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홍여진. 이름만으로는 바로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 외과 레지던트 민기서(장혁)의 어머니를 혹시 기억한다면, 아니면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올인>의 요정마담이라면, '아, 그 사람' 할 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사랑과 전쟁> 등 여러 TV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조연 배우, 또 한 때 '색깔 있는 영화'에 나왔던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하지만 홍여진씨(49)는 최근 '건강 전도사'로서 자신의 이름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확실히' 알리고 있다. "유방암을 극복한 탤런트" 혹은 "건강을 되찾은 홍여진" 등으로 말이다. 그때마다 그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꼭, 꼭 건강검진 받으시라." "부분 절제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 역시 빼놓지 않는다.
결코 쉽지 않은 '고백'이다. 미스코리아 출신의, 그 누구보다 자신의 몸매에 자부심을 가졌을 여성으로, 또 현모양처보다는 '색깔 있는 중년 여성'이란 이미지가 더 잘 어울리는 배우로, 그리고 아직 사랑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독신 여성으로서 용기가 필요한 '전도'임에 분명하다.
그런 용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또 몸이 아프면 누구보다 서러울 '대한민국 솔로'들에게 특히 홍씨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냥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유방암의 달, 10월만 되면 '병을 소문내느라' 더욱 바빠지는 홍씨와 26일 일산 한 공원에서 마주앉았다.
- 꼭 이맘때였죠? 수술 받았을 때가.
"그렇죠. 조직 검사까지 끝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어요. 아는 후배한테 전화가 왔더라구요. '언니, 주위에서 그러는데 다른 검사도 받아봐야 좋대, 병원에 같이 가보자'. 그래서 준비도 하지 않고 갔는데, 글쎄 바로 입원하라는 거예요. 수술해야 한다고. 일종의 '쇼'를 부린 거죠. 친척들은 다 미국에 살고 있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쇼크 먹을까봐."
평생 잊지 못할 '충격'은 그렇게 다가왔다. 2005년 10월, 홍씨의 가슴에는 핑크 리본이 달려 있었다. 대한유방암학회와 한국유방암건강재단이 '건강한 유방을 지키자'는 취지로 벌이는 '핑크 리본의 날' 홍보대사로 그는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들께 듣게 된 자가 진단법"으로 자신의 가슴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큰 병이 있다는 진단을 받는 순간, 누구에게라도 생생할 것 같습니다."아...나, 이제 죽는구나, 죽는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암 진행 단계를 전혀 몰랐거든요. 1기는 어떻고 또 4기는 어떻고. 그냥 영화에서 보듯 머리카락 빠지고 약 부작용으로 고생하다 결국 죽는다. 모든 암이 그런 줄 알았어요. 또 옛날에 미스코리아 선배 몇 명이 유방암으로 죽었다는 얘기도 들었거든요.
빨리 발견해서 다행이었죠. 조기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 사실 1기와 4기, 한 끝 차이잖아요. 굉장히 큰 기쁨이죠. 이런 생각도 들어요. 그 때 아니었으면 아마 무서워서 병원에도 못 갔을 거다. 놔두면 '그냥 없어지겠지'하고 넘어갔을 거예요. 그런데 홍보대사로 일하면서 유방암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으니까. 주위에서 하도 많이 얘기하니까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 수술실 들어갈 때 누가 손잡아줬나요?
"친구들이었죠. 또 탤런트 박준금씨 그리고 '닌자거북이' 김현영(개그맨)도 왔고. 표영호(개그맨)도 와서 '누나, 어떻게 하냐'며 울먹거리고..."
- 많이 두려웠을 것 같습니다.
"죽어서 못 나온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담담했어요. 다만...이제 마지막 가슴이구나. 얼마나 살릴 수 있을까, 그게 가장 많이 두려웠어요. 결국 부분 절제했죠. 어떤 사람은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고 하는데...많이 찌그러졌어요."
