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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여행'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무엇보다 가장 먼저 '자전거 여행'을 얘기할래요.

자동차를 타는 사람이 늘어나고 살아가는 모든 '수단'이 빨라지고만 있는 이때,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내가 사는 둘레를 구석구석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이 온통 빠르게 바뀌고, 사람 마음마저도 뭐가 그리 바쁜지 자꾸만 빠르고 편한 것만 좇게 되지요.

가끔 다른 사람과 함께 나들이를 가면 무언가에 쫓기듯 휑~ 하고 돌아보고 올 때가 여러 번 있었답니다. 틀림없이 아주 멋진 곳에 다녀오긴 했는데, 가슴에 남는 게 하나도 없어요.

바로 그 까닭은 이래요.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구석구석 찾아다니면서 그곳에 있는 어느 것 한 가지라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모두 살펴보고 느끼고 오는데, 그에 견줘 다른 이와 갈 때에는 늘 겉핥기만 하고 온 듯해서 찜찜할 때가 많았던 거예요. 그 뒤부터 나들이 길에는 늘 남편과 함께 오붓하게(?) 다닌답니다.

'여행'이라고 하면, 나날이 똑같은 삶에서 잠깐 벗어나 낯선 곳을 다니며, 보고 듣고, 배우면서 '쉼'을 누리며 자기 삶을 더욱 아름답게 채우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렇다고 하면, 여행을 하는 동안 더욱 자세하게 보고 들으며 느긋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자전거 여행'은 그야말로 딱 알맞은 '교통수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간다면 더욱 좋겠지요?

나들이 가기에 앞서 꼼꼼하게...

길, 고향, 문화재가 있는 풍경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낯선 곳에서 만나는 풍경은 퍽 살가워요. 길, 고향, 문화재가 있는 풍경을 따라 자전거 나들이 한 번 떠나 보실래요?
길, 고향, 문화재가 있는 풍경을 따라자전거를 타고 낯선 곳에서 만나는 풍경은 퍽 살가워요. 길, 고향, 문화재가 있는 풍경을 따라 자전거 나들이 한 번 떠나 보실래요? ⓒ 손현희

우리 부부는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자전거를 타고 나갑니다. '쉬는 날' 하루를 즐겁게 보내려고 가기에 앞서 한 주 동안 미리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지요.

우리는 경북 구미에 살고 있는데, 구미와 가까우면서도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지역(의성·군위·성주·김천)을 하나 고릅니다.

군청 누리집(홈페이지)에 가서 그 지역에는 어떤 볼거리가 있는지,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차가 아닌 자전거로 가야 하기에 어떤 길이 자전거 타기에 가장 알맞은 길인지를 꼼꼼하게 챙겨요. 위성지도(구글어스)와 콩나물지도(http://www.congnamul.com/)를 보고 가야할 길을 미리 살펴본답니다.

또 자전거를 온종일 타려면, 생각보다 먹을거리도 많이 준비해야 해요. 행동식(물·초콜릿· 간식거리)과 김밥, 삶은 고구마나 떡(목적지에 마땅한 밥집이 없을 때)을 가방에 넣고 되도록 짐을 가볍게 합니다. 또 사진기와 간단하게 여행정보를 적은 수첩 하나면 준비 끝!

고향냄새, 사람냄새, 이보다 좋은 여행이 또 있을까?


구미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쯤 달려 벗어나면 어디에서든지 조용한 시골마을을 볼 수 있어요. 어릴 적 고향냄새가 짙게 배어나는 그런 곳이지요. 철따라 모습을 달리 하는 들판과 산은 아주 멋진 풍경입니다. 또 마을 모습도 도시에서는 만날 수 없는 시골만이 간직한 정겨움과 살가움이 오롯이 담겨있지요.

봄부터 겨울까지 빛깔이 다른 풍경을 보며 마음은 어느새 편안해지고 감빛, 풀빛, 낮은 지붕을 이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을 만날 때면 퍽 정겨워요.

