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에너지, 재생가능 에너지 개발이 전세계적 화두가 된 지 오래지만 우리나라의 인식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일부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이 재생 에너지 활용 방안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3회에 걸쳐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에너지의 지역화'를 조명하고 에너지 논의의 해법을 찾아봅니다. [편집자말] |
"재생에너지를 자율적으로 활성화시키는 방법만이 에너지 공급구조 전반에 미치는 기존 에너지 시스템의 영향력을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헤르만 셰어 세계재생가능에너지위원회 의장은 단적으로 말한다. 여기서 자율화란 중앙, 국가 단위가 아닌 지역, 시민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지역 여건에 맞는 에너지를 생산,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적으로 '솔라시티'(solar city)라는 개념이 많이 알려지기도 했는데, 기본적인 인식은 지역이 국가를 대신해 에너지 전환을 책임지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지지부진한 재생에너지 활용 해법에 엔진 하나를 더 단 셈이다.
재생에너지 기반 시설과 에너지 정책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도시가 꽤 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스웨덴 예테보리 등은 이미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관광효과도 엄청나지만 재생에너지 산업의 특징상 직접 고용의 효과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전 세계 지역, 도시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지역의 에너지 정책은 어디까지 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22, 23일 에너지 전문가들이 꼽는 대표적인 두 지역을 다녀왔다. 지자체 차원에서 가장 모범적이랄 수 있는 광주광역시와 지역 주민이 주도가 돼 활발한 에너지 활용 사례를 보이고 있는 충남 홍성군 홍동면이다.
[홍성 고요마을] 전기 계량기가 거꾸로 도는 동네
충남 홍성군 홍동면 구정리에 가면 고요마을이란 곳이 있다. 마을입구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광 모듈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이 곳이 마을회관이다.
8kw 태양광발전시설이 생산한 전기는 전량 한전에 판매되는데, 작년 한해 75만원 정도 수익이 났다. 마을회관 기본 전기요금을 빼고 한참 남은 수익으로는 마을 공공요금을 처리한다.
최성만 이장은 지역주민들의 작품이라고 자랑한다. 군 지원 제도인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놓은 시설인데, 대부분 마을이 계곡에 정자를 짓거나 길을 가꾸는 사업을 제안하지만 "고요마을은 달랐다"고 한다. 마을 간 경쟁이 치열한 사업이지만 태양광 설치만큼 개성 있고 설득력 있는 제안이 많지 않았으리라.
"우리가 뭐 알간? 좋다고 하니깐 쓰지. 전기요금 안 나오고 회관 요금 쓰고, 우리 주머니에서 돈 안 나가 좋아."
가끔 거꾸로 돌아가는 계량기(낮에 생산되는 전기는 곧바로 한전으로 들어간다)를 들여다본다는 마을 노인의 말이다.
현행, 차액지원제도에 의해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는 고가(711원/kwh)에 구매하게 되어 있지만, 지원금으로 건립한 시설에서 나온 전기는 한전 요금 그대로 구매한다. 수익을 내기에는 한계가 분명하고, 게다가 용량도 너무 적다. 하지만 작은 농촌 마을 주민들의 아이디어로 설치한 태양광발전시설은 전국적인 모범 사례가 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홍성 풀무학교] 에너지 백년대계도 지역 교육에서 시작된다홍성하면 많은 이들은 이내 '풀무농업학교'를 떠올릴 정도로 그 명성은 익히 자자하다. 그 명성에 걸맞게 풀무학교는 우리나라 최초로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한 곳 중 하나다. 익히 1978년 기숙사에 태양열 시설을 들여 놓았고, 1980년대 초반부터 '대체에너지 연구소'를 조직해 자료를 모아 왔다.
12kw 용량의 태양광 시설은 학교 본관 앞마당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부 지원금에 더해 시공사가 풀무학교의 뜻에 동감하여 나머지를 선뜻 부담했다. 교육용으로 학교 옥상에 설치한 600w 풍력 발전기 하나는 분수를 밝힌다 한다. 외국에서 수입하는 자재 구입을 자제하고 자동차 배터리 등을 재활용하여 내부 발전기를 직접 설치하였다.
아무래도 학교다 보니 실용적 활용보다는 교육 효과에 중점을 두었다. 관리를 맡았던 예전 회사는 부도가 나, 현재 얼마만큼의 전기가 생산되고 있는지 등의 체계적인 관리가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요즘 풀무학교 대학 과정인 전공부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재생에너지 활용을 고민하고 있다. 전공부 건물, 학교 인근에 있는 교사 가정 등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였다. 한 걸음 나아가 판매할 수 있을 정도의 큰 용량으로 설치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해 지정한 융자제도를 활용하려 했으나, 담보 부족으로 은행에서 거절당한 상태다. 시설담보로 재생에너지 사업 자금을 지원하는 독일과는 다른 경우다.
정작 중요한 것은 에너지 문제에 관한 교육의 효과다. 마침 기숙사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는 학생들을 만났다.
