니죠. 옛날에 바람을 일으킬 만한 소수의 인자들이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잘 조직화되지도, 많지도 않고, 그리고 한 지역에 기반을 가진 것도 아니었죠. 그들은 절대적인 지지를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에 대한 지지는 다 비판적 지지입니다. 자기 주관을 뚜렷하게 가지고 자기 마음에 들면 지지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하고 하는, 그들은 항상 선택적 지지자들이죠. 그런 사람들이어서 그것이 얼마만큼 무너져 있는가를 (이번 경선과정을 통해) 잘 알 수 있었던 것이죠."

냉정하게 보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이해찬 3등' 결과에 대해 "한편으론 미안하고 한편으론 억울하다"고 했다.

"내가 심판을 받을 땐 내가 후보라야 합니다. 자기가 후보가 아니고 몰매를 맞는 것이 대통령입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참으로 난처한 자리이지요. 나는 후보도 아닌데 맨날 정권교체소리나 듣고 앉아있으니까. 미국에서도 '임기 6년차의 저주'라는 말이 있듯이 본인이 아닌 사람이 심판을 받으니까 나로서는 아주 그 참으로 난감하지요. 그래서 나 때문에 나를 지지한 후보가 진 것 아닌가 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는 후보도 아니면서 이 심판 결과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니까 억울하기도 하고(웃음). 이 심판 결과가 그렇습니다. 한쪽으로는 미안하고 한쪽으로는 억울하고."

이해찬 선수의 3등을 보고 왕년의 선수였던, 그러나 지금은 관중들 속에서 지켜봐야 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다시 그라운드에서 직접 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 지도 모른다. 이제 예선전이 끝나고 본선이 남았다. 2002년에 최종 승자가 된 사람의 눈으로 본 2007년 대선의 풍경은 어떤 것일까? 그가 2002년에 예선전에서 전력투구해 이인제 후보를 꺾고자 했던, 본선에서 기어이 이회창 후보를 꺾고자 했던 원동력을 제공한 그 '원칙'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어떻게 변해 있을까?

- 요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지지도가 50%가 넘습니다. 정치는 생물이라고들 하는데, 앞으로 2개월 동안에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대결구도가 형성될 수 있을까요?
"알 수 없죠. 전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일단 국민들 보기에 미워서든 좋아서든 후보들간에 차별성이 분명해야겠지요. 그래야 미운 후보건 고운 후보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런 바탕 위에서 후보간의 전선이 분명해야 하는데..."

분명한 차별성, 분명한 전선. 그것 역시 '원칙'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 '인물연구 노무현'은 계속됩니다.)


#노무현#탈당#신당경선#정동영#오연호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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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대표기자 & 대표이사. 2000년 2월22일 오마이뉴스 창간. 1988년 1월 월간 <말>에서 기자활동 시작. 사단법인 꿈틀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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