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내가 천천히 갈게 내 뒤만 쫓아와.”
“그래 알았다. 진짜 천천히 가야 해!”
지난 4일(일)은 쌀쌀하지만 자전거 타기는 괜찮은 날씨였다. 손자가 자전거를 타자고 해서 서툴지만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는 목감천으로 갔다.
얼마 전 주문한 자전거가 이틀만에 도착했다. 빨리 조립을 해서 타고 싶었지만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남편을 그렇게 기다려 보기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날따라 늦게 돌아온 남편은 자전거를 조립하면서 타이어에 바람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오후, 딸과 함께 자전거포에 가서 바람을 넣었다. 그런데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인아저씨는 바람 넣는 기구를 주면서 넣으라고 했고 딸아이와 나는 번갈아가면서 있는 힘을 다해 바람을 넣었다. 돌아오는 길에 딸에게는 제집으로 들어가라고 하고 나 혼자 놀이터에서 자전거 연습을 시작했다.
자전거 안장에는 올라가지도 못하고 떨어지기만 하자 놀이터에 있던 젊은 엄마들이 “자전거 처음 배울 때는 뒤에서 누가 잡아주어야 하는데요”한다. “그러게요. 지금은 잡아 줄 사람이 없으니 혼자 해보는 수밖에요. 또 이러다 보면 타게 되겠지요”하곤 계속 타기를 시도해봤다.
안장 위로 올라갔지만 안장 위에는 한 번도 제대로 앉아보지 못하고 떨어져 페달만 밟기가 일쑤였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니라 끌고 다니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안장에 올라가 앉아서 조금씩 타게 되었다. ‘그럼 그렇지 하다 보면 이렇게 탈 수 있는 거야!’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내 모습을 지켜보던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손자를 놀이터에 데리고 나온 할아버지가 “하는 거 보니깐 금세 타겠는데요. 그렇게 자전거를 쭉 밀면서 타면 돼요” 하면서 격려를 해준다. 정말 그랬다. 자전거와 씨름한 지 1시간이 지나니 타는 흉내를 조금 낼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포기하지 않으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날은 1시간을 타고 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와서 “오늘 자전거 타봤어?”하고 묻는다. “그럼 타봤지. 아직은 잘 못 타지만.” 다음날 오전 다시 자전거를 가지고 놀이터로 나갔다. 오전에는 놀이터가 텅 비기 때문에 자전거 연습하기에는 아주 그만이다.
자전거를 가지고 나온 지 20분 정도 지났을까? 자전거를 제법 오랜 시간 동안(2~3분 정도) 떨어지지 않고 탈 수 있게 되었다. 놀이터에서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이 또 확인을 한다. 내가 탈 수 있다고 하자 못 믿겠는지 그 밤중에 나가보자고 한다. 그때 시간이 밤 9시쯤이었다.
난 자신 있게 자전거 타는 시범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웃으면서 “음 제법인데” 한다. 난 의기양양해졌다. 그러면서 “자전거 연습하고 30분만에 조금씩 타기 시작했는데 뭐” 하며 자랑했다. 다음날, 놀이터를 벗어나 아파트 앞마당을 1시간 정도 길게 왔다갔다 했다. 집으로 들어오면서 ‘그래 내일은 목감천으로 가보는 거야’ 다짐했다.
4일째 되던 날 난 용감하게 목감천으로 자전거를 가지고 나갔다. 핸들을 붙잡은 손이 조금 떨려왔다. 아주 조심스럽게 목감천을 따라 자전거를 탔다. ‘야호!! 바로 이런 기분에 자전거를 타는 거였어.’ 신났다. 불어오는 바람이 경쾌함을 느끼게 했다.
그때 저쪽에서 유모차를 끌고 가시는 할머니 몇 분의 모습이 보였다. 난 할머니들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그 옆을 지나고 있었다. 그 순간 “우르르 꽝꽝~ 꽝꽝~” “어머나 괜찮아요?” “아니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넘어졌어?” 하는 할머니 소리가 들려왔다.
난 자전거와 넘어졌고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약간 창피했다. “아, 네 괜찮아요” 하곤 얼른 일어났다. 절뚝절뚝 다리를 절면서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내 모습을 보고 있던 아저씨 한 분이 “자전거 안장이 비뚤어졌네요”하면서 바로 잡아준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바지를 걷고 다리를 살펴보았다. 넘어진 그곳은 다행히도 콘크리트가 아닌 나무로 된 다리여서 충격이 적었다. 그런 덕에 특별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며칠 사이에 종아리, 발 부분에 멍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다음날 조금은 겁났지만 다시 자전거를 끌고 목감천으로 나갔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내가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진 사실을 가족들은 아무도 모른다. 하여 지금은 누구의 도움 없이도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앞에 가던 손자는 가끔씩 뒤를 돌아다보더니 “할머니 잘 오고 있네” 하며 나를 챙긴다. 얼마나 갔을까?힘들었다. 손자를 불렀다. “우진아, 조금 쉬었다 가자.” 손자와 난 목감천을 쳐다보면서 쉬고 있었다. 다시 출발. 또 한 번 쉬자고 손자에게 청했다.
“할머니, 할머니는 왜 자꾸만 쉬자고 해?” “우진아 할머니는 우진이보다 50살이나 더 많잖아. 그러니깐 힘들지. 그리고 자전거 배운 지 얼마 안 되잖아” 하니깐 손자는 “그럼 갈 때는 할머니가 앞에 서서 가. 내가 뒤따라갈게” 한다.
손자의 말처럼 집에 돌아가는 길은 내가 앞장서서 갔다. 아주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달렸다. 손에서 땀이 났다. 너무 미끈거려 입고 있는 옷에라도 땀을 닦아야 했다. 위험했다. 이래서 장갑을 낀다는 것을 알았다.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하기는 했지만 숨이 꽉꽉 막히는 것 같았다. 하여 마스크와 선글라스, 안전모가 꼭 필요하다는 것도 절감했다. 통이 넓은 바지도 불편했다.
손자는 뒤에서 잘 따라오고 있었다. 가끔씩 “할머니 나 잘 가고 있으니깐 뒤 돌아보지 말고 잘가!” 하는 말도 잊지 않는다.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손자에게 물어봤다. “우진아 오늘 할머니 자전거 타는 거 어땠어?” “응, 잘 타는데 너무 느려. 더 연습해야겠어”한다. “그럼, 아직은 느리니깐 앞으로 연습 많이 할 거야.”
그날 내게는 아주 힘겨운 4Km 주행이었다. 손자와 함께 타는 자전거라 실수하지 않고 싶은 마음에 긴장한 탓도 있으리라. 손자의 말처럼 아직은 많이 부족하고 많은 단련을 해야 한다. 하지만 손자와 자전거타기는 정말 즐겁고 재미있었다. 이제 첫발을 내디딘 자전거 타기는 이렇게 시작이 되고 있었다. 손을 마주치면서 “우진아 다음에는 할머니가 더 잘 탈게” 하며 힘을 불어넣었다.
자전거 배우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도 되고, 손자와 친구 할 수 있어서 손자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더 늘었고, 할 수 있는 운동도 가짓수가 하나 더 많아졌고, 자전거를 타면서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얻어지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야말로 '일석다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