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꾼들이 묵을 숙소는 서귀포에 위치한 풍림콘도였다. 제주 유일의 담수하천인 강정천과 서귀포 앞바다가 만나는 데 있어 여느 호텔 부럽지 않은 정원과 전망을 갖춘 곳이다. 하룻밤의 짧은 휴식 시간에도 풍경을 제일 먼저 고려한 주최 측의 배려가 숙소에서도 느껴졌다.
아기가 단잠에 빠져 있는 아침 일찍, 방을 같이 쓴 언니들과 함께 콘도 정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혹시 깨어나서 울면 어떡하나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막내 하얀씨가 아기 지킴이를 자청했다. 하얀씨가 아기를 봐주는 동안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언니들은 룰루랄라 몽돌몽돌한 바닷가 산책로를 맨발로 접수하러 나섰다.
정돈된 잔디와 야자수, 넓직한 수영장을 지나 바다로 이어진 좁은 길은 꽤 운치있었다. 달빛이 밝은 가을 밤에 연인들이 어깨를 붙이고 지나가면 딱 맞을 정도의 오솔길은 솔향기가 진하게 배어 있다. 그리 길지 않은 언덕 길을 내려가면 왼쪽은 하천, 오른쪽은 바다를 두고 서니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담수와 육지를 향해 제 몸을 부수며 달려드는 파도가 만나는 지점이다. 서로를 밀고 당기며 바다와 냇물이 일렁이는 물의 경계를 만들고 있었다.
간밤에 맥주 한 캔과 양초를 들고 검은 바위에 걸터앉아 밤바다를 구경한 흔적이 선명했다. 타다 남은 양초 세 자루가 종이컵을 촛대로 의지해 서 있고, 깡통 입구에 붙은 말라버린 맥주거품이 한밤중의 수다를 짐작하게 한다. 해가 막 떠올라 검은 돌들을 비추는 바닷가에서 조용조용 자기 얘기들을 풀어놓았다. 중학생 아들을 둔 주부 정화언니는 10월 28일에 춘천에 간다고 했다. 그날은 의암호반에서 조선일보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내가 38km 지점(우리 집 앞)에 서서 박수로 응원하겠다고 하자, 거기까지 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첫번째 풀코스 출전이라고 한다. (28일, 약속대로 소양강 처녀 동상 근처에서 우리는 반갑게 포옹했다. 한 사람은 달리고, 한 사람은 풍선을 들고 박수를 쳤다.)
철인 3종 경기를 취미로 하는 정화언니와 함께 화려한 싱글 오남언니와의 수다도 이어졌다. 서른의 강을 건너는 여자들 셋이 시원한 아침 바닷바람을 맞으며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여행을 좋아하는 언니들의 말은 대여섯 살 어린 나에게 따뜻한 응원가가 되어 주었다. 남편 없이 혼자 떠나온 여행길이었기에 가족이 아닌 다른 이들과의 만남이 가능했다.
이번 여행에서 쿠하에게 친언니 이상으로 잘해 준 승주와 지민이는 쉬는 시간에도 쿠하를 챙겨주었다. 나와 동갑인 승주엄마 차은정씨와는 생각도 말도 잘 통해 금세 친구가 됐다. 길가에 앉아 다리를 두드리며 아이들 이야기, 우리들 이야기로 발은 쉬어도 입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당시엔 몰랐는데 승주가 쿠하에게 제 음료수를 나눠 먹이고 있다.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희한한 음료수 병을 승주언니가 거꾸로 들어 먹기 편하게 해주는 모습이 참 예쁘다. 카메라가 수다쟁이 엄마들보다 언니동생 사이가 된 우리 아이들을 향했어야 했을 것 같다.
둘째날 일정은 첫날보다는 짧았다. 서귀포 칠십리를 걷고, 재래시장에 들러 싱싱한 생선과 제주의 갈옷을 살 수 있는 시간도 준다고 했다. 관광객을 몰고 다니며 짜증을 유발하는 상황버섯 가게나 조랑말 말꽝 판매점에 들르는 것이 아니라 사도 그만, 안 사도 그만인 재래시장에 올레꾼들을 풀어놓겠다고 서명숙 이사장은 첫날부터 강조했다.
