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SBS와 MBC의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3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른바 대한민국의 진보개혁세력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002년 대선 때 이 전 총재를 위해 맹렬하게 뛰었던 그는 이 전 총재와 이명박 후보와의 갈등을 걱정하면서도 "이 전 총재가 실제 출마하면 정동영 후보보다 많이 얻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명박 40%-이회창 20% 고착상황이 범여권에는 치명적"
'정치컨설팅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정 후보가 존재감이 약해지고, 뉴스메이커가 못 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회창 출마'에 따라 ▲범여권 후보단일화에 대한 관심 더욱 약화 ▲ 이명박 후보는 중도 이미지를 갖는 '중간자 효과'가 발생 ▲위기에 빠진 이 후보가 호남과 충청에 SOS를 치게 될 경우 정 후보의 공간은 더욱 좁아지게 된다고 예상했다. 그는 또 "지지도가 이명박 40%전후, 이회창 20%전후로 고착되는 것이 범여권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이라면서 "정 후보에게 유일한 희망은 이명박 후보의 후보자격이 없어지는 경우인데,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SBS 조사에서 이 전 총재가 출마할 때 정 후보의 지지율은 17.1%였고, 출마하지 않을 때는 17.5%였다. 이명박 후보(38.7%)와 이회창 전 총재(19.1%)의 지지율을 합치면 57.8%로, 이 전 총재가 빠졌을 때 이 후보의 지지율 49.7%보다 8.1%가 높았다. 무응답층이 17.4%에서 11.9%로 6.5%가 줄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 전 총재의 지지도가 주로 이명박 후보지지자들로부터의 이동과 함께 무응답층의 유입으로 형성됐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는 범여권 후보들로부터도 표를 빼앗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참 치고올라가야 할 시점인 정 후보의 지지도가 20%안팎에서 고착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명박 대 반이명박 구도 만들기 어려워졌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연구실장은 "이 전 총재의 등장으로 정 후보쪽이 구상하던 이명박 대 반이명박 구도를 만들기 어려워졌다"고 분석한다. 노무현 대통령을 찍었던 유권자의 40% 정도가 이명박 후보에게 가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대 정동영의 1:1구도를 만들어서 이들을 데려와야 했는데, 이 후보가 중도 또는 중도보수로 포지셔닝되면서 이같은 구도설정에 큰 차질이 생기게 됐다는 것이다. 한 실장은 "정 후보는 인물보다 정당을 끼고 있는 지지이기 때문에 지지도가 떨어질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경선직후 상승했다가 답보 상황에서 이 전 총재의 등장은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 전 총재의 출마에 따른 한나라당의 분열을 기대했던 정 후보쪽은 지지도 추월 상황에 대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 후보는 이날 오후 현 상황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에게 "회의를 한뒤 나중에 입장을 정리해서 얘기하겠다"고 피했다. 신당 선대위의 김현미 대변인은 "예상했던 것이지만, 좋지는 않다"면서 "판, 구도 자체가 변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1·2위가 다 한나라당 후보라니... 판 전체 변화가능성은 득" 신당 인사들은 위기와 함께 기회이기도 하다는 시각이다. 판을 흔드는 유동성이 생겼고, 철옹성으로만 보이던 '이명박 지지도 50%'도 허물어질 수 있음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우상호 의원은 "득실이 있다"면서 "보수세력이 분열함에 따라, 우리 지지층이 가능성을 보고 결집할 수 있다는 것은 득이고, 이슈주도력을 놓치게 된다는 점, 공격대상이 둘이 됐다는 점, 그리고 이 후보와 이 전 총재가 합치게 될 경우 빅카드가 된다는 점은 실"이라고 분석했다. 우 의원은 "현재 1, 2위 후보가 다 한나라당이라는 점은 우리가 많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당 선대위의 최재천 대변인은 이 전 총재의 출마를 '당분간은 불리, 중장기적으로는 유리'로 정리한다. 노무현-이명박 구도가 이명박-정동영 구도로 바뀌기 시작했다가 지금은 이명박-이회창 구도가 되면서 정 후보가 뒤처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후보와 이 전 총재의 필연적인 주도권 다툼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그동안 내세웠던 '경제와 변화' 대신 대북정책을 둘러싼 이념갈등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는 또 보수본류의 마음을 얻기 위한 보수경쟁과 도덕적 검증이 격화되면서, 이명박 후보의 몰락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기대도 담고 있다. 최 대변인은 "이회창 전 총재는 명예회복이 목적이기 때문에 이명박 후보와 합쳐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본선에서 이회창 전 총재와 정 후보가 붙게 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이명박 50%'가 콘크리트 아니었다" 신당의 전략통으로 꼽히는 민병두 의원의 전망을 빼놓을 수 없다. 그도 이명박 후보의 낙마를 예상했다. BBK와 도곡동땅 소유권 문제 등 도덕성에 대한 보수세력의 회의론, 박근혜 의원측을 품지 못하는 지도력의 한계가 이 전 총재를 불러냈다는 점에서 이 후보가 이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민 의원은 "이명박의 50%지지가 콘크리트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고, 동심원의 중심이 빠져나왔기 때문에, 해체속도는 굉장히 빨라질 것"이라면서 "대선을 불과 50일 남겨놓고 지지율이 빠지는 것은 회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그동안 이명박 후보가 미래세력으로 보이면서 우리가 힘들었는데, 이 전 총재와 이전투구를 벌이면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라면서 "근본적인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대 미래의 구도를 만들면, 우리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고 본다"고 기대했다. 이들 모두는 이 전 총재의 등장으로 정 후보가 중간지대를 놓고 이명박 후보와 벌이게 될 싸움이 특히 중요해졌다는데 의견이 일치한다. 문제는 이른바 민주개혁세력, 중도세력의 체력이 전체적으로 약해져 있다는 것이다. 신당의원들에게서 "이명박 후보에게서 빠지는 표가 이회창 후보에게 가버릴까 걱정", "2위를 이 전 총재에게 뺏겼다는 것은 민주개혁 진영이 그만큼 취약한 상황임을 보여준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회창 전 총재의 등장은 정동영 후보에게도 이명박 후보 못지 않은 분기점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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