요즘은 굳이 큰 도시가 아니라도 집집이 높은 담장을 쌓고 대문을 굳게 잠가놓은 걸 많이 보지요. 그러나 시골마을에서는 활짝 열린 집이 많아요. 아예 대문도 없는 집도 더러 있고요. 말할 것도 없이 높게 쌓은 담장은 거의 없답니다.

열린 문으로 빠끔히 들여다보면 금방이라도 고향 할머니가 버선발로 나오실 듯 하고 낮은 울밑에는 봉숭아, 맨드라미, 키 작은 채송화도 곱게 피어있지요. 요즘 같은 가을철이면 담장 너머까지 주렁주렁 빛깔 곱고 탐스런 감이 파란 하늘에 커다란 구슬을 여럿 매단 듯 열려 있고요.

고향냄새, 사람냄새 살가운 정을 느끼며, 고향을 느껴 보세요. 마을 사람을 만나면, 먼저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말문을 트면, 마치 도시로 떠난 자식을 마주하듯이 따뜻한 웃음 띠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쏟아내곤 하지요.
고향냄새, 사람냄새살가운 정을 느끼며, 고향을 느껴 보세요. 마을 사람을 만나면, 먼저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말문을 트면, 마치 도시로 떠난 자식을 마주하듯이 따뜻한 웃음 띠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쏟아내곤 하지요. ⓒ 손현희


낯선 마을에 갔다가 얻어 온 감과 모과  낯선 마을에서 어르신 손에 이끌려 안방까지 들어가 맛난 시골밥상도 받아보고, 갈 때 감이랑 모과랑 한 보따리 싸주셨어요. 우리네 어머니 같은 살가운 정이 무척 고마웠답니다
낯선 마을에 갔다가 얻어 온 감과 모과 낯선 마을에서 어르신 손에 이끌려 안방까지 들어가 맛난 시골밥상도 받아보고, 갈 때 감이랑 모과랑 한 보따리 싸주셨어요. 우리네 어머니 같은 살가운 정이 무척 고마웠답니다 ⓒ 손현희

삽짝 밖에서 만나는 마을 사람은 하나 같이 정겹고 살가워요. 먼저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말문을 트면, 마치 도시로 떠난 자식을 마주하듯이 따뜻한 웃음 띠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쏟아내곤 하지요. 덕분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마을에 얽힌 이야기도 듣고, 헤어지려고 하면, "밥은 먹었느냐" "감이라도 좀 가지고 가!" 하면서 우리네 어머니처럼 자꾸만 이것저것 챙겨주시려고 해요.

실제로 낯선 마을에 갔다가 마을 어르신 손에 이끌려 안방까지 들어가서 고향냄새 물씬 나는 시골밥상도 받아봤고, 감이랑 모과랑 나물도 가방에 가득 넣어주는 바람에 그 정이 하도 고마워서 무거운 걸 등에 지고 온종일 다닌 때도 여러 번 있었어요.

자꾸만 사라지는 '옛길'

자동차가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보니, 길도 자꾸만 새롭게 바뀌는 곳이 참 많습니다. 2006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동차등록대수'가 1590만 대가 된다고 해요. '우리나라 인구수'가 남한만 4800만 명이니, 거의 세 사람에 하나 꼴로 차를 가졌다고 봐야 해요. 그러니 교통정책도 '차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게 마땅할 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렇다 보니, 곧고 빠른 '새 길'이 자꾸만 늘어나는 걸 탓할 수는 없지만 그 옛날처럼 구불구불하고 먼지 나는 흙길을 보기가 매우 힘들어요. 시골에서조차 마을 안까지 아스팔트로 쫙 깔려 있으니까요. 어쩌다가 흙길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지요.