제주에 와서 숨은 비경을 보고가면서 제주도에 약간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테니, 싼 값에 맛있는 제주 바다의 선물들을 사달라고도 했다. 그러나 간세다리('놀면서 쉬어 간다는' 제주어) 하며 걷는 한량스러운 올레꾼들의 느린 보폭으로는 시장에 들를 틈조차 없었다.
테우를 짓는 바닷가 마을, 보목리쇠소깍에서 출발해 외돌개까지 걷는 길에서 가장 오래 발길을 멈춘 동네는 보목리와 이중섭 화가의 집이었다. 한달음에 닿을 듯 서 있는 섶섬을 세워 둔 보목리 마을을 지나는 길에 우리 일행은 제주도의 전통 뗏목 '테우'를 만났다. 어른 둘이 딱 붙어 앉아 통나무를 잇고 있었는데, 전통적인 기법으로 옛 배를 만드는 바닷가 마을이 더없이 차분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관광객의 눈길을 빼앗는 이 배를 몇 해 전 여름, 이호 해수욕장에서 타 본 적이 있다. 엉성해 보이지만 바나나 보트와 재빠른 모터 보트들이 질주하는 해수욕장에서 테우에 타고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드러누워 해바라기를 하던 한가로운 경험이 떠올랐다. 여럿이 만드는 큰 배도 좋지만, 이렇게 솜씨 좋은 동네 어르신 둘이 모여 오밀조밀 만드는 작은 뗏목이 더 정겹고 반갑다.
보목리를 걷다 보면 낮은 돌담 안으로 그리 크지 않은 살림집들이 앉아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바다를 향해 낸 거실 창문들도 바람을 피하려는 듯 살짝 옆으로 돌아 앉아 있고, 옛집이든 새 집이든 집들은 층고가 낮아 엎드려 있는 듯하다. 어느 집 돌담 안으로 귤나무에 노랗게 익은 귤들이 열려 있었는데, 지나가는 우리 일행을 불러 주인은 소담스러운 두 손 가득 방금 따온 귤을 내밀었다.
우리가 제주올레 참가자들이라고 밝히자, 서명숙 이사장을 안다며 반색하는 부경자 아주머니는 뒤따라 오는 올레꾼 몫까지 두둑히 챙겨주셨다. 함께 걷던 행사 진행자는 "이것이 제주 인심"이라며 즐거워했다.
귤을 얻어 먹는 동안 등 뒤에서 멋진 간판을 발견한 일행들은 천천히 강태공의 글을 읽으며 제주의 멋에 대해 이야기했다. 관광객의 발걸음이 뜸한 이 동네는 오히려 강태공들의 한산한 바다낚시터로 인기가 높은 모양이다. 낚시꾼들에게 보내는 저 간판의 문장은 이제껏 보아온 경고문 가운데 최고 멋진 글이었다.
화가 이중섭의 방이 숨어 있는 서귀포 칠십리많은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화가 이중섭이 피난 길에 세들어 살았던 서귀포의 작은 방은 너무 작아서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신문 4장을 깔아두면 딱 맞을 것 같은 그 방에서 일본인 아내와 아이 둘을 재웠다는 간판의 설명이 안쓰러웠다.
간소하고 작은 것이 더 아름답다고 평소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좁아도 너무 좁은 그 방에서 지냈을 네 식구의 옹색함과 아비된 자의 심정이 상상이 되어 오래 서 있게 됐다. 그 안에서도 웃는 아이들, 게와 함께 노는 아이들의 천진함을 그려낸 작가의 예술혼이 더 묵직하게 느껴졌고, 따뜻한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지던 전에 보던 그림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이중섭의 가족들이 세 들어 살던 작은 집에는 여전히 사람이 산다. 그 집을 뒤로 하고 나서면 왼편에 작은 카페 '미루나무'가 담벼락에 붙어 있다. 나무 마루바닥에 구색도 맞지 않은 저마다 다른 생김의 작은 걸상들이 있는 곳. 벽에는 먹색으로 성산 일출봉과 제주 앞바다를 그려둔 겸손한 테두리의 액자가 걸려 있다.
