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간 갑작스레 하루에 여덟 시간 동안 규칙적으로 시험 공부했다. 여기 독일 법학 대학에서 있을 독일- 그리고 유럽 정보법과 인터넷법 시험날인 오늘 제대로 잠도 못 잔 상태로 새벽 일찍 책상에서 일어났을 때는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학교 가야 할 내 딸을 깨우고 부리나케 부엌으로 가 아이의 도시락을 준비했다. 우선 애를 위해선 카로 커피 그리고 내가 마실 진한 커피를 끓였다.
몇 일전부터 아이도, 내가 오래 전 논문 쓸 때와 비슷하게 열심히 준비하는 것을 옆에서 본지라, 오늘 따라 일어날 때, 아침 먹을 때 이전처럼 이것저것 투정하지 않는다. 놀라울 정도로 조용히 먹곤 자기가 사용한 접시도 부엌에 갖다 놓는다. 소리 없이 책가방을 챙긴 후 학교에 간다고 말하면서 나를 붙잡곤, "엄마, 엄마는 오늘 시험 잘 볼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시험 볼 때 마음 가다듬고 시험 잘 봐!“라고 말한다.
난 "시험이 오후 늦게 있어. 아니, 보통 오후 여섯 시부터 여덟 시까지 그 강의가 있었으니, 초저녁이라고 볼 수 있겠다"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그렇게 늦게? 그럼 내가 나중에 엄마가 그곳으로 가는 것 보겠네?"라고 답한다. 그리곤 내 딸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오후 다섯 시 반까지 난 독일-, 유럽 정보권에 따른 여러 가지 주의사항들과 거기에 따른 법 조항을 공부한 후 무척이나 긴장된 마음이지만 천천히 옷을 갈아입었다. 시험문제가 네-다섯으로 각각의 물음에 대해서 연관된 법 조항과 연관된 판례를 들어가면서 물음 안에 들어있는 것을 자세히 열거해야 한다는 것을 언젠가 독일 뒤셀도르프 고등법원 판사인 담당교수한테 들었다. 그 모든 것이 너무도 광범위하기에 좀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배운 것을 지난 주 열심히 읽고 준비했다. 한 문장조차도 못쓸 것 같다는 두려움은 다행히도 전혀 없었다. 어쨌든 내 딸이 나를 안고 동시에 뽀뽀하면서 "잘될 거야, 엄마! 성공!“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힘을 주는 그 애를 바라보면서, "나, 지금 빨리 가봐야 돼. 연구소의 홈페이지를 통해 이 시험은 다섯 시부터 여덟 시까지라고 읽었지만 그래도 약 이백 명이 시험을 치르니까 늦게 가면 자리를 못 잡을 것 같아. 하긴 시험준비 안 한 애들은 이미 포기하고 그리로 안 오겠지만. 난 어쨌든 이전처럼 강의시간과 똑같이 여섯 시쯤에 가려고 해. 두 시간이면 족하다고 보니까. 모르면 쓸 수 없는 것이고 아는 것은 그 시간 안에 다 쓸 수 있다고 봐. 너, 나중에 보자.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올 거야. 내가 아는 것만 나왔으면 좋겠다."하곤 자전거가 세워있는 곳으로 갔다.
시험 강의실 의외로 조용, 이게 무슨 일?
내가 여섯 시 십 분전에 자전거를 유유히 타고 우리가 항상 강의를 듣던 강의실이 있는 건물로 시험 보러 갔다. 보통 불이 켜져 있고 독일법대생들이 많이 모여 있거나 강의실에 앉아 수다 떨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하긴 계절이 겨울이라 추웠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찍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 건물이나 건물 안에 있는 강의실들이 의외로 몹시 캄캄해 나를 당황케 했다. 그래도 어쩌면 내가 시간을 잘못 읽었거나 아니면 좀 일찍 왔을 거라고 생각해서 우선 그 앞에서 약 십 분간 서있었다.
여섯 시가 넘어서도 한 사람도 나타나질 않았다. 어쩌면 내가 시험장소가 바뀌었는데, 제대로 못들었거나 시험장소가 쓰인 연구소 홈페이지를 못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자 겁이 덜컥 났다. 손목시계를 보니 여섯 시 오 분이 막 지나갔다. 내가 이렇게 막연히 기다리면 일년에 한번만 있는 이 시험에 참석 못할 것 같아 내가 아까 세워뒀던 자전거를 다시 타고 연구소로 향했다.
