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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황새울 편지

 

- 책이름 : 황새울 편지
- 글쓴이 : 윤정모
- 펴낸곳 : 푸른숲(1990.1.10.)


저녁 여덟 시만 되면 길거리 가게 불빛이 죄 꺼지며 어둑해지는 골목길 3층에 제 일터가 있습니다. 살림집은 이곳 4층에 있습니다. 이즈음 되면, 이 골목길에 불이 켜진 곳은 거의 제 일터나 살림집뿐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동인천역으로 나가야 비로소 드문드문 불이 환한 곳이 나옵니다. 거꾸로 가자면 제물포쯤 되어 비로소 불빛이 보이고, 주안까지는 가야 '도시 밤거리' 느낌이 납니다.

 

인천이라는 곳에 와 보지 못한 분들, 와 보았어도 잠깐 지나친 분들은 이곳이 '도시 같지 않은 도시'임을 살갗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럴밖에요. 서울을 벗어나 서울 아닌 시와 군에 갔을 때, 그 시와 군 느낌을 있는 그대로 헤아리거나 받아들이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요. 어쩌면 시골 삶터를 그 모습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분들은, 자기가 발딛고 있는 서울 삶터 또한 그 모습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겉껍데기만, 허울만, 속은 빈 강정 같은 겉거죽만이 모두인 듯 생각하는지 몰라요.

 

속을 안 보고 겉을 보는 분들한테 책이란 무엇일까요. 마음을 열고 다른 이 마음을 받아들이는 책읽기를 할 몸가짐이 안 되어 있는 분이 손에 드는 책이란 어떤 책일까요.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 한 그릇 받고서 "아이고, 하느님"을 외치며 고맙게 받아먹는 사람이 있는 한편, "무슨 반찬이 이것밖에 없어"하면서 투정을 부리며 틱틱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윤정모 님은 지난 한때, 시골마을 '황새울'로 가서 농사를 지으며 수수하게 살았습니다. 수수하게 살면서 자기를 내세우지도 깎아내리지도 않았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를 또박또박 적어서 책 하나로 묶었습니다.


.. 선희야, 시골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넌 내가 부럽다고 했지. 전원생활, 얼마나 근사하냐고. 그럴 때마다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지. 시골은 이미 전원이 아니며, 나 역시 한가롭게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그래도 농촌에서 살아 보지 못한 넌 내 얘길 이해하려 들지 않았어. 그래, 너 역시 서울사람, 자기처럼 모두가 배부르다고 생각하는 중산층 여성. 선희야, 오늘도 나는 어떤 서울 여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단다. "라디오, 잘 들었어요. 거기 참, 살기가 좋은 모양인데 땅값이 어떻죠?" ..  〈153쪽〉

 

(11) 군중과 권력

 

- 책이름 : 군중과 권력
- 글쓴이 : 엘리아스 카네티
- 옮긴이 : 반성완
- 펴낸곳 : 한길사(1982.3.15.)


어젯밤, 골목길이 잠깐 시끌벅적했습니다. 뭔가 하고 창밖을 내다보니, 고등학생 또는 고등학교를 막 마친 듯한 어린 사내아이들 예닐곱이 술에 절은 채 지나가면서 가게문을 발로 차고 떠들고 욕을 내뱉고 있습니다. 길에 세워진 차를 걷어차기도 하고 차 위에 올라가 위에서 방방 뛰기도 합니다.

 

저 아이들이 혼자 나다닐 때에도 이처럼 시끌벅적하게 나댈 수 있을까요.


.. 서로가 모두 똑같은 힘을 가진 강자인 양 행동하게 될 때에만 사람들은 안전감을 가지고 서로 평화스러운 상태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  〈336쪽〉


혼자 다니는 깡패를 본 적은 없는 듯합니다. 늘 무리를 지어 다니는 깡패입니다. 양아치들도 그렇습니다. 꼭 무리를 지어 다닙니다. 혼자서는 망나니처럼 굴지 못하지만, 여럿이 있을 때에는 자기 얼굴을 숨길 수 있다고 느끼거나, 여럿이라는 힘으로 맞은편을 내리누르지 싶습니다.

 

저 젊은 무리들을 한 사람씩 떼어놓고 말을 걸면, 그래, 그렇게 싸움을 걸며 주먹다짐을 하고 싶으면 나하고 한 사람씩 붙자, 하고 말을 붙여도 어젯밤 골목길에서 보여주었듯이 욕을 내뱉고 날개짓을 할 수 있을는지요.

 

(12) 버림받은 사람들

 

- 책이름 : 버림받은 사람들
- 엮은이 : 표문태
- 펴낸곳 : 중원문화(1987.12.30.)


남녘땅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눈길을 두지 않는 일이라 하지만, 틀림없이 어디선가 누군가 온몸을 바쳐서 힘쓰거나 애쓰며 거두어들이려고 하는 움직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군 성노예로 몸이며 마음이며 다친 할머니들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집회를 해도 한 번 찾아가지 않는 사람이 많을 뿐더러, 일본군 성노예가 어떤 일이었고 이 역사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 헤아리지 않는 사람은 훨씬 많습니다.

 

그러나 할머님을 한 분 한 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증언모음을 엮어내고 논문을 내고 낱권책을 펴내어 세상사람들한테 우리 지난날을 알리려고 하는 분들은 몇몇 분이나마 있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노래를 부를 줄 알아도, 독도와 얽힌 역사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우리가 일제식민지를 어떻게 보내야 했는지 돌아보거나 살피려는 마음씀이 없는 이 나라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나라밖에서 뒤틀고 독재정권이 비틀었던 역사를 바로잡으려고 힘쓰는 학자들도 꾸준하게 나타납니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겨레붙이가 어떤 푸대접과 따돌림으로 괴로워하는 줄 톺아보는 눈길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재일조선인 권리를 찾아 주려고 힘쓰는 분들은 조금이나마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돈 많이 번 사람들 이야기는 신문이나 방송에 나올지언정, 일본에서 노동자로 뒹굴다가 고향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들 이야기는 아무 데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북녘을 빠져나와 떠도는 사람들 아픔을 어루만지는 모임이 하나둘 생깁니다.

 

우토로사람들 문제를 풀려고 남녘땅에서 뜻있는 분들이 힘쓰기도 하지만, 가만히 따지고 보면, 이런 일을 풀라고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을 뽑고 지방자치제를 하는 우리들이 아닌가요. 공무원을 왜 뽑을까요. 교사한테는 왜 그렇게 긴 방학이 주어지면서 높은 대접을 베풀까요. 교사는 어이하여 싱싱하고 풋풋한 아이들을 가르칠 권리와 의무를 받을까요.

 

<버림받은 사람들>은 일본땅에서 '원자폭탄을 맞은 한국 피해자'들 삶과 이야기를 하나하나 발로 뛰어다니며 그러모아서 묶어낸 책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 사회와 문화와 역사에서 '버림받았'고, 한국인원폭피해자 이야기와 삶 또한 아직까지 우리들 모두한테서 '버림받'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새책방에서는 찾을 길이 없고,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찾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책 세 가지 이야기입니다.


#헌책방#책시렁#황새울 편지#군중과 권력#버림받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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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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