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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시베 숲을 빠져나온다
안다시베숲을 빠져나온다 ⓒ 김준희

안다시베 국립공원에 인드리원숭이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공원에는 인드리원숭이를 포함해서 10종의 여우원숭이가 살고 있다. 그 중에서 4종은 야행성이고, 6종은 주행성이다. 인드리원숭이, 왕관시파카, 갈색여우원숭이 등이 주행성에 속한다. 생쥐여우원숭이, 아이아이(Aye-Aye) 등은 야행성에 속한다.

이 야행성 동물들을 보고 싶으면 안다시베 공원에서 야간트레킹을 해야 한다. 야행성 동물들이 나오는 지역으로 2~3 시간 걸어가서 그 동물들을 보고 돌아오는 것이 야간트레킹이다.

"야간 트레킹은 하지 않을 거예요?"

주간트레킹을 마치고 숲을 나오면서 가이드 클로디아가 나에게 물었다. 주간트레킹을 마친 시간은 대략 12시. 사실 나는 갈등을 하고 있었다. 갈등을 하는 이유는 2일 후면 귀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내일은 수도 안타나나리보(타나)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월요일 오전 7시 40분 비행기를 타고 방콕으로 가야 한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오늘밤이 마다가스카르에서 여유있게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밤인 셈이다.

안다시베 숲을 빠져나오며 갈등하다

오늘밤을 어떻게 보낼까? 아니 어디서 보낼까? 몇 가지 선택의 여지가 있다. 클로디아의 말대로 야간트레킹을 하고 여기서 밤을 보내는 방법이 있다. 아니면 오늘 타나로 돌아가서 귀국준비를 하면서 쉴 수도 있다. 또다른 방법은 다른 도시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밤을 보내고 내일 타나로 돌아가는 것도 괜찮다.

타나로 돌아가는 것은 내일해도 충분하다. 숲을 나오면서 나는 야간트레킹과 다른 도시로의 이동 중에서 어떤 것을 택할까 생각하고 있다. 야간트레킹에 미련이 남는 이유는 이곳에 희귀여우원숭이인 아이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아이란 놈은 그 특이한 생김새 때문에 희귀종이 된 경우다.

아이아이는 가늘고 긴 손가락을 이용해서 먹이를 먹는다. 눈과 귀가 크고, 머리에는 긴 털이 듬성듬성 나 있다. 역삼각형의 얼굴에 뾰족한 턱을 가지고 있다. 마치 괴기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런 외모 때문에 오래 전부터 인간의 표적이 된 종이다. 아이아이에는 악마의 혼이 담겨 있다고 해서 이곳 현지인들이 보는 대로 잡아죽였다고 한다. 그 결과로 이제는 희귀종이 된 주인공이다. 오늘밤에 이 아이아이를 보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그 동안 못 가본 이 주변의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도 괜찮다. 안다시베에서 타나 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무라망가(Moramanga)라는 도시가 나온다. 작은 도시다. 이 도시를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내일 타나로 이동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 끝에 나는 무라망가로 이동하는 것을 택했다. 조용한 공원방갈로에서 밤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마지막 밤인 만큼 도시에서 현지 사람들속에 뒤섞이고 싶기 때문이다. 희귀동물과 사람 중에서 난 사람을 택한 것이다.

"야간트레킹은 하지 않을래요. 무라망가에 가려구요. 여기서 무라망가 가는 버스 있죠?"

나는 클로디아에게 물었다. 안다시베에서 무라망가로 가는 버스는 자주 있다고 한다. 무라망가에서 타나로 가는 버스도 많다고 한다. 공원의 입구에서 클로디아와 헤어진 나는 방갈로에 돌아와서 떠날 준비를 했다. 배낭을 꾸리고 하룻밤 묵은 비용을 치르고 길에 나와서 무라망가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가격은 2천 아리아리. 우리 돈으로 천원이다.

작은 도시 무라망가에 도착하다

안다시베 거리의 아이들
안다시베거리의 아이들 ⓒ 김준희

무라망가 거리의 조형물
무라망가거리의 조형물 ⓒ 김준희

버스비용이 싼 만큼, 달리는 거리도 얼마 되지 않는다. 채 1시간이 안 돼서 버스는 무라망가에 도착했다. 작은 호텔에서 하룻밤 1만1천 아리아리짜리 싱글룸을 구했다. 작은 방 한쪽에는 화장실과 샤워시설도 붙어 있다. 마다가스카르에 온 이후로 가장 싸고 좋은 방을 구한 셈이다. 그리고 나는 무라망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이드북 론리플래닛에서는 무라망가를 가리켜서 마켓타운(Market Town)이라고 표현해 두었다. 길거리에는 수많은 상점들이 있다. 먹을 것을 파는 작은 가게부터 시작해서 기념품을 파는 바오밥카페(Baobab Cafe), 작지만 깨끗한 현대식 상점이 있다. 시장으로 걸어가면 이곳에는 온통 먹을 것 천지다. 과일주스를 큰 플라스틱 병에 담아서 팔고 있다. 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 땅콩을 잔뜩 쌓아놓고 파는 사람, 슬리퍼와 시계, 건전지 등을 파는 상인들로 넘쳐난다.

