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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과 새들 순천만의 갯벌과 새들입니다.
갯벌과 새들순천만의 갯벌과 새들입니다. ⓒ 고성혁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정의했다. 이 광대무변한 대자연 가운데 한 개의 갈대와 같이 가냘픈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생각하는 힘을 갖고 있음으로써 그 유약함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듯 하다.


전라남도 순천만에 갈대가 한창 서걱이고 있다. 광활한 800만평의 갯벌에 펼쳐진 70만평의 갈대밭은 장관이다. 바람이라도 불어올라치면 그 넓은 땅엔 갈대가 서로 비비는 소리만이 무성할 뿐. 고독한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이내 몇 마리 두루미가 창공에서 서로를 부르며 껴안을 듯 날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로 일컬어지는 갈대, 그리고 그 안을  어머니 품속처럼 누비는 철새들.


가장 미약한 존재들이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는 순천만.

 

흑두루미 가족
흑두루미 가족 ⓒ 고성혁

 

11월 4일일 순천만을 다녀왔다. 선착장에 도착한 시간은 11:40. 정말 많은 이들이 온 듯하다. 20여분을 기다리다 탐사선을 탔다. 바다는 온통 잿빛. 그러나 그 안에 갯벌이 들어 있고 그 갯벌은 세상을 정화하는 위대한 힘을 갖고 있다. 흰 물살을 가르며 떠난 배는 이내 새들의 모습을 비춘다. 청둥오리, 검은머리갈매기, 고니, 저어새, 마도요, 그리고 흑두루미.

 

흑두루미는 천연기념물로 세계상에 약 1만 마리만 존재하며 그중 약 500마리 정도가 이곳 순천에서 월동한다고 한다. 오후 햇살에 부서지는 갈대와 고즈넉한 새와 그리고 갯벌, 그 안에 고물거리는 이름모를 게들. 이제 세상은 자연과 함께 자연을 모시고 살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들의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는 바람에 갯내음이 밀려온다. 짭짤한 냄새는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언제나 순박함과 정직을 잃지 않는 우리들의 고향과 그 안에 살았던 어버이를 닮았다. 부드럽게 곡선으로 휘어진 갯벌 길을 본다. 도드라지지 않으면서 이내 휘어지고 다시 허리를 꺾는 그 길에서 민물과 바다가 만나고 그 끝에 언제나 세상의 끝인 대양(大洋)이 있다. 그 곳을 터전으로 하늘에는 새들이 날고 땅에는 갈대와 일곱 번 얼굴이 바뀐다는 칠면초와 나문재, 해홍나물이 농게, 칠게, 갈게와 섞여 살고 있다. 물 속에는, 이따금 갯벌 위를 성큼 거리는 짱뚱어를 비롯하여 더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갯벌 위에 핀 갈대와 염생식물들 바다를 향한 순천만의 갈대와 염생식물들
갯벌 위에 핀 갈대와 염생식물들바다를 향한 순천만의 갈대와 염생식물들 ⓒ 고성혁


생명의 터전이므로 인간이 지켜야 할 마지막 ‘한계지’라고 해야 할 갯벌. 세계 5대 습지라는 순천만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자연생태지역이 아닌 세계인이 관심을 갖고 지켜야 할 비경(秘境)이 아닐까.

 

30여분 탐사를 마치고 갈댓길에 들어섰다. 목재로 만들어진 데크는 갈대숲을 헤치며 이리저리 뚫렸고, 드문드문 휴식장소를 지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간다.

 

갈대밭과 사람들 순천만의 갈대밭, 그리고 사람들
갈대밭과 사람들순천만의 갈대밭, 그리고 사람들 ⓒ 고성혁

 

숨통을 트듯 바람이 건듯 불면 우수수 나부끼는 아우성. 이 소리, 이 생명력, 이 근원을 가늠하기 힘든 간절함을 느끼기 위해 사람들이 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곳곳에 떨어져 뒹구는 깡통과 쓰레기는 무엇일까. 정말 인간은 고대문명을 창조했던 마야인들의 예언처럼 자신들의 부정(不淨)으로 인해 세상의 종말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아닐까.