자꾸만 사라지는 '옛길' 우리는 아직도 고향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길을 만나면 정겨운 마음에 가슴이 먹먹할 때가 많아요. 가끔  이런 풍경을 보고 "가슴 먹먹하다"고 말하면 남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래요.
자꾸만 사라지는 '옛길'우리는 아직도 고향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길을 만나면 정겨운 마음에 가슴이 먹먹할 때가 많아요. 가끔 이런 풍경을 보고 "가슴 먹먹하다"고 말하면 남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래요. ⓒ 손현희

우리는 아직도 고향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길을 만나면 정겨운 마음에 가슴이 먹먹할 때가 많아요. 가끔  이런 풍경을 보고 "가슴 먹먹하다"고 말하면 남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래요.

어렸을 때, 우리가 살던 고향 마을과 견주어보면서 마을 앞에 졸졸졸 흐르는 도랑이 있고, 낮은 담장 너머로 감과 대추가 주렁주렁 열린 시골집, 마을 앞에 우뚝 서있는 낡은 '확성기탑', 어쩌다가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나는 집을 보면 더욱 그렇지요. 또 농사일에 쓰인 손때 묻은 농기구가 처마 끝에 걸려 있으면 어릴 적 생각이 더욱 많이 나지요.

요즘은 자전거를 타고 시골마을을 다니면서, 이런 풍경을 사진에 담으려고 무척 애 쓴답니다. 하나하나 모아 놓으면 나중엔 참으로 소중한 자료도 될 터이고, 무엇보다 날이 갈수록 이런 풍경이 자꾸만 사라지는 게 몹시 안타까워서 그런답니다.

고향 풍경 따라 가다가 덤으로 만나는 옛 문화재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따라 정겨운 고향 풍경을 가슴으로 즐기며 가다 보면, 뜻밖에 아주 소중한 얘깃거리를 만날 때가 많이 있어요.

"저 길 끝에 뭐가 있을까?"
"글쎄, 한 번 가보자!"
"그래 가보자! 가다 못가면 다시 돌아 나오면 되지 뭐. 자전거는 이래서 좋잖아!"


참말로 그래요. 만약에 차를 타고 왔다면 좁은 골목까지는 구석구석 모두 돌아볼 수 없을 거예요.

모퉁이 길을 돌아가면 뭔가 있을 듯하여 들어갔다가 뜻밖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옛 문화재를 만날 때도 여러 번 있었어요. 요즘 내가 쓰는 <두 바퀴에 싣고 온 이야기보따리> 연재기사 첫 꼭지로 글을 쓰기도 했는데,

해평동 북애고택(경북민속자료 41호) 골목길 끝이 궁금하여 들어갔다가 꽤 크고 멋스런 옛집을 만났을 때 그 기쁨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뛰어요.
해평동 북애고택(경북민속자료 41호)골목길 끝이 궁금하여 들어갔다가 꽤 크고 멋스런 옛집을 만났을 때 그 기쁨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뛰어요. ⓒ 손현희

조선시대 때, 어느 형님이 자기가 사는 집 바로 앞에다가 아우에게 지어준 집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던 '해평북애고택(경북민속자료 41호)'과 '쌍암고택(중요민속자료 105호)'도 그렇게 찾아낸 곳이었어요.

골목길 끝이 궁금하여 들어갔다가 꽤 크고 멋스런 옛집을 만났을 때 그 기쁨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뛰어요. 그 뒤로도 서너 번 이 댁에 찾아가서 새로 고쳐 짓는 '북애고택'을 구경하기도 했답니다.

또 지난 5월에는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다가 구미시 장천면 오로리 산 밑에 우뚝 서있는 고려시대 석불인 '미륵당석조미륵입상(지방문화재자료 322호)'도 만났어요.

전쟁 통에 불에 타버리는 바람에 가까이 다가가서 봐도 얼굴 모양을 쉽게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이 일그러져 있어 퍽 안타깝기도 했지요. 이 불상이 있던 바로 곁에 있는 '중앙고속도로' 공사 때 지금 자리로 옮겼다고 하는데, 워낙 구석진 자리에 있어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아 조금 아쉬운 마음도 남았지요. 