- 방금 표현이 기사로 나가도 괜찮을까요? "상관없어요. 어차피 뭐, 다 알려진 사실이니까요. 물론 내가 한 때 글래머로 알려졌는데...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은 있어요. 하지만 가슴으로 연기할 나이는 지났잖아요?(웃음) 오히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내가 그냥 얌전한 역할만 했던 사람이라면 (유방암 소식이) 그렇게 튀지 않을 수도 있는데...
'어? 저 여자? 미스코리아고 글래머고 한 가슴 하던 여자였는데, 어머, 어떻게 해? 그래도 초기라니 다행이네', 이런 식으로 제가 글래머로 알려졌었기에 사람들한테 내 얘기가 더 어필되지 않나. 더 파급 효과가 크지 않나. 더 솔직히는 제가 남들처럼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고, 혼자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더 용기를 낼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 언론을 통해 건강 전도사로서 노출되는 것. 예인으로서의 생명력을 더욱 길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듭니다. 어떤가요?
"그런 효과는 아직 없는 것 같은데요? 그랬으면 벌써 내가 반은 떴겠죠(웃음). 물론 유방암 관련 기획이나 사업이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은 있어요. 하지만 무슨 효과를 기대하거나 의식하지는 않아요. 주변에서 '유방암 수술 받았다는 것, 뭐 그렇게 자꾸 얘기하고 다니냐'는 얘기를 듣기도 해요.
그런데요. 한 번은 병원에 갔는데, 어떤 분이 저를 붙잡고 막 울어요. '1년 전에 TV에서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 때만 가서 검사 받았어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지금 3기라고. 후회스럽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도 있어요. 내 말을 듣고 병원에 가봤더니 초기였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주위에서 조언을 구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래서 제가 용기를 내는 거죠."
- 암을 이겨냈다거나 유방암을 극복했다는 식으로 소개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제 2년 지났고, 암과 싸우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
"그렇죠. 물론 바쁘지 않을 때, 가끔은 아픈 것만 생각하게 되고, 그럼 (가슴에 손을 얹으며) 여기가 또 울퉁불퉁한 것 같고, 뭔가 잡히는 것 같고...(울먹이며)두렵죠. 쇄골 만지는 버릇이 생겼어요. 전이될까봐 두렵죠. 우울해져요."
그러나 지금 그가 가끔 느끼는 우울함은 2년 전, 유방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기 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당시 홍여진씨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고 했다.
"갱년기 우울증에 빠졌어요. 사십 대 중반을 넘기니까 우울증이 생기더라구요. 촬영할 때도 아주 혼이 나가 있었어요. 내일 모레 50인데...그런 것 있잖아요. 무슨 낙으로 사나. 내가 무슨 최진실처럼 잘 나가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뭐 남들처럼 땅 굴려서 돈 벌어 놓은 것도 아니고.
어머, 이거는 앞에 미래가 하나도 없더라구요. 별 생각이 다 드는 거예요. 우리 엄마가 52살에 돌아가셨거든요? 엄마 늙은 모습을 못 봤죠. 솔직히 오래 살아서 뭐하나, 제일 예쁠 때 죽지. 엄마 따라서 나도 50대 되면 죽어야겠다, 그런 생각도 했었죠. 그런데 50 돼보니까 살만 하더라고(웃음)."
그냥 하는 우스개 소리는 아니다. 그는 나이 들어 다른 기쁨을 찾았다고 했다. 그 기쁨은 멀리 있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정말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의외로 멀어지고, 평소 도움이 될까 생각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마음으로 많이 도와주는" 경험을 하게 됐다.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고 와서" 옆을 든든히 지켜주던 친구, 미처 알지 못했던 기쁨이었다. 물론 새로운 경험의 계기가 '유방암'이 됐음은 물론이다.
"나한테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구나. 수술 받고 회복하면서 실감했죠. 내 목숨은 1년 짜리 계약이 돼 있다, 1년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요. 1년만 산다고 생각해봐요. 그냥 1년 동안 손놓고 드러누워 있어야 되겠어요?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열심히 1년 일해보자. 삶에 애착이 커졌어요. 적극적인 생활로 바뀌었죠."