나는 크지 않은 무라망가의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타나를 떠나서 여행하다 보면 별로 타나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 모든 나라의 수도가 그렇듯이, 타나도 많은 사람과 자동차 때문에 복잡한 곳이다. 타나의 중심가를 걷다 보면 사람들이 계속 뭔가를 들고와서 사라고 권유한다. 게다가 다른 도시에 비해서 타나의 물가는 비싼 편이다. 조용히 여행자의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무라망가 같은 작은 도시가 어쩌면 제격일 것이다.

마다가스카르에 오기 전까지, 나는 이 나라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아프리카의 동쪽에 있는 커다란 섬,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가 사는 섬, 이제는 멸종해버린 코끼리새와 피그미하마가 살던 섬. 나는 마다가스카르에 대해서 이 정도 밖에는 알고 있지 못했다.

그런데도 마다가스카르를 여행하자고 작정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인도양 한쪽에 있는 커다란 섬에 무엇이 있을까, '자연주의자의 천국'이라고 표현하는 이 섬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한국어로 된 가이드북도 없고, 인터넷을 뒤져봐도 별다른 정보도 없는 섬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섬에 관심이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마다가스카르 여행을 결정한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여행사를 통해서 항공권을 구하고, 비자를 받고 필요한 정보를 닥치는 대로 주워모았다. 현지의 물가는 아주 싸다. 현지인들은 순박하고 온화하며 치안은 안정되어 있다. 프랑스어와 말라가시어를 공용으로 사용하고, 우리 돈과의 환율은 거의 2:1 수준이다. 역사유적은 거의 없지만 거칠고 때묻지 않은 자연이 남아 있다. 현지의 도로사정과 대중교통 사정이 안 좋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욱 여행을 흥미롭게 만들지 모른다. 이 정도면 혼자 여행하기에 꽤 매력적인 나라 아닐까?

그렇게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하고 나서 한 달이 지났다. 그 한 달 동안 무엇을 했을까. 무릉다바에 가서 바오밥나무를 보았고 모잠비크 해협도 보았다. 현지인들과 어울려서 덜컹거리는 낡은 버스를 24시간 동안 타기도 했다. 배가 터지도록 야자열매를 먹기도 했고, 다리가 아프도록 이살로와 라노마파나에서 트레킹을 하기도 했다. 멍하니 앉아서 질리도록 인도양을 바라보기도 했고, 커다란 바다가재를 싼 가격으로 먹기도 했다.

무라망가의 거리에 서서 커피를 마시다

무라망가 시내의 교회
무라망가시내의 교회 ⓒ 김준희

무라망가 거리에서 커피와 빵을 파는 작은 가게
무라망가거리에서 커피와 빵을 파는 작은 가게 ⓒ 김준희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사람들이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는 것도 어색하고, 버스를 타고 달리다 보면 모든 현지인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그 어색함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약간의 뻔뻔함 때문이다. 길을 걸으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살라마!'라고 말을 붙여 보면 알 수 있다. 여행자가 먼저 그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역시 웃으면서 '살라마'라고 답해준다. 길거리뿐만 아니라, 작은 가게에서도 마찬가지다.

무라망가의 길을 걷던 나는 한쪽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멈춰섰다. 커피를 한잔 마시기 위해서다. 마다가스카르의 지방에는 이런 가게들이 많다. 목재로 만든 작은 가게에서 커피와 빵, 샐러드 등을 팔고 있다. 이런 곳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면 우리 돈으로 100원이면 충분하다. 레스토랑에서 파는 커피보다 진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빵을 서너 개 더 먹는다고 하더라도 500원이면 충분하다.

서서 먹어야 하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고, 어쩌면 비위생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현지의 거리를 느끼기 위해서는, 현지인들과 얼굴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이런 곳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커피를 주문하면 십중팔구 이들도 웃는 얼굴로 이방인을 맞아준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커피를 만들어주고 설탕을 넣어주고, 필요하면 크림을 추가해주기도 한다. 이런 곳에 서서 천천히 커피를 마시다 보면 마다가스카르의 거리가 눈에 들어올지 모른다. 웃는 얼굴로 거리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인력거를 메고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 머리에 무엇인가를 이고 걷는 여인들. 웃옷을 벗고 맨발로 물통을 나르고 있는 아저씨들.

커피를 마시면서 이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이들도 나에게 웃음을 보여준다. 낯선 나라에 와서 길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 외국인의 모습이 이들에게도 재미있게 보일 것이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거리를 둘러보았다. 마다가스카르를 가리켜서 '자연주의자의 천국'이라고 부르지만, 이제 그 이름도 조금씩 사라져갈지 모른다.

이 섬에 있는 많은 자원 때문에 외국기업들이 앞을 다투어서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바람이 머지않아 마다가스카르를 휩쓸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섬의 광활하고 거친 자연은 어떻게 바뀔까? 멸종의 위기에 처한 인드리원숭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가게를 지키는 여자아이는 달그락거리면서 계속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커피는 뜨겁고 진하지만, 서서 마시면 딱 적당할 만큼 많지 않은 양이다. 어쩌면 이 커피가 마다가스카르의 거리에서 마시는 마지막 커피가 될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커피를 마신 나는 빈잔을 내려놓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빈 커피잔 바닥에는 진한 앙금이 남아 있다.

무라망가 버스터미널
무라망가버스터미널 ⓒ 김준희

덧붙이는 글 | 이번 편으로 마다가스카르 여행기를 모두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마다가스카르#안다시베#무라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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