연구소에 도착해 연구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사람들한테 물어보려고 했는데 문은 잠겨있었다. 밖에서 건물 안을 보니, 몇몇 사무실과 연구소에 따른 도서실은 불은 비록 켜 있었지만, 사람이 전혀 안보였다. 물론 이 시간에 비서들이 아무도 사무실에서 근무하지 않고 집에 간지 오래된 것을 안다. 그래도 연구소 도서실에 불이 켜있었기에 그곳에서 특별히 뭔가를 찾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기에 어떻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문을 한동안 두드렸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시계를 보니 여섯 시 십일 분을 가리켰다. 해서 문을 두드리는 것을 멈추고, 그럼 어떡해야 하나 하고 잠시 열중해서 생각하니, 얼마 전 이 강의에 같이 참석하는 아이들 중 그 중 내가 가끔 대화 나누었던 두 명의 전화번호를 내가 언젠가 적어 놓은 기억이 났다. 재빨리 주소록을 꺼낸 후 만약 내가 그 애와 통화한다면 그 애도 아직 시험장소에 아직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 그 애가 정확한 장소를 알려줄 수 있을 거고 그렇지 않고 내가 그녀와 대화 나눌 수 없이 메일박스에 얘기해야 할 상황이라면 그 애는 벌써 내가 지금 모르는 시험장소에 있을 거다. 어쨌든 난 희망을 가지고 그들의 핸드폰 번호를 돌렸다. 안타깝게도 두 아이들의 핸드폰번호들을 돌렸을 때엔 하나같이 메일박스에 말을 해야 되었기에 그냥 끊었다.
음, 시험장소가 바뀐 것은 사실이라고 인식되어 소름 끼칠 정도로 숨이 막혀지는 것 같았고 마음이 급해지면서 속도 울렁울렁거렸다. 다시 연구소의 홈페이지를 봐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이유인진 모르지만 어쩌면 어제나 오늘 갑작스레 시험장소를 바꿨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다들 시험보고 있는데 나는 어디서 시험 보는 줄도 모르고 이렇게 밖에서 헤매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아프게 했다. 다시 자전거의 열쇠를 푼 후 곧장 집으로 향했다.
다시 집으로, 컴퓨터로 정확한 장소 확인
자전거를 몰면서 아울러 손목시계를 보니 여섯 시 십칠 분을 가리켰다. 집 문을 열려 하는데 집 문이 잠겨있어 문 열라고 소리치면서 미치게 초인종을 누르니 내 딸이 무척 놀라워함을 감추지 못한 채 벌써 끝났냐고 묻는다. 난 짧게 신경질을 내면서 그간의 상황을 말하곤 곧바로 컴퓨터를 켰다. 워낙 낡은 컴퓨터라 여기서도 시간이 없어짐을 절실히 느꼈지만 내가 도대체 어디에 서있는지를 아니 내가 지금 뭔가 잘못한다면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알아야 했다.
마침내 연구소의 홈페이지가 보여 정보권과 인터넷권 분야로 자세히 검색할 수 있었다. 재빨리 보니 일주일전과 변함이 없었다. 시험장소가 변경되었다는 새로 적힌 글도 없었다. 시계를 급히 보니 이젠 여섯 시 반이 막 지나가고 있었다. 다시 가방을 어깨에 건 후, 애한테는 내가 어떡하든 알아봐서 시험볼 거라고, 그렇지 않으면 무척이나 속상하고 화가 나지만 내년으로 미뤄야 될 것 같다고 말하면서 집을 나왔다.
조금 전에 집 근처에 세워뒀던 자전거를 바깥으로 끌면서 책가방을 자전거 뒤에 얹히고 곧장 연구소로 향했다. 그곳에 또다시 도착하니 아까와 다름없이 건물 안에 있는 몇몇 사무실은 불은 비록 켜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은 전혀 안보였다. 문을 두드렸다. 이번엔 아주 세차게 두드렸다. 내가 어떤 영화 장면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쉬지 않고 너무 세차게 두드린 덕분에 손이 아파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소 안엔 누군가가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아니 바랐기에 손이 점점 더 아파와도 끊임없이 더욱 더 세차게 두드렸다. 오-육 분을 쉬지 않고 두드린 것 같았다.
누군가가 층계에서 내려오면서 문 쪽으로 왔다. 그 사람을 보자 손짓 발짓 다하면서 더 세차게 문을 두드리니, 그 사람은 문을 열곤 내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황을 설명하니, 자신도 그것은 잘 모르지만 알아보겠다고 하면서 나보고 도서실로 같이 들어오라고 했다.
도서실 안으로 간 그는, 내가 집에서 알아본 것과 똑같이 연구소 홈페이지를 보려고 했다. 나도 그 면을 다 읽어봤지만 시험장소 변경에 관한 소식이나 통지는 없었다고 한다. 자기도 그 면을 본 후 그렇다면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때 마침 도서실에서 자료를 찾으면서 공부하고 있던 어떤 여자가 우연히 우리말을 들은 후, 아마도, 그런 중요한 시험은 연구소에서 결정하지 않고 대학 본부내 시험청에서 결정내기에 시험청 홈페이지를 봐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가 알아보니 실제로 그녀가 한 말처럼 시험청에서 시험장소를 지정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곳은 대학본부 근처로 법과대학교 본부 안에 있는 강의실이었다.
시계를 보니, 이젠 여섯 시 사십오 분을 가리켰다. 시험장까지 가려면 빨라도 자전거로 십오 분이 걸릴 것이다. 그래도 적혀있는 시간이 여덟 시까지라고 적혀있으니 비록 나에겐 한 시간만이 남았어도 내가 준비를 어느 정도 한 상태라 삼분의 이는 할 수 있을 거라고 (맘)속으로 그렇게 상상하면서 아니 희망을 갖고 우선 그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후 서둘러 자전거 세운 곳으로 가서 "시험장"으로 향했다.
