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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가 18일 오후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매일경제 주최 '세계지식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가 18일 오후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매일경제 주최 '세계지식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정동영 후보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이 점차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며칠전 청와대 관계자는 정 후보에 대한 노 대통령의 입장을 '소극적 지지' 상태라고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의중은 어제(22일) 보도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정 후보와의 관계가 '감정'이 아닌 '원칙'의 문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원칙의 문제가 있다. 열린우리당의 가치라든가,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라든가. 스스로 창당한 당을 깨야할만한 그런 이유가 있었는지 들어봐야겠다. 그리고 또 내가 당에서 사실상 쫓겨났는데, 나를 당에서 그렇게 할만한 심각한 하자가 나에게 뭐가 있었는지 설명이 되어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도 당내 권력투쟁은 있어도 당을 깨버리거나 당의 한 정치지도자를 사실상 출당시켜버린 경우는 없다. 그런 원칙에 대한 것은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정동영 후보가) 풀어야 한다."

 

'자신만의 원칙' 고집하는 노 대통령

 

정 후보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 선결조건으로 제시되었던 '정치적 신뢰회복'의 내용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된 셈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제시한 내용들이 과연 '원칙'에 관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열린우리당에 대해 민심이 완전히 등을 돌렸는데도 그 당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 참여정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야 한다는 것….

 

그런 것이 왜 원칙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것은 노 대통령 개인의 원칙일 뿐이지, 세상 사람들이 수긍하는 보편적인 원칙이 되기 어렵다.

 

또한 "사실상 당에서 쫓겨난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말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 이유는 정 후보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노 대통령 자신이 성찰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제 정권이 한나라당에게로 넘어가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되고 있는 비상한 시국에서도 노 대통령은 자신만의 원칙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노 대통령은 "그러나 이런 것들도 지금 내가 내세울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자신과의 화합보다 더 중요한 문제, 즉 당내화합의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노 대통령이 말한 내용들은 화해의 선결조건으로 정 후보측에 제시된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제 정 후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두 사람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지느냐 마느냐가 좌우되게 된 것이다.

 

사실 노 대통령과 정 후보 간의 관계복원 문제가 이렇게까지 쟁점화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 문제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서로에게 부담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을 치러야 하는 정 후보 입장에서는 이래도 부담, 저래도 부담이다. 노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으면 당내 친노세력이 자신을 흔드는 상황이 올까 불안하다. 정 후보가 일찌감치 노 대통령에게 머리를 숙이고 화해를 요청한 이유이다.

 

반대로 정 후보가 노 대통령이 앞장서서 지지하는 후보로 인식되어도 부담이다. 애써 친노세력과 경쟁하여 후보에 선출된 마당에, 노 대통령을 계승하는 후보로 인식되면 12월 대선을 치르기가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사실 과거의 경험들을 놓고 보면 노 대통령이 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서로간에 여러 갈등이 있어왔다 해도, 일단 후보로 선출된 마당에 범여권 제1당의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당연하다. 더구나 정 후보가 거듭해서 머리숙여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으니, 그를 받아들여 화해의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이면 되는 일이었다.

 

정동영의 '백기항복' 요구하나

 

그러나 노 대통령에게는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 같다. 노 대통령은 정 후보에게 사실상의 백기항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정 후보는 이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적극적 지지'의 조건을 요구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말을 바꾸어 신당창당을 반성하고, 참여정부를 칭송한다면 그 모습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그렇지않아도 후보선출 이후 노 대통령과의 관계에 있어서 원칙없는 말바꾸기를 했다는 지적이 따르고 있는데 말이다.

 

2002년에 있었던 'YS시계'의 재판이 되고말 것이다. 그것은 '정동영의 굴욕'이다. 대선후보로서 죽는 길이다.

 

신당의 후보선출 이후에 노 대통령이 정 후보를 대하는 모습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이는 모습과 대비된다. 김 전 대통령이라고 정 후보에게 어디 섭섭한 감정이 없었겠는가.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만든 주역이 정 후보였다. 자신의 대통령 시절, 권노갑 고문을 치고 나온 사람이 정 후보였다.

 

그렇지만 김 전 대통령은 정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정동영 개인이 특별히 예뻐서였을까. 어떻게든 한나라당과의 1대 1 대결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그 다음 문제인지를 안다는 이야기이다.

 

노 대통령,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노 대통령에게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일까. 노 대통령에게는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는 것보다, '제3기 민주개혁정권'을 여는 것보다, 자신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일까.

 

과거 있었던 일들에 대해 누가 옳았는가를 가리는 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아쉬운 사람을 상대로 이렇게 '조건'으로 제시하면서 강요하듯이 할 일이 아니다.

 

물론 노 대통령에게도 가슴에 맺혀있는 문제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노 대통령 자신이 '끔찍하다'고까지 했던 한나라당 집권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 아닌가. 그런 정국상황에서 무엇이 정말 중요한 문제인가를 노 대통령이 생각해볼 수 있기 바란다.

 

"대선에서 한표라도 더얻는데 도움이 된다면 나를 밟고가라. 그것이 대선승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감수하겠다."

 

노 대통령이 오히려 그렇게 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결자해지'라는 말의 의미는, 노 대통령이 먼저 되새겨야 할 것 같다.


#노무현#정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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