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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교협·민변·작가회의. 시민사회 진영을 대표하는 세 단체가 뭉쳤다. '지식인 공동 행동'이라는 의지를 담아 남북정상의 10·4 합의문에서 제시된 '통일 지향적 법제도 정비 대상'으로 꼽히는 국가보안법을 다시 공론의 장에 내놓았다. 북한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지난 2004년, 17대 국회가 출발하면서 개폐 움직임이 일었지만 보수측의 반대로 개폐 시도는 무산됐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단체의 릴레이 기고를 통해, 한반도가 전쟁의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체제로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상징의식.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상징의식. ⓒ 이철우

국보법이 필수적이라 역설하는 한 정치인이 우연한 기회에 정신병원 환자들에게 연설하도록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그 정치인이 연설을 시작한지 10분도 채 되기 전에, 뒤쪽에 앉아 있던 환자 하나가 벌떡 일어서더니 고함을 질렀다.


"이봐, 당신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 거야? 게다가 돼먹지 않은 말이 너무 많아. 이제 그만 입 닥치고 썩 꺼지지 못해!"


그러자 그 정치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서, 병원장에게 소리질렀다.
"저 사람을 끌어낼 때까지 기다리겠소."
"끌어내다니오?"
병원장이 대꾸했다.


"절대 안 되오. 저 불쌍한 친구는 여기 8년 동안 있었지만, 제 정신으로 말한 것은 이게 처음이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엄중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치인뿐만 아니라 사법 당국까지 스스로 앞장서서 국보법을 남용하며 헌법 정신을 모독하는 만용을 부릴 때가 잦은 것이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그런데 도대체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한국정치학회의 학술상을 수여 받은 적이 있는 한 정치학 교수의 저서에는,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적 원칙의 하나로서 - 근래 우리나라에서 '똘레랑스'란 말로 널리 대중화되기도 한 - '관용'(tolerance)이 제시되고 있다.

 

여기서 관용은 공적인 일에 있어서나 또는 개인적 사안에 있어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견해나 신조를 절대적인 것으로 고집하지 않는 태도라 규정되고 있다. 학문적으로 국제적인 공인을 받고 있는 이 이론을 따르면, 사회는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여러 이질적인 집단의 집합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이해관계의 대립은 필연적이고 그 가운데 어떠한 것도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경쟁하는 개별 집단 사이의 타협이 필수적인 덕목으로 등장한다. 이 경우 관용이라 함은 대립적인 이해관계의 존재를 서로 인정하면서, 협상과 타협을 통해 그 대립성을 풀어 나가려는 호혜적인 자세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적 관용의 적(敵)은 광신(狂信)'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타협 없는 원칙은 독선이다. 그리고 원칙 없는 타협은 야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국보법은 일종의 광신이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에서는 국가보안법적 논리가 '절대적인' 것으로 군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보법은 반 자유민주주의적 전횡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국보법은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반 헌법적 독소 법률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학문적인 차원에서 볼 때, 우리의 지난 역사를 비판적으로 파헤치는 것은 학자라면 반드시 수행해야 할 책무라 할 수 있다. 그를 통해 우리는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는 어리석음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적 연구 과정에서 가령 북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론가도 나올 수 있다. 마찬가지로 북한을 꾸짖고 단죄하는 학자 역시 당연히 있어야 한다.

 

이처럼 연구를 위한 학자의, 특히 사회과학자의 접근방법은 다양할 수 있고, 또 당연히 그래야 한다. 이러한 학문적 방법론은 학자의 개인적 신념이나 세계관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방법론만이 최고, 최상의 것이라는 주장은 지극히 비학문적이고 독단적인, 그리고 반 자유민주적인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왜 '좌익수'만 있고, '우익수'는 야구장에만 있는가? 그러나 우리를 더욱 슬프고 참담하게 만드는 것은 - 예컨대 강정구 교수 문제에서도 드러나듯이- 헌법이 보장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뒤흔드는 위헌적인 판결이, 더욱이 스스로 '참여정부'라 칭송하는 시대임에도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자유민주주의의 꽃이 된 이유

 

21세기를 맞아 모든 국민들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있는 이러한 역사적 상황인데도, 아직껏 냉전시대의 유물인 국가보안법이 버젓이 활개치고 있다.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 착오적이고 반문명적인 작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가장 준엄한 우리 국민대중의 역사적 소명은 이러한 야만적인 국보법의 멍에를 신속히, 그리고 가차없이 청산함으로써 역사의 진보에 헌신하는 일이다.

 

어떠한 종류의 폭력도 당연히 사회로부터 추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질적 사상과 이론에 대한 폭력 또한 철저히 거부되어야 한다. 그것이 실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길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보법의 존립에 명운을 걸고 있는 모든 세력은 자신들에게 오로지 양자택일의 길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요컨대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동참하든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자신들을 박물관용으로 박제화 시켜버리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박호성 교수
박호성 교수 ⓒ

이 지상의 어느 누구도 신(神)처럼 자신의 특정적인 입장이나 견해를 절대적인 것으로 강요하고, 그리고 그 판단을 반드시 추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압할 수는 없다. 그것은 광신이 난무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예컨대 '반공을 국시의 최고로' 삼았던 박정희 시대에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혹독하게 집단폭행 당했던가 하는 것을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은 오직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저 프랑스 대혁명이래 자유민주주의의 꽃으로 기능해 왔는가 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민교협 소속 박호성 서강대 사회과학대학장이 <오마이뉴스>에서 진행 중인 '국가보안법 릴레이기고'를 보고 함께 참여하기 위해 투고한 글입니다.


#국가보안법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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