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정리되지 않는 상념(想念)과의 대화가 필요하면 산(山)을 찾는 버릇이 있다. 그것도 별반의 준비없이 훌쩍 떠날 수 있는 거리와 산행길이면 곧 바로 도발(挑發)한다. 살면서 접하는 수많은 일상의 갈등과 상념들은 때로 나를 살찌게도 하고 허접하게도 만든다. 빼곡한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주말이면 찾는 광주(光州)에서 지리산 노고단은 도발하기엔 참 안성마춤이다. 어쩌면 깊어가는 가을이 더 나를 부추겼는지도 모르겠으나 일요일 때늦은 오후를 틈타 노고단 최근접지인 성삼재로 차를 몰았다.
이미 상념과의 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기회만 되면 오르던 이 길은 올 때마다 새롭다. 철을 달리하는 모습도 새롭지만 같은 길을 걷는 기분도 다르다. 매번 다른 상념과 동무를 해서인지 대화는 깊어간다. 그 대화 속에서 엿본 풍경들, 늘 분신처럼 따르는 휴대폰이 캔버스(canvas)가 되고 거기에 새겨지는 그림들!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지리산(智異山)을 누군가는 한마디로 '적요(寂寥, 쓸쓸하고 고요함)'라 하였으니 어쩌면 오늘 나는 노고단(老姑壇,1507m) 적요 속으로 빠져든 것일까? 그 적요 속에서 만난 노고단의 지는 노을은 이를데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35만평 규모의 고원지대가 온통 적요하고 그 적요함을 뚫고 고요하게 펼쳐지는 저녁놀은 이미 황홀경이며 무념무상(無念無想)이다. 상념 역시 그 적요와 노을바다에 이미 빠진 것이다. 밤별들은 시리게 쏟아져 내리고 노고단의 바람은 이미 삭풍(朔風)처럼 차가워 졌다. 밤산달은 내마음처럼 반달로 떠올라 어서 하산하라 이른다.
귀로(歸路)에 나머지 반을 채우라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