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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조대왕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을묘년(1795)의 화성 행차와 관련된 행사가 잇따라 재현되었으며, 뮤지컬이나 드라마 등을 통해 그의 생애가 활발하게 재조명되고 있다. 화성 행차를 담은 반차도를 바탕으로 청계천에 벽화가 제작되어 관광 명소가 된 것은 유명하다.

 

왜 대한민국은 갑자기 정조에 주목하는가? 사실 나는 오래 전부터 정조를 제대로 조명할 것을 작은 목소리로나마 내 온 터라 이런 일련의 움직임이 반갑기만 하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정조에 대한 잘못된 역사적 사실들이 공공연하게 주장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그 주장들을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혜경궁 홍씨에 대한 견해', '정조 독살설' 등이 그것이다. 이 책도 그런 점에서는 혐의를 크게 벗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노베이터는 '혁신가' 또는 '개혁가'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정조는 개혁군주였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49년의 생을 불꽃같이 살다간 군주였다. 그의 정치는 세종의 정치와 곧잘 비교가 될 만큼 많은 점이 닮았다. 그러나 그 시대상이 다른 만큼 그들의 정치에서도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정조는 선왕인 영조의 탕평정치를 이어받아 더욱 강력한 탕평정치를 전개해 나가면서 각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편찬사업에 남긴 탁월한 업적은 학자군주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책은 그런 정조의 생애와 정책, 그 주변 인물들을 한데 조명했다. 책의 주요 내용은 뒤에 소개되어 있는 참고자료를 중심으로 써있다. 그러면서 대중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현대인들의 대화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독특하다 하겠다. 그래서 이 책에는 박진감과 긴장감이 묻어난다. 많은 도판의 활용도 돋보이고, 특히 화성 행차에 관한 반차도를 본문과 함께 펼쳐놓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만큼 독자들이 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이 엿보인다. 중요 사료를 활용하고 있는 점도 돋보인다.

 

하지만 이 짧은 글에 일일이 소개할 수 없을 만큼,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가장 답답한 부분은 혜경궁 홍씨에 관한 부분이었다. 저자는 혜경궁 홍씨의 태도를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보이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이중적인 행태'라고. 다시 저자는 이렇게 묻고 있다. 사도세자가 죽어갈 때 왜 혜경궁 홍씨는 아무 말 하지 않았느냐고? 그게 부덕의 도리냐고? 하지만 혜경궁 홍씨는 당연히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혜경궁 홍씨는 일반 사가의 여인과는 전혀 다른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아들 정조가 있었다. 더구나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들어가기 전 폐세자가 되고 서인이 되었기 때문에 이미 '죄인의 아내'가 된 상태였다. 정조는 영조가 효장세자의 양자로 만들어줌으로써 '죄인의 아들'이라는 상태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혜경궁 홍씨의 처지는 달랐다. 혜경궁 홍씨가 만약 부덕을 내세워 사도세자를 비호했다면 당장 '죄인의 아내'가 떠든다고 신하들이 떠들어댔을 것이며, 그렇다면 그것은 혜경궁 홍씨 개인의 불행으로만 끝나지 않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었던 혜경궁 홍씨는 그저 피눈물을 삼킨 채 남편의 죽음을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무슨 정치적 입장이 들어갈 리 만무하다. 

 

정조 독살설에 관한 것도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는 독살설에 관해 어느 한쪽 견해에 치우치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좋다. 내가 문제를 삼고 싶은 것은 사료를 잘못 읽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조가 마지막 남긴 말이 '수정전'이었으며, 그것은 정순왕후가 정조를 찾은 이후에 한 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히 틀렸다. <정조실록>에는 분명 정순왕후가 정조를 찾기 전 '수정전'이라 말하고 혼절하고 있으며, 이후에 정순왕후가 찾고 있음이 보이고 있다. 비록 하나의 기사이지만 이는 정조 독살설이 잘못된 견해일 수도 있다는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의 인용은 제대로 살피고 했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화체 형식의 서술은 아주 신선했지만,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왕과 신하 사이가 형님 아우가 되는 둥, 손자가 행차 전 인사를 하는데 할머니가 '그러든가 말든가' 하는 둥 ……. 물론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흥미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 해도 이는 지나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특히 화성 축조에 관해 정조와 다산이 나눈 대화는 아무리 생각해도 심하다. 그것은 '어제'라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오류다. 어제서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가 왕이 직접 짓고 정한 어정서, 다른 하나는 왕의 명령으로 만든 명찬서다.

 

<어제성화주략>은 어정서와 명찬서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인 한편, '성설'에 관한 부분은 다산이 지었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이를 표절이라 함은 지나치다.

 

저자의 정조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그리고 그것을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이 책을 만들게 된 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덕분에 우리는 정조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도 지나치면 이처럼 곳곳에 잘못을 낳게 된다. 사랑을 할 때는 따뜻한 감성만 있어서는 안 된다. 차가운 이성도 있어야 한다. 특히 역사 인물을 사랑할 때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역사 사실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되며, 이는 인물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에 장애가 될 수밖에 없고, 결국 그들의 명예를 또 한번 훼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내용이나 흥미 모두 독자들이 기대하는 이상의 지식이나 만족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잘못된 내용이나 지나친 대화 형식은 분명 날카롭게 경계하면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와 북카페에 실은 서평을 첨삭하고 수정하였습니다.


이산 정조대왕 - 조선의 이노베이터

이상각 지음, 추수밭(청림출판)(2007)


태그:#정조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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