유방암으로 우울증을 극복한 셈이다. 결코 쉽지 않은 고백에 나설 수 있는 용기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허무'를 벗어난 기쁨을 보다 많은 사람과 함께 누리고 싶은 것 아닐까. 이는 꼭 용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꼭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그는 자신과 같은 '솔로'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예전에는 돈이 없어도 그냥 조금씩이라도 벌면서 살면 돼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젠 아니예요. 혼자 사는 사람들이 자식이 없어, 남편이 없어 우울증이 심각한 게 아니예요. 경제적으로 불안할 때 더 심해져요. 그래서 특히 독신들에겐 경제적 안정이 중요해요. 그렇다고 무슨 돈, 돈, 돈 하란 얘기는 아니예요. 돈? 그건 내가 열심히 하면 따라오게 돼 있어요. 크든, 작든, 내가 필요한 만큼은 따라와요."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목표를 멀리 두지 않으려구요. 그냥 하나, 하나씩. 무엇보다 건강하게 살려구요. 체력 관리도 열심히 하고. 원래부터 운동 많이 했는데, 그 효과를 치료 과정에서 봤죠. 나랑 똑같은 수술을 받은 젊은 여자가 있었는데, 수술 후에도 못 일어나요,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대요. 애가 (살이) 말랑말랑해요.
나는 3일만에 피주머니 달고 퇴원했어요. 다음 치료 단계로 빨리 갈 수 있었죠.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치료기간 짧아지겠죠? 두 달만에 다시 촬영할 수 있었어요. 그 때 느꼈죠. 체력이 왜 중요한가. 우리가 언제 수술 받을지 모르는 거잖아요? 운동해야 돼요. 운동 열심히 하세요."
- 배우 활동에 대한 욕심은 있을 것 같은데요.
"암 걸렸다고, 연기자로서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제가 잘 아는 피디 선생님이 '홍여진씨도 상한가 한 번 쳐야죠'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희망을 가져도 될까요?' 그랬더니, 제 연기에 대해 이것저것 지적해주셨어요.
요즘은 한 장면을 해도 좀 더 신중하게 연기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임해요. 뭐랄까. 옛날과 연기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어요. 짧은 역할이라도, 한 장면을 해도 말이죠. 아프고 나서 부작용인가 봐요(웃음). 그러니까 내 인생, 2005년부터 1살이라고 생각해요, 정신적으로. 연기도 마찬가지구나. 이제 시작이구나."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결혼한 사람들만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나도 그랬고. '가정을 갖고 있어야지, 가정을 오래 유지하려면 내가 건강해야지', 뭐 이런 생각으로. 그런데 아니죠. 솔로로 지내려면 가장 먼저 건강해야 돼요. 그럼 뭘 해야 되죠? 운동 열심히 하고, 밥 잘 먹고?
그것보다 일단 내 몸 상태를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바로 건강검진이란 건데, 나도 그거 잘 하지 않았어요. '병 걸리면 그 때 가서 해결하지, 뭐', 이렇게 생각했어요. 사실은 무서워서, 뭐 나올까봐...이젠 안 무서워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검사했어요. 오죽했으면 방광 검사하러 안 가던 비뇨기과까지 다 갔겠어요. 그래도 얼굴 알려졌는데, 한편 얼마나 우스워(웃음). 그런데 아무 이상이 없다니까, 얼마나 고마워요.
검진 빨리 해서, 고칠 것 고치고. 이렇게 해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거죠. 요즘 무료 검진 해주는 건강 박람회 같은 것도 있잖아요. 괜히 나중에 따로 병원 가서 한다고 미루지 말고, 이런 기회를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겠죠. 솔로는 특히 건강에 관심 가져야 한다. 먼저 건강하자. 그리고 자신감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