이 날은 집으로 돌아올 때, 이 불상 앞을 지나 산 하나 넘으면 구미로 가겠거니 생각하고 고개 하나 넘었다가 그만 군위까지 가게 되어 한참을 빙 돌아서 돌아왔던 기억도 나요.

'미륵당석조미륵입상(지방문화재자료 322호)' 길을 잘못 들어 찾아낸 우리 소중한 문화재에요. 산 밑에 구석진 곳에 숨어 있어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아 많이 아쉬웠지요.
'미륵당석조미륵입상(지방문화재자료 322호)'길을 잘못 들어 찾아낸 우리 소중한 문화재에요. 산 밑에 구석진 곳에 숨어 있어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아 많이 아쉬웠지요. ⓒ 손현희

낙산리삼층석탑(보물 469호) 마을 뒤편으로 널따란 들판이 보이고 그 한 복판에 돌탑이 우뚝 서 있었어요.
낙산리삼층석탑(보물 469호)마을 뒤편으로 널따란 들판이 보이고 그 한 복판에 돌탑이 우뚝 서 있었어요. ⓒ 손현희

한 번은 해평면 '낙산리'라는 마을에 갔을 때였어요. 이 마을에 남달리 감나무가 많아서 그 사진을 찍으려고 들어갔는데, 지난 날 고향집과 같은 마을 모습에 반하여 이리저리 따라 가다가 깜짝 놀랐어요.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서 모퉁이를 돌았는데, 마을 뒤편으로 널따란 들판이 보이고 그 한 복판에 돌탑이 우뚝 서 있었어요. 알고 보니, 통일신라 때에 세운 '낙산리3층석탑'이었어요.

이렇게 어떤 마을이든지 가서 보면, 가는 곳마다 숨어있는 우리 옛 문화재를 만날 때가 여러 번 있었답니다.

잘 알려지지 않고, 또 아주 소박한 문화재이지만 알고 보면, 매우 남다른 얘깃거리도 있고, 나름대로 매우 소중한 '우리 것'이라서 여간 반갑고 기쁜 게 아니에요. 또 하나 재미난 건, 길을 따라 가면 뭔가 있을 듯해서 덮어놓고 갔다가 남의 집 마당이 나와서 화들짝 놀라 돌아 나올 때도 여러 번 있었지요.

고향, 길, 문화재, 그리고 사람냄새

흔히 '여행'이라고 하면, 멀리 나가봐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을 많이 봅니다. 더 나아가 이젠 다른 나라에 갔다 와야 '제대로 된 여행'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여럿 봤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 하고 말하고 싶어요.

내가 사는 둘레에도 얼마든지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 많으니까요. 어쩌면 늘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또 시시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더 느긋한 마음으로 찾아보면 잘 몰랐던 좋은 볼거리가 많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작은 시골마을에서 고향 할머니 같은 살가운 정도 느낄 수 있고 이젠 자꾸만 사라지는 풍경을 찾아 떠나는 것도 꽤 뜻 깊은 여행이 아닐까요?

이렇게 마을마다 구석구석 찾아다니다 보면, 뜻밖에 소중한 우리 문화재도 보고 '문화나, 역사, 조상의 얼'이니 하며 굳이 큰 뜻을 품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옛 것'을 구경하며 숨은 얘기도 들을 수 있으니 매우 멋진 나들이가 되지 않을까요? 더구나 차를 타고 씽~ 하고 달리다 보면 자칫 놓치기 쉬운 것들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하나하나 자세하게 구경할 수 있으니 더 없이 좋겠지요?

어때요? 자전거를 타고 시골마을로 한 번 나들이 해보지 않으실래요?



#여행#자전거여행#고향풍경#옛길#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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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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