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올라가고 풍물 장단이 신명나게 강당에 울려 퍼진다.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가락이 옮겨가면서 구경꾼들의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한다.
가끔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손바닥 장단을 치기도 한다. 풍물패가 동아리 발표의 막을 열면서 축제가 시작된다.
이번 동아리발표(축제)에서 완산여고 학생들은 계발활동시간에 갈고 닦았던 재주와 끼를 모두 쏟아냈다. 교실 속에서만 지내던 아이들은 그동안 틈틈이 배우고 익혔던 풍물과 탈춤, 댄스 등을 통해 자신들의 재주를 마음껏 뽐냈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신명을 펼치고 있는 아이들은 각양각색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있고 못하는 아이도 있다. 얌전한 아이도 있고 말썽을 피우는 아이도 있다. 예쁨을 받는 아이도 있고 꾸지람을 자주 받는 아이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교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그런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자신들의 숨겨진 끼와 열정과 재주를 있는 그대로 자신들의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신명난 풍물마당이 끝나고 연극패 아이들의 '신심청전'이란 연극이 펼쳐진다. 연극은 '심청전'을 소재로 했지만 해학 가득한 웃음판이다. 아이들만의 기발한 발상들이 무대에서 연출된다.
심청이 물에 빠지는 장면에서 연기를 잘 못한다고 동료들이 그만두라 한다. 이에 지도교사가 얼굴이 예쁜 심청 역을 맡은 아이 편을 들자 반발하기도 한다. 이런 내용들이다.
“왜 선생님은 이 애만 예뻐하세요?”
“누가 예뻐한다고 그래. 얼굴도 제일 낫고 연기도 잘하니까 시킨 거지.”
“잘하긴 뭐가 잘해요. 물에 빠지는 장면도 제대로 못하면서… 얘들아! 안 그래?”
“맞아 맞아! 이건 공평하지 못해요. 심청이 다시 뽑아야 해요.”
“그럼 너희들 맘대로 해. 너희들이 어디 뽑아봐.”
이렇게 해서 연극은 심청 뽑기로 진행된다. 언뜻 보면 그냥 무대 위에서 장난치듯 노는 듯하다. 그러나 그 속엔 풍자도 있고 해학도 있고 요즘 아이들의 생각도 나타나있다.
연극이 끝나고 ‘불림’이라는 탈춤동아리의 ‘강령탈춤’이 무대에 오른다. 이 ‘불림’패는 그 이력도 상당하다. 전국대회 탈춤 경연대회에서 우승도 하고, 지역문화행사에 초청받아 종종 공연도 한다.
이들 또한 계발활동 시간에 연습을 하고 기량을 다듬었다. 방학 땐 며칠씩 합숙 훈련을 하기도 했다.
다음은 댄스동아리의 현란한 춤이 무대에 오른다. 아이들은 이내 환호성을 지르며 객석을 후끈 달아오르게 한다. 역시 아이들에겐 옛것보다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춤에 더 열광했다. 춤은 아이들 스스로 창작하고 만들어간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대단한 춤꾼들이다. 복도에서도 교실에서도 틈만 나면 끼리끼리 모여 몸을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리에서도 춤추는 아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제 춤은 특별한 장소에서만 추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기분과 감정에 따라 몸을 흔든다.
가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어디서 저런 재주가 숨어 있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한지를 이용해 옷을 만드는 동아리 아이들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은 특별히 옷 만드는 기술을 배우지 않았다. 다만 계발활동을 통해 지도교사와 함께 디자인하고 재단을 하며 옷을 만들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자신들이 만든 옷을 가지고 스스로 모델이 되어 패션쇼까지 한다. 동아리발표 며칠 전엔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복도에서 워킹 연습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예쁘기 그지없다.
자신들이 디자인하고 만든 옷을 입고 무대에 들어서는 아이들. 그때만은 여느 전문 모델 못지않다. 걸음걸이, 표정 또한 약간의 쑥스러움 속에서도 한껏 자신의 멋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번 패션쇼의 하이라이트는 예복을 입고 등장한 총각선생님의 출현이다. 노총각인 그 선생님은 제자와 함께 결혼 예행연습을 한 것인데 아이들의 반응이 거의 광적이다.
축제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축제는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다. 그 속엔 아이들의 숨겨진 모습들이 드러난다. 늘 어깨를 움츠리고 있던 아이들도 자신의 공간이 주어지면 어김없이 자신만의 재능과 끼를 불태운다. 아이들은 자신 속에 숨겨진 것들을 끄집어내어 자신을 즐길 줄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