책과 피아노, 그림들이 저마다 다른 색으로 사람들을 부르는 곳 '미루나무'에서 올레꾼들은 시원한 맥주를 나눠 마셨다. 누가 사는 맥주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날름날름 거품을 입술 가득 묻혀가며 받아 먹었다. 함께 한 시사만화가 김경수씨의 제주 찬양은 육지 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냈고, 대한항공 제주지점의 강영진씨의 지지 발언에 올레꾼들은 부러운 마음으로 맥주잔을 비웠다.
서귀포는 조용했다. 관광버스와 렌터카가 주차장을 그득 메운 천지연 폭포를 제외하면 관광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차분한 포구이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천지연을 지나 서귀포 항을 뒤로 하고 언덕길을 오르는 데 뒤따라 오던 배우 김부선씨가 말을 걸었다.
"자기들도 신발을 벗고 걸어봐. 맨발로 걸으면 느낌이 얼마나 다른데, 이런 길은 맨발로 걸어줘야 해."
발가락을 보이며 걷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망설이자 또 종용한다.
"맨발이 좋아. 나는 요새 맨발로 걷는데 이건 완전히 중독이야. 까르르."
한 사람, 두 사람. 차례로 맨발을 드러냈다. 양말도 신지 않고, 이틀을 걸었던 내 운동화는 자주 환기를 시켜줬지만 발냄새가 배어 있었다. 이참에 운동화도 쉬게 할 겸, 냄새도 빠지게 할 겸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10월의 바닷바람은 낮에도 차가웠지만 오후 두 시의 햇볕에 데워진 보도블록은 그리 차갑지 않았다. 삼십여 분쯤, 인적이 드문 인도에는 유리조각이나 발을 해칠 만한 방해물이 없어 좋았다. 버스로 먼저 이동한 딸아이 쿠하가 있는 곳에 다다를 때까지 우리는 맨발로 서귀포 칠십리를 걸었다.
제주 올레 제2코스를 걷는 서귀포 칠십리를 쿠하는 유모차와 봉고차로 이동했다. 돌담길에서조차 거의 걷지 않으려고 떼를 피웠다. 첫날 무리하게 걷게 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래도 쿠하가 엄마와 떨어져 좋은 언니들과 함께 봉고차로 이동해 준 덕에 나는 구비구비 돌아가는 바닷길을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소풍가듯 걸어갈 수 있었다.
이틀 동안 나는 참 많이 걸었다. 작정하고 걷기로 하고 떠난 길이었다 해도, 제주 관광지도를 펼쳐두고 따져보니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막상 걸을 때는 의식하지 못하고 쉬엄쉬엄 놀면서 다닌 길이 돌아와 지도로 확인하니 꽤 긴 길이었다. 아마 혼자 떠났다면 중도에 포기하고 차를 얻어타고 다녔거나 114에 전화해 렌터카 회사 전화번호를 물었을지도 모른다. 여럿이 같이 걸으며 서로 인생 이야기로 길동무가 되어 주었으니 가능했던 여정이었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을의 제주 오름과 바닷길을 실컷 걷고 돌아온 '제주 올레'는 지루한 일상에 달디 단 비타민이 되어 주었다. 틈나는 대로 나는 딸아이와 걷는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집 앞 의암호를 따라 호수로 이어진 길을 걷고, 공지천 황금비늘 거리로 단풍을 주우러 걸어갈 것이며, 김유정 문학촌의 가을 걷이를 보러 걸을 것이다.
길 위에서 아이와 나 자신에게 자꾸 말을 걸고, 함께 웃으며 짧아지는 가을 햇살 아래서 해바라기를 해야겠다. 튼튼해질 우리 모녀의 우정을 위하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공모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