 

쪼그려 앉아 밑을 내려다보니 칠게의 모습과 함께 새들이 찍은 선명한 발자국이 보인다. 눈을 들어 갈대 꽃대궁을 보니 흰 수염이 오롯이 날리고 있다. 어찌하여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여자의 마음을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와 같고 그래서 “거짓으로 눈물 흘리며 방긋 웃는다”고 했을까. 죽음 직전까지도 여자를 사랑했던 그는 과연 겨울을 넘기는 칼바람에도 봄이 올 때까지 결코 스러지지 않는 강한 갈대의 삶을 모르는 것이었을까.

 

갈대꽃대궁 갈대를 가까이서 본 모습
갈대꽃대궁갈대를 가까이서 본 모습 ⓒ 고성혁

 

내 어릴 적의 집 근처에도 갈대밭이 무성했다. 늦가을, 갈대가 꽃을 피우고 시들어가면 마치 동면을 준비하는 동물처럼 갈대밭에 ‘나만의 집’을 짓곤 했다. 가만히 갈대밭에 들어간다. 그리고 여러 방향의 갈대를 한 곳으로 향하여 눕게 하고 잘근잘근 밟는다. 방이다. 다시 사방의 갈대를 방의 중심을 향하여 모은다. 지붕이 된다. 어느 한 쪽을 뚫고 들어간다. 문이다. 어쩌다 바람이 부는 날 그 안에 홀로 오롯이 누우면 몸 속을 파고드는 찬 기운과 더불어 갈댓잎을 스치는 바람소리에 환청을 듣곤 했다. 그 때 우리는 너무 가난했고 그 때문에 어머니는 집주인 아주머니로 자주 집을 비워주라는 말을 듣곤 했었다.
 
- 힘내라. 네 어머니도 있지 않느냐. 너희를 위해 날마다 들일을 나가고, 늦은 밤에 돌아와 풍로를 부쳐 밥을 하지 않느냐. 사무치게 힘들어도 결코 울지 않지 않느냐.
 
어머니는 파바로티의 거짓으로 눈물 흘리며 방긋 웃는 여자가 아니고 겨울을 맨 몸으로 이겨내는 갈대였다. 아, 그때의 어머니가 사무치게 보고 싶다.

          

용산에서 본 풍경1 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만1
용산에서 본 풍경1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만1 ⓒ 고성혁

 

습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는 용산(龍山)으로 향한다. 산길의 오르고 내림이 용의 형용을 떠오르게 한다. 몇 번의 봉우리를 넘어 드디어 조망대에 도착했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 유장한 모습에 마음으로부터 찬탄이 인다. 둥글게 손을 맞잡은 갈대군락과 어머니의 품 안처럼 너그러운 바닷길. 만 전체에 넘치는 사위는 해와 그 그림자를 넘나드는 새들의 비상, 그리고 드러난 갯벌에 펼쳐진 해초들의 군무와 그 밖으로 넘실대는 섬들의 외로움이여.

 

용산에서본 풍경2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2
용산에서본 풍경2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2 ⓒ 고성혁


그렇게 11월의 순천만은 삶의 근원을 향한 고독을 맹렬히 재촉하고 우리는 탁한 세상에서 묻혀온 욕심을 씻어냈다. 내려오는 길에 걸린, 유난히도 많은 붉은 맹감들은 말라가는 스스로의 속살을 드러내며 ‘벗어버림으로부터의 울림’을 표표히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렇게 순천만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시계를 보니 3시가 조금 넘어 있었고 우리는 배고픔이라는 일상으로 돌아와 이내 분내 나는 선창가 길모퉁이를 꺾었다.

 

구비구비 휘어진 바닷길 전망대를 내려오며 바라본 순천만
구비구비 휘어진 바닷길전망대를 내려오며 바라본 순천만 ⓒ 고성혁

 (오는 길에 들른 순천시 해룡면의 주꾸미를 볶는 욕보 할매로부터 막 욕을 얻어 들으며 맛있는 주꾸미볶음밥을 사 먹었습니다. 일행들은 모두 맛있는 집을 소개해 줬다는 인사를 해 주었고요. 그 중 특히 긴 다리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짧은 다리를 따라와 준 김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덧붙이는 글 | 첫번째보다 아쉽게도 많은 새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여행#순천만#가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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