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 밑에는 능전마을이 있다. 능전마을 민박집에는 넓은 마당 한 쪽에 간이 시설을 해놓고 몰려 오는 관광객들에게 간단한 음식물을 팔고 있다.
난 작년부터 이용했으므로 단골인 셈. 민둥산에서 내려와 메밀 부침개를 먹고 있을 때, 옆자리에는 어르신들이 막걸리 파티를 하고 있었다. 그 중, 짙은 화장에 화려한 차림을 한 여자 분이 마당을 휘저으며 이것 저것 만져보고 들여다보면서, 바쁜 주인에게 말을 시킨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열심히 부침질을 하는 주인에게 다가가 한 마디 하신다.
"고생 끝에 낙이 있다고 했소."
나는 말 뜻을 알아듣고 민망해졌다. 아니, 무슨 말씀을…. 고생 끝이라면, 지금 저 부침질을 하는 아주머니가 엄청 고생을 하고 있다며 위로하는 말인데. 슬며시 아주머니(민박집 주인)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분 아주 후덕하고 인심 좋게 생긴 분이다. 몇 번 겪어본 바에 의하면 실제 그랬고.
"난 지금도 낙이 있어요. 이건 고생도 아니라요."
"그렇죠? 살림도 넉넉 하시죠?"
지난해 자주 드나들면서 본 내 짐작으로는 이 집 분명 넉넉하다. 아니 부자 냄새가 난다. 집도 잘 꾸며 놓았고 너른 터에 비닐 하우스까지 지어져 있고. 작년 늦가을, 일찍 찾아온 추위를 피해 손님을 비닐 하우스에서 맞았는데, 비닐 하우스에 갈무리해놓은 농산물들을 보자 이 집안 살림을 짐작하고도 남게 해주었다.
내 말이 구수했던지, 아주머니 작은 소리로 은근히 자랑을 하신다. 딸은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고, 아들은 결혼해서 분가시켰는데, 아들 며느리 다 강원랜드에 다닌단다. 몇 년 손주도 봐 주었는데, 지금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고.
여행을 다니면서 자주 목격한 풍경이다. 시골사람 우습게 아는 도시 사람들 말이다. 사람들은 종종 차림새나 하고 있는 일로 그 사람을 섣부르게 판단하곤 한다. 그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를 모르는 채. 시골사람, 물론 새로운 농사법에 기대거나 무리한 시설물 투자, 또는 자녀 교육으로 인한 부채 때문에 어려운 집도 있다.
그러나 착실하게 일하고 수확해서 알뜰히 재산 장만하고 사는 사람 또한 많다. 내 고향만 해도 인근 도시에 아파트 한 채씩 갖고 사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 대부분이 시골에서 나서 농사일을 하면서 잔뼈가 굵은 분들이다.
사시사철 손에서 일을 못 놓고, 농한기가 따로 없이 사시는 분들. 그분들 재산이야 말로 허황된 마음 조금도 없이 순수한 땀으로 이루어진 100퍼센트 피와 땀의 결과다. 그리고 그런 분들은 자식 교육도 대도시나 외국보다는 집에서 가까운 소도시에서 시켜 그 주변으로 취직시켜 내보낸다. 모든 생활 전반이 고향에서 이루어지고 고향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도시에 산다고 나은 게 뭐가 있나. 진한 화장으로 얼굴에 얼룩 지우고 여행 갔다고, 책 몇 줄 더 읽고 공연 관람하면서 문화적으로 앞서 있다고, 유리한 고지 점령한 것처럼 그 분들 위로해줄 일 조금도 없다.
그 분들 분명 우리보다 부자고, 문화나 철학도 전혀 우리보다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보다 나을 수도 있다. 자연을 기반으로 살고, 자연 소중한 거 알고, 자연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철학적으로 사고한다. 그분들에게 낭비, 찾아 볼 수도 없다.
근검 절약 정신이 투철한 분들이다. 그러니 시골에 여행가거나 체험을 하러 가거나, 또는 친척집에 다니러 가더라도 행여 우월감 갖지 마시라. 우리는 도시 사람들 그들보다 우위에 있는 것, 절대 없음을 명심하시라.
우리들 입에 들어가는 밥, 그리고 농산물 죄다 그분들 손으로 빚어낸 값진 작품들이니 우리는 오히려 그분들에게 빚지고 사는 셈이다. 돈주고 샀다고? 농사일 한 번 해 보시라. 그게 돈으로 셈할 수 있는 일인지. 그리고 이제 그분들 존경하는 마음 가지시라.
공연히 말 잘못해 도시 사람 전부 도매금으로 넘기지 말고 차라리 가만히 계시라. 그게 시골 사람, 도시 사람 죄다 돕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