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 봐! 헬기에서 뭐가 나온다!” 영희가 손가락으로 헬리콥터를 가리키며 소리치자 사람들은 모두 위를 올려 보았다. 헬리콥터에서는 전단지를 잔뜩 뿌리고 있었다. 경수는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전단지를 주워 읽어 보았다. -친애하는 애국 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오늘 아침 미명을 기해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 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군사혁명위원회는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다시 바로 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애국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본 군사혁명위원회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동요 없이 각인의 직장과 생업을 평상과 다름없이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이 순간부터 우리들의 희망에 의한 새롭고 힘찬 역사가 창조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우리들의 단결과 인내와 용기와 전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궐기군 만세! “쿠데타잖아? 이거 완전 미친놈들 아니야?”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전단지를 구겨 땅바닥에 내팽겨 치는 모습이 경수의 눈에 띄었다. 정치에는 별반 관심 없는 경수가 생각하기에도 쿠데타는 정말 뜬금없는 일이었다. “이거 누가 장난치는 거 아니야?” 전단지를 유심히 보던 한 사람은 크게 소리치기까지 했다. “이거 옛날 박정희 5.16 쿠데타 당시 혁명공약과 거의 비슷하잖아요?” “글쎄 그런가?”
전단지를 멍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경수에게 영희가 넌지시 물었다. “오빠, 박정희가 누구야?” 박정희란 이름은 경수도 평소 골치 아파하던 역사책에서 겨우 이름이나 들여다본 존재라 자세히 설명해줄 수는 없었다. “예전 대통령 중 한 명일걸.” 그러면서 경수는 영희에게 퉁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넌 그런 것도 모르냐?” “칫.” 거리에 늘어선 자동차들은 어느덧 하나 둘씩 도로가로 차를 대어 놓고 있었다. 다른 차가 자리를 차지하기 전에 경수도 재빨리 자리를 잡고 차를 주차시켜 놓았다. “나중에 주차딱지 끊는 건 아니겠지.” 도로는 도로가에 주차된 차들과 도로 한가운데 멈춰선 차들로 커다란 주차장으로 변해 버렸다. “아 진입방향 통제라면서 왜 오고가는 길이 다 막혀 있는 거야? 에이 썅!” 불그죽죽한 얼굴을 한 뚱뚱한 아저씨의 고함소리는 버스지붕 위에 올라선 군복을 입은 청년의 고함소리에 곧 파묻혀 버렸다. “여러분! 쿠데타입니다! 저 국회의사당에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들이 있습니다! 이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의미가 있어도 국민의 선택이 아닌 쿠데타로 정권을 잡겠다는 행동은 용납해선 안 됩니다! 모두 국회로 달려가 쿠데타를 저지합시다!” “아따 그 사람 나서긴, 정부가 알아서 대처할 일인데.” 뚱뚱한 아저씨는 지하철이라도 타고 가려는지 청년의 고함소리를 등지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년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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