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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가 베스트극장을 폐지하고 시즌제 드라마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사실 나는 탐탁지 않았다.

 

실험성과 참신성을 갖춘 좋은 단막극을 많이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 탓이었다.

 

시간대도 일요일 밤 11시 40분으로 옮기고, 이건 대체 보지 말라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웬걸,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5~7%대를 기록하며 호평을 받는다는 것이 아닌가.

 

이 드라마는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곳, 경매장 '윌 옥션'을 중심으로, 그 곳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다. 예술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인간을, 사랑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지난 21일 밤, 네 번째 이야기 <비밀과 거짓말> 편은 최근 논란이 된 '이중섭 그림 위작 사건'과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 흥미를 끌었다.

 

사건의 시작은 김우찬 화백의 제자이자 친밀한 관계로 유명했던 박인희가 기자 회견을 열어 고가에 낙찰된 김우찬 화백의 그림이 위작이라는 주장을 하면서부터다. 이중섭 그림 위작 사건에 아들 이태성씨가 개입되어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 역시 김우찬 화백의 부인이 개입되어 있다.

 

그녀는 진품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그림을 산 갤러리 측이 재감정을 의뢰하면서 윤재(정 찬 분)와 연수(윤소이 분)는 그림의 진위여부를 추적한다. 그들은 화랑협회의 조 사장과 마찰을 빚게 되고 추적을 멈추라는 협박도 받게 된다. 또한 조 사장은 연수의 아버지가 위작 작가라는 사실을 밝혀 버린다.

 

위작작가. 그 역시 '작가'이지만 '위작' 작가이다. 자신 때문에 윌옥션에 그림을 맡기겠다는 위탁자가 점차 줄어들자 연수는 혼자 어둠 속에 앉아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위작 작가라는 건 '사실'이었지만 윤재는 연수가 몰랐던 '진실'을 알려준다. 연수의 아버지는 증거도 없었고 가만히 있었으면 모두가 진품이라고 넘어갔을 작품을, 자신이 위작작가라고 고백해 위작임을 밝혔던 것이다.

 

사실과 진실은 엄연히 다르다. 사실은 실제로 이루어진 일이나 일어난 일을 말하고, 진실은 거짓이 없이 참되고 바름을 이른다. 뉴스에서는 사실을 다루지만 그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언제나 인간은 사실과 진실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수의 아버지가 비록 위작작가였지만 진실을 밝히고 뱃일을 택한 것처럼.

 

진짜와 가짜. 우리는 현실에서 수많은 진짜를 만난다. 하지만 또한 수많은 가짜도 만난다. 진짜 명품 가방이 있는가 하면 가짜 명품 가방, 소위 '짝퉁'이라 부르는 것들도 널려 있다. 진짜 사랑이라 믿었던 사람이 알고 보니 양다리, 문어다리를 걸치는 바람둥이였을 수도 있다. 헌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 정말로 진짜, 가짜가 있을까. 진짜, 가짜로 나눌 수 있을 만한 기준이란 게 존재하는 걸까.

 

짝퉁이라도 내가 명품이라고 생각하고 명품처럼 아낀다면 명품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진짜 사랑했다면 그 사람이 바람둥이라고 그 사랑을 가짜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김우찬 화백의 그림은 결국 위작으로 밝혀진다. 김우찬 화백은 스케치를 할 때 꼭 옛날 4B 연필을 고집했다. 지금은 고래 보호 때문에 해바라기씨 기름이 사용되지만 옛날엔 흑연을 뭉칠 때 접착제로 고래 기름을 사용했다. 윤재는 고래를 잡으러 가야겠다는 말과, 옛날 연필을 구하느라 힘들었다는 아내의 말을 떠올리며 위작 논란이 있었던 '여인의 탄생' 그림의 성분을 분석한다. 물론 그림에선 해바라기씨 기름 성분이 발견됐다.

 

알츠하이머에 걸려서 조각퍼즐을 맞추던 김우찬 화백. 여인 시리즈는 처음부터 네 장뿐이었다고 단호하게 말하던 박인희. 우연히 컴퓨터 대기화면에서 떠돌며 돌아가던 네 장의 그림을 보던 연수는 결국 진실을 밝혀낸다.

 

네 장의 그림을 조각 맞추면 그 얼굴은, 다름 아닌 김우찬 화백의 부인이었던 것. 김우찬 화백은 병으로 기억을 잃기 전에 언제나 자신을 뒷바라지 해주었던 아내의 얼굴을 그렸던 것이다. 김우찬 화백의 부인이 누워 있는 남편에게 왜 자신을 남편의 그림도 못 알아보는 아내로 만들었느냐며 원망과 미안함 섞인 눈물을 쏟아내던 장면은 가슴을 '짠'하게 했다.

 

물론 '이중섭 그림 위작 사건'과 같은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 따뜻한 그림을 그렸던 고인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속이며 그것으로 물질적인 이득을 취하는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가짜를 밝혀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진짜를 보는 눈이다. 비밀과 거짓말 속에서 중요했던 진실은, 그림의 진위여부가 아니라 김우찬 화백이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으로 아내의 얼굴을 그렸다는 것이다. 실은 그것이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당신은 얼마짜리 인생인가?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가?


기획의도에 쓰인 문구가 확 들어온다. 당신은 지금 얼마짜리 인생을 살고 있는가? 진짜 삶을 살고 있는가? 비록 삶이 조금 비루하다 한들, 진품처럼 산다면 그것은 명품 삶이 아닐까? 진짜 살아가는 것처럼 살아간다면 그것이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 내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오늘도 어제보다 조금 더 열심히 살아보는 게 어떨까. 조금 더 진실하게, 조금 더 참되고 바르게.


태그:#옥션하우스, #이중섭 위작 사건, #정찬, #윤소이, #옥션하우스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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