마침내 시험장 도착, 하지만 이십 분 후면 시험 끝나
오늘 시험장으로 사용하는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니까 그 안에 있던 어떤 남자가 내 길을 막으면서, "Hier schreiben Klausur! Bitte, stoeren Sie nicht. (지금 여기에선 시험보고 있는 중입니다. 방해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난 여기가 맞다는 것에 안심이 되어 우선 한숨 놓고, 그에게 나 역시 이 시험에 참석하러 왔음을 말하니 그 남자는 무척 놀라워하면서 "Was meinen Sie, welche Klausur?(무슨 시험을 얘기하냐?)"고 묻기에 정보법과 인터넷법 시험 이라고 말했다. 이 시험은 벌써 다섯 시에 시작했고 이십 분 후면 시험지들을 거둘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여덟 시까지 라고 적혀있는 것을 읽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만약 정 그렇다면 왜 그러냐? 나에게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해 달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거기에 나타내준 시간정보는 강의실을 빌리는 시간만을 나타냄이라고 했다. 바로 이 순간 나에겐 내가 마침내 시험장에 왔어도 이 시험을 못 볼 것 같은 커다란 두려움이 생겨, 내가 겪은 상황을 재빨리 말했다. 나는, 나의 부차적인 특수전공이니 이 시험을 이번에 꼭 봐야 하니, 그 남자에게 예외가 가능하다면 나에게 시간을 더 달라고 했다.
그는 나를 안으로 인도하면서(그 남자를 따라가면서 주위를 보니 상상은 했어도 엄청나게 많은 학생들이, 적어도 백오십 명 정도, 조용히 그러나 열심히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두 시간 늦게 왔다는 점이 나를 또 한번 더 아프게 하여 더구나 시간부족에 대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압박감이 확 왔다), 그는 나를 딱 한군데만 비워있는 가장 앞자리를 가리키면서 그리고 시험 문제들이 들어있는 종이를 주곤, 나에게 "예외로" "십분"만을 더 주겠다고 했다.
부리나케 시계를 보니 일곱 시 오분이었다. 그것은 내가 이십오 분 안에 모든 물음을 정확히 답할 수 있어야 된다는 사실이었다. 재빨리 네 가지의 시험 물음들을 대충 읽어보았다. 모든 질문들이 너무도 광범위 한 것을 감지했지만 그래도 그 질문들을 다행히도 빨리 파악했기에 내가 어느 정도 잘 아는 분야가 들어있는 물음을 먼저 답하리라 마음먹고 펜을 들고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커다란 압박감으로 철자가 제대로 적어지지도 않았고 온몸이 떨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일 번과 사 번의 질문이 어떤 내용의 답을 원하는지를 알기에 내가 거기에 알고 있는 판례와 법조를 쓰면서 문제상황에 대한 해결이나 현 연구상태를 자세히 열거했다.
바로 이때 시험 감독하는 이들이 시험지를 걷기 시작했고 아울러 시험에 참석한 애들이 일어서면서 그리고 나가면서 커다랗게 말들을 하는 것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커지고 심지어는 시끄러울 정도로 얘기를 하면서 시험장을 나갔다.
사실 시험장의 이런 상황은 보통이지만, 내가 갖은 바로 그 순간들은 너무도 힘들어서 미칠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또다시 집중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손가락으로 두 귀를 꼭 막은 채 나머지 질문들을 또 읽어 보았다. 이번의 질문을 하기란 너무도 많은 숙고를 요구한다는 것을 감지하여 안타깝지만 시간상 젖혀놓고 그리곤 삼 번의 질문은 답을 반만 했다. 시간이 인젠 전혀 없었다.
아까 나와 얘기했던 그리고 시험 검사하는 남자가 나에게 와서 이젠 내라고 요구했다. 그는 친절하게 만약 점수결과가 나쁘거나 심지어 이 시험에 떨어지면 내년에 또 보라고 하여, 난 사실 잘 보려고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지금은 내가 단지 합격만 하고 싶다고 하곤, 아무튼 나에게 십분 더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시험장을 나갔다. 자전거 세워둔 곳으로 가면서 어둡지만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만이 있었다.
추신: 시험 본지 오 개월 이후 용기를 내서 시험 청에 가니 정보 법 시험에 붙었다고 들었다. 내가 비록 모든 물음에 답은 못했지만 자세히 썼던 그 두 대답이 다시 말해서 일 번과 사 번이 아주 정확했었다고 한다. 삼 번은 절반만 맞았고 사실 그 나머지는 시간이 부족해 전혀 열거할 수 없었다. 이번의 물음은 적어도 삼십 분을 숙고 그리고 열거해야 됨을 요구하는 질문이었다. 어쨌든 내가 그렇게 극적으로 보았던 시험에 붙었다는 사실 하나가 그날 오후를 흐뭇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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