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들어 보수적인 한국인들 사이에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지도자의 금전적 부도덕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서유럽의 정치상황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사회가 발전할수록 보수층에서는 지도자의 도덕성에 대해 점점 더 엄격해지는 법이다. 자기 자신은 방탕하게 살지라도 지도자만큼은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보수적인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지도자의 축재 과정을 문제 삼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도자의 과거 축재 과정을 애써 덮어두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 어떻게 돈을 벌었든 간에 자신과 정치적 코드만 같으면 된다는, 매우 무책임한 태도가 보수층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지도자의 금전적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사실은, 서태후(1835~1908년)의 탐욕과 부정부패가 청나라 멸망의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서태후는 측천무후와 함께 중국사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여걸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청나라 말기의 40여 년 동안 사실상 황제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동치제(재위 1861~1874년, 서태후의 아들) 및 광서제(재위 1874~1908년, 서태후의 조카)의 재위기간 동안 그는 섭정으로서 중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했다.
그런데 통치자의 자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서태후는 이전의 통치자들에 비해 상당히 뒤떨어지는 인물이었다. 역사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한민족이나 중국의 왕조에서는 세자나 태자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이 존재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세자·태자는 지도자로서의 덕목을 기를 수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차기 지도자는 사람을 대하는 법, 재물을 대하는 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후궁 출신인 서태후는 이런 교육에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는 지도자의 덕목을 갖추지도 못한 상태에서 청나라의 최고 대권에 다가서게 되었다. 물론 황족 출신이 아니더라도 혁명가들처럼 궁궐 밖에서도 얼마든지 지도자의 덕목을 갖출 수 있었겠지만, 서태후는 그나마 그런 ‘자습’의 기회도 갖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갑작스레 불어난 ‘재물에의 접근 기회’ 앞에서 도덕적 중용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는 갖고 싶은 것들 앞에서 스스로를 자제할 수 없었다. 그는 지나치게 돈을 밝혔고, 또 자신에게 뇌물을 바치는 관료에게 특히 각별했다.
서태후가 얼마나 돈을 밝혔으며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생생히 보여주는 실례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베이징 서북부에 있는 이허웬(이화원)이라는 곳이다. 12세기에 처음 만들어진 이곳은 나중에 서태후의 별장으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둘레가 8킬로미터나 되는 이허웬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쿤밍호(곤명호)라는 대형 호수다. 일본이 자국을 쓰러뜨리기 위해 군비를 은밀히 그리고 착실히 증강하던 시기에, 쿤밍호에서 한가하게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서태후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물론 그도 나름대로는 국사를 챙기긴 했지만, 국세가 날로 기울어가는 나라에서 황제의 권력을 가로채서 최고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라면 뭐가 달라도 달랐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는 재물 앞에서는 그 어떤 범인(凡人)보다도 더 ‘천박’했다.
그리고 서태후가 자신의 환갑 축하연을 열기 위해 이허웬을 개축하려고 해군 자금까지 유용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해군 증강을 위해 영국에서 빌려온 차관을 이허웬을 개축하는 데에 유용했다는 것이다.
서태후의 환갑은 1894년이었다. 바로 그 해에 청나라의 정예 해군인 북양함대는 서해에서 일본 연합함대에 의해 궤몰되었다(청일전쟁). 패전 이후로 서양열강의 본격적인 제국주의적 침탈에 시달린 청나라는 이를 계기로 한층 더 쇠약해지다가 결국 1912년에 멸망하고 만다.
물론 전적으로 서태후 때문에 청나라가 멸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환갑잔치를 위해 해군 자금을 유용한 직후에 청나라 해군이 일본 해군에 패배한 일로 인해 청나라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으니, 후세의 중국인들이 서태후를 욕하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청나라가 멸망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돈 앞에 약한 사람을 실질적인 최고통치자로 두었다는 점도 청나라 멸망의 한 가지 요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못난 지도자를 둔 것이 청나라의 불행이었던 것이다.
돈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해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다. 남보다 더 본능에 충실한 사람을 최고 지도자로 두었으니, 나라가 온전히 돌아갈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서태후와 청나라의 멸망에 관한 역사적 사실은 비단 중국인들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금년 들어 보수적인 한국인들 사이에서 지도자의 금전적 부패를 문제 삼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으니, 이는 한국인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금년 들어, 돈을 잘 알고 돈을 좋아하고 돈을 많이 벌어본 사람이 국부도 늘릴 것이라는 ‘희한한’ 인식이 한국 보수층 사이에 만연되었다. 하지만, 역사는 ‘지도자가 돈과 가까우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점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서태후가 생생히 가르쳐주지 않았는가!
진정으로 국부를 늘릴 수 있는 지도자는 돈을 밝히거나 돈을 잘 아는 지도자가 아니다. 인간을 잘 아는 지도자만이 국민을 사랑할 수 있고, 국민을 사랑하는 지도자만이 어떻게든 국민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서태후처럼 돈을 너무 밝히는 지도자는 나라의 국고를 늘리기보다는 자신의 개인 금고를 늘리는 데에만 일차적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그런 지도자는 대한민국 전체 상장기업의 주가를 올리기보다는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주가만 올리려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최고 권력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주가를 조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도자의 품격을 문제 삼던 한국의 보수층이 금년 들어 ‘돈을 밝히는 지도자’를 갑자기 선호하기 시작한 것은 어찌된 일일까? “지도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 “지도자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불평하던 한국 보수층이 갑자기 생각이 바뀐 건 왜일까?
돈을 밝히는 사람이 과연 세상을 밝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돈보다는 인간을 사랑하는 지도자를 선호하는 태도가 진정한 보수의 자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