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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학교 본관 앞 천막에서 출교학생들이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본관 앞 천막에서 출교학생들이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 김한내

요동치는 정국이다. 어지간한 일은 기사화되지 못한다. 그래서다. 대학 안에서 비지성적 일이 자행되고 있어도 모르기 십상이다. 딴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도시빈민이 줄이어 목숨을 스스로 끊는 시대 아닌가.


신자유주의가 휘몰아치는 오늘, 대학생들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청년실업이 젊은 지성인의 꼭뒤를 누른지 오래다.


지난 11월 3일은 학생의 날. 하지만 대학가는 썰렁했다. 학생운동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고려대다.


고대. 학생운동의 상징인 4월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학교다. 안암골의 '민족고대'라는 별칭이 따르기도 했다. 눈 흘기지 말기 바란다. 무슨 '명문대' 따위를 들먹이자는 게 결코 아니다. 대학 교훈에 강조하고 있듯이 고대는 '정의'의 이미지를 오래 간직해왔다.


하지만 오늘의 고대에 과연 정의가 살아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보라. 고려대 당국은 학생운동 하던 젊은 지성인 7명에게 출교라는 '사형선고'를 내린 뒤 법원의 무효 판결에도 항소로 맞서고 나섰다.

 

학생운동의 현 주소는 정의 사라진 '민족고대'


사태의 발단은 총학생회 선거의 투표권 자격을 놓고 학생처장을 비롯한 보직교수들과 학생들 사이에 불거진 갈등으로 알려졌다. 총학생회 선거가 다가오면서 시간에 쫓긴 학생들은 아예 대화를 거부한 채 건물을 나서는 보직교수들의 앞을 막았고, 교수들은 그것을 '감금'으로 규정했다. 학적을 아예 말소하는 출교처분을 내린 까닭이다.

  
물론, 보직 교수들의 출입을 가로 막고 나선 학생들은 실수를 범했다. 인신의 자유를 제약한 것은 옳지 못한 일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바로 그걸 명분으로 교수들은 출교라는 극단적 징계를 내린 게 아닌가.


하지만 깊이 성찰해 볼 일이다. 4월의 고대에서 상황이 거기까지 이르는 데 보직교수들 잘못은 없었는가. 학생들 요구 사항을 줄곧 묵살하지 않았던가. 학생들의 요구안을 수령만 해도 농성을 풀겠다는 학생들에게 징계하겠다며 윽박지르기만 하지 않았던가. '감금' 당시의 상황 설명도 학생들과 교수들 주장이 어긋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공동으로 진실을 규명하자는 데 반대하고 있는 쪽은 누구인가. 무엇보다 학생 자치기구인 총학생회의 선거에 학교 당국의 경직된 개입이 문제를 일으킨 원인이었다는 사실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짚어보더라도 학생 7명에게 내린 출교 징계는 지나치다. 결국 학생들은 학교를 상대로 '출교처분 무효 확인 청구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고, 사법부는 지난 10월 4일 재판에서 '무효' 판결을 내렸다. 당연한 일이다. 판결문이 밝히고 있듯이, 그것이 학적 말살이라는 극단적 징계를 받을 만한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건 당사자인 학생처장이 상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징계심의와 의결절차를 주재하고, 의결권까지 행사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단순한 절차의 문제로 파악했기에 고대 당국은 지난주에 항소를 하며 징계절차를 다시 밟겠다고 나섰을 터다.


하지만 더 중요한 판결문이 있다. 판결문을 똑똑히 읽어보기 바란다. 학생 징계에 "무엇보다도 교육적 차원의 배려"를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징계 대상자가 그와 같은 행위에 이른 동기와 경위, 징계대상자의 학업에 대한 의지, 그 위반행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기제로서의 징계처분의 적정성, 그 징계처분이 당해 학생의 현재의 학업과 미래의 삶에 끼칠 영향"을 세심하게 고려하라는 사법부의 주문은 기실 상식이 아니던가.

 

사법부의 아주 상식적인 주문, 그러나 학교 당국은

 

그런데 어떤가. 고대 당국(이사장 현승종, 총장 한승주)은 거꾸로다. 항소를 하며 "본 대학의 심사숙고에 의한 신중한 교육적 판단이 법리적 판단에 의해 훼손"됐다고 부르댔다. 언죽번죽 "법리적 판단보다 넓고 심오하고 섬세한 인간적 상황을 고려"한 "교육적 판단"이 중요하단다. “이 문제의 슬기로운 해결이 한국 대학사회의 발전에 큰 교훈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은 부메랑처럼 대학당국에 돌아가야 옳지 않을까.

  
참으로 묻고 싶다. 정작 대학당국이야말로 "넓고 심오하고 섬세한 인간적 상황을 고려"했는가. '법리적 판단' 앞에 교육자로서 부끄럽지 않은가. 출교된 학생들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철학박사 학위 수여'에 반대하고 나섰던 바로 그들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인가. 출교된 학생들이 '폭력시위'를 자주 벌여왔다는 대학 당국자의 말은 그 심증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그래서다. 고대 당국의 무모한 비교육적 처사에 이제 교육자인 교수들이 뜻을 모아 적극 나설 일이다. 이미 학생들은 '출교' 징계 뒤 배우지도 못하고 600일 가까이 농성이라는 험한 길을 걸어왔다. 공부하겠다는 의지도 두텁다. 어떤 결정이 진정 "법리적 판단보다 넓고 심오하고 섬세한 인간적" 판단인가. 민족고대의 양심에 묻는다. 항소를 포기하라.


#고대생 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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