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적인 일자리를 찾아서 갈 필요가 있지, 공무원이 되겠다는 소극적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기사를 보니 이명박 후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왜 다들 그런 소극적 생각에 매달릴까?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취업난은 해가 가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도전적인 일자리를 찾아가지 않는 젊은이 탓이라는 어른들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더 나은 기회를 찾고자 해외로 나온 한 젊은이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취업난이라고 하지만 어떻게든 삶에 도전하려는 젊은이의 모습을 통해 사회가 반성하고 도와주어야 할 부분은 없을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그래서 1부 <그래 다 내 탓이다, 하지만>에 이어 2부 <정말 다 내 탓?>를 연재하고자 한다. 부디 나무를 통해 숲을 그릴 수 있는 작업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기자 주> “어?”
5분이라는 시간이 흘러 강의실에 들어갔는데도 5분 전에 돌린 종이가 모두 학생들 책상 앞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멍하니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다들 무표정하게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1시간 넘게 열심히 강의했는데 9명 중 단 한 명도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다들 심심해서 한 번 따라와 보았을 뿐이란 말인가! 그 순간 내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으실 거예요?” 앞 자리에 앉아 있던 한 학생이 옆에 있는 여학생에게 들을 것이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무도 안 듣는다고 하니 별로 듣고 싶지 않아요.” 들을 생각은 있으나 혼자 들으면 재미없으니 안 듣겠다는 이야기였다. 단 한 명만이라도 잡고 싶다는 생각에 어떻게 설득을 할까 열심히 고민을 해보았으나 도통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 밖에 시간 없는데 그때 같이 들을래요?” 그때 아까 옆에 있는 여학생에게 ‘들을거냐?’고 물어보았던 여학생이 다시 그 여학생에게 같이 듣자고 권유하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일요일 아침!’ 주말에 일을 하더라도 일요일만큼은 쉬고 싶었기에 ‘일요일’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조금 구겨졌다. “선생님, 일요일에 강의 들을 수 있죠?” “예. 물론이죠!” 들은 학생은 9명, 등록한 학생은 2명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내 힘으로 모은 수강생이 곧 생긴다는 사실에 곧바로 가능하다고 대답해 버렸다. 9명이나 데려와 시강을 하고 결국 등록시킨 것은 2명에 불과해 약간 실망스러운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특히 원장이 “주말에 9명이나 듣고 갔다면서요?”라고 묻자 더욱 민망해졌다. “아, 예. 뭐 듣기는 9명이 들었는데 2명밖에 등록을 안 했네요.” “아, 뭐 첫 술에 배부르겠습니까?” 민망해하는 나를 원장이 격려해주자 힘이 솟았다. 확실히 누군가에게 듣는 격려라는 것이 묘한 힘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어찌 격려만 듣고 살 수 있을까. 전단을 돌리기 시작한 지 몇 주가 지나자 그리 유쾌하지 않은 소리도 듣게 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어느 날인가 내게 교재와 시간을 꼬치꼬치 캐묻던 전화에서부터였다. “양 선생님이죠? 교재 뭐 쓰세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본능적으로 이렇게 되물어보았다. “국수 대학교 학생이세요?” “아닌데요.” “그런데 어떻게 저를 아세요?” “아, 학원 문밖에서 돌리는 전단을 받았어요.”
학원 문 밖에서 돌리는 전단지를 받았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이들이 내 경쟁자임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저는 국수 대학교 밖에서 전단지 돌린 적 단 한 번도 없는데요.” “아… 그, 그게, 아무튼 받았어요. 학생한테 받았던가?” 내 질문에 전화를 건 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끝까지 묻고 싶은 것을 묻겠다는 눈치였다. 그에 기분이 상하여 나도 모르게 한국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말 하실 줄 아시죠? 왜 그러세요?” “예… 아 몰라요. 진짜 몰라요.” 중국인이 하는 중국어라기보다 중국 교포들이 하는 중국어 어감이 났으므로 끈질기게 파고들었으나 전화를 건 쪽은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내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했나 싶은 생각도 들어 후회하는 마음도 들었다. ‘정말 학생이었으면 어쩌지?’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예상이 분명히 맞는 것 같았다. 통화 도중 난 분명히 ‘한국어 할 줄 알죠?’라고 한국말로 물었는데 상대방이 ‘못 한다’고 중국어로 대답한 것이었다. 정말 할 줄 모른다면 내 질문 자체를 이해 못 해야 하는 게 옳았던 것 아닐까? 내가 중국 교포 밥그릇을 빼앗고 있는 것인가?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넘어가기로 했으나 며칠 후 또다시 경쟁자를 만나게 되었다. 대학교에 들어가 전단을 돌리고 있는데 한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하여 웃으며 전단을 건네주었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묻는 것이었다. “중국말 할 줄 알아요?” “네, 조금요. 잘은 못 해요.” “잘 못 하는데 중국어를 어떻게 가르치지.” 비꼬는 듯한 그 말에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세 마디 나누었을 뿐이지만 그 여자 말투로 미루어 보아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중국 교포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러면 중국 교포들은 그렇게 나쁜 발음으로 한국어를 어떻게 가르쳐요?”라고 되받아치고 싶었지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꾹 참아 눌렀다. 그래도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아 한마디 하고 말았다. “한국말 할 줄 알잖아요.” 그 여자는 모르는 척 가만히 서 있었다. “다 알거든요. 딱 들으면 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 대학교 졸업 후까지 오로지 배우고 관심 있었던 것이 말과 관계된 것이라 그런지 귀가 언어에는 비교적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여자 언어 습관이 분명 한국어가 어느 정도 입에 밴 어감이었다. 기분이 나빠 그 여자를 외면하자 그제야 그 여자가 광고지를 눈앞에 보여주며 내게 한마디 했다. “사실은 이 학원에서 일해요. 저기다 붙이고 갈 거예요.” 그 여자도 사실은 학원 광고 전단을 붙이러 왔던 것이다. 그 학원에서도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기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전화 통화뿐 아니라 실제로도 이런 일을 겪자 다소 혼란스러웠다. ‘중국 교포들 밥그릇을 내가 뺏고 있는 거 아닌가.’ 자꾸 그런 일이 생기니 괜히 내가 중국 교포들에게 못할 짓을 한다는 어이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어쨌든 중국도 경제는 시장 경제 체제 아니던가. 그렇다면 경쟁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마음을 고쳐먹고 버티기로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런 경쟁자들이 아닌 엉뚱한 곳에 있었다. -8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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