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이하 과기정위) 소속 일부 의원들이 국정감사 기간 중 피감기관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시민사회는 일제히 이를 규탄하고 나섰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등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단란주점 접대 등으로 얼룩진 향응 국감을 철저히 조사하고, 이에 연루된 국회의원 및 해당 기관장들을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공공연구노조가 향응 제공 의혹이 제기된 바로 다음날 '발빠르게' 기자회견을 연 이유는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난 피감기관이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었기 때문. 전국공공연구노조는 87개 정부 지원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의 산별노조로, 문제가 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도 전국공공연구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있다.
"의원들, 힘없는 연구원에 향응 받아야 했나... 접대비는 혈세"
조한육 전국공공연구노조위원장은 기자회견에 참석해 "연구원이라는 곳은 가장 힘없는 정부 산하 기관 중 하나"라면서 "정부 지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에게 꼼짝할 수 없는 곳이다, 최고 권력자들이 이런 기관으로부터 꼭 향응을 받았어야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조 위원장은 "국회의원들에 대한 접대비 등은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나갔을 것"이라면서 "큰 액수가 아닌 업무추진비에서 이같은 향응을 제공하려면 기관의 연구비로 충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어 "모든 비용은 국민들로부터 걷은 혈세"라고 강조했다.
조 위원장은 "이런 기관들로부터 향응을 제공받는 국회의원들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피감기관으로부터 도를 넘어선 접대를 받는 국회의원들이 감사를 할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향응을 제공받은 임인배 과기정위원장과 김태환 한나라당 의원, 류근찬 국민중심당 의원 등은 '공무원 여비규정'을 어기고 식사비 등을 피감기관에 부담시켰다"며 "이는 도덕불감증으로 인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공무원 여비규정에 따르면, 국감 기간 중 국회의원이나 보좌관, 전문위원 등이 쓰는 운임·식비·숙박비 등 모든 경비를 국회가 미리 피감기관에 전달하게 돼있다.
이들은 "피감기관의 잘잘못을 따지고 바르게 잡아야 할 국감 의원들이,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피감기관으로부터 접대를 받았다면 국회의원으로서 국감을 제대로 수행했는지를 의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물의를 일으킨 일부 과기정위 소속 의원들에게 공식 사과를 요구했고, 국회 윤리위원회 및 수사당국에도 진상조사와 관련자 처벌을 통해 재발 방지에 힘써줄 것을 강조했다.
"의원님들, '이건 불법'이라고 매번 말씀드려야 하나요?"한편 국회의원들이 단란주점에서 여종업원의 접대를 받고 성매매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여성단체들도 이를 비난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연합·한국여성민우회·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등은 26일 공동 성명을 발표해 이번 파문에 대한 진상조사와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 대국민 사과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고 성매매까지 했다는 보도에 충격을 금할 길이 없다"며 "국민의 대표로 정부기관들의 1년 행정을 감사해야 할 의원들이 피감기관과 술자리를 가진 것은 뇌물수수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명백한 위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 등을 되짚으면서 "국회의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술자리 성희롱, 성추행 등이 되살아난다, 도덕적 모범을 보여야 할 국회의원들의 왜곡된 술자리 문화와 낮은 성의식 수준이 실망스러운 따름"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권이 오가는 거래에서 당연하게 향응과 뇌물이 제공되는 한국사회의 병폐가 국회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에 분노한다"면서 "법을 만들고 민생을 책임져야 할 국회의원들에게 언제까지 '이런 일이 불법'이라고 알려줘야 하느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