"본전 빼려면 50년인가, 70년 걸린다던데요.(사실과는 다르다. 요즘은 보통 12년 정도로 본다. 이마저도 앞당길 필요가 있다.) 하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 않겠어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사람들이 구경하러 오는 거 보면서 (재생에너지 시설이) 참 좋은 거라는 생각이 들데요. 그래도 비싸니깐 국가에서 지원을 잘 해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광주 신효천마을] 64가구 집집마다 태양광 발전기 장관광주광역시 신효천마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에너지 자립 마을이다. 신효천마을은 에너지관리공단이 신재생에너지로 60% 이상을 공급하는 50여 가구의 시범마을로 지정하는 '그린빌리지' 중 하나다. 2.1kw 태양광 발전기가 64가구 모든 마을 지붕에 얹힌 모습은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신효천마을 주민들은 원래 살던 효천마을에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서면서 지금의 마을로 집단이주 하였다. 그러면서 '태양광 주택 10만호 보급 사업'에 마을 전체가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보통의 '그린빌리지' 조성이 국가와 지자체 비용으로 대부분 충당하지만, 신효천 주민들은 비용의 30%를 자비로 설치하였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최근 산자부에서 주관하는 신재생에너지 설치 사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태양광 설치에 앞장섰던 최민호씨는 에너지 자립 마을의 풍경 만들기를 위해 여전히 고민 중이다. 얼마 전에는 마을 가구 전체에서 생산하는 전기의 '통합모니터링시스템' 설치를 에너지관리공단에 제안하고 왔다고 한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많은데, 기왕이면 마을 발전량이 얼마인지 눈으로 보고 가게 하는 게 좋을 것"같다는 바람에서다.
그렇지 않아도 김광훈 광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아쉽게 여겼던 대목이다. 신효천마을 정도라면 "에너지 생산과 절약이 확인"돼야 하고, "고장 나는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관리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국장은 신효천마을이 전국 특산품 마을로 자리 잡으려면 "주민을 대상으로 에너지 교육이 진행되고, 마을 관광 활성화를 위해 좀 더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며 덧붙였다.
지역에너지 성공, 지역 주민에게 달렸다광주 신효천마을의 가능성은 또 다른 차원에서도 발견된다. 신효천마을의 성공이 '소리 없이 강하게' 인근 마을로 확산되고 있었다. 신효천마을과 마찬가지로 집단 이주한 도동마을 46세대를 포함, 주변 또 다른 50여 세대도 태양광 발전기를 달았다고 한다. 신효천마을 정면에 위치한 인성고등학교 기숙사 지붕에도 상당한 용량의 태양광 발전기가 놓여 있었다. 신효천마을을 중심으로 태양광이 회오리처럼 번져가는 형국이다.
뜻밖에 도동마을에서 만난 노인 분은 집에 설치한 태양광 용량이 적어 혜택이 적다고 하소연했다. '태양광 10만호 사업'의 규정상(현재는 규정이 바뀌어 전년도 사용량을 기준으로 용량을 설정한다) 용량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안내를 도와준 광주시청 관계자는 "전기요금이 적게 나온다고 에어컨 등 전자제품을 많이 사서 그런 것 같다"며 조심스레 귀띔한다.
이 점 중요하다. 마을 주민이 사용자 편익에 머무르지 않고, 에너지 전환이 만드는 삶의 전환을 함께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신효천마을의 진보가 눈에 띈다. 주민들이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마을회관 지붕에 20kw 태양광 발전기를 달아 수익을 내고 마을 기금으로 쓰겠다는 계획을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다. 에너지 전환과 삶의 변화를 한 걸음씩 내달리고 있다.
교육은 에너지 전환을 이끄는 강한 동인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에너지 교육과 에너지 전환이 시작된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더욱 밝으리라.
[광주 조선대] 지역에너지 교육 모태 '솔라 유니버시티'홍성에 풀무학교가 있다면, 광주에는 조선대학교가 있다. 조선대학교 내에 그린빌리지 111세대를 조성, 태양광 150kw, 태양열 15kl 용량의 시설이 설치되었고, 태양광 설치를 위해 광주시가 설계비까지 지원하면서 기숙사에 60kw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도록 도왔다.
또한 태양광 에너지 이용시스템의 실증연구를 위해 조선대 내 1만6000여㎡의 부지에 태양에너지 실증 연구 단지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시판 중인 태양광 전지 중 최고의 효율을 내놓는 제품을 가려내 광주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제안하는 연구 등을 한다. 또한 110억 원 상당의 태양에너지 교육 홍보관을 건립 중이다.
이 정도면 가히 대한민국 최고 '솔라 유니버시티'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110억 원을 들여 만든 교육 홍보관을 두고 예산 낭비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에너지 교육을 위해 시범학교 4곳에 지원한다는 200만원에 비하면 한참이나 적은 금액이다. 과연 110억 원 홍보관의 교육적 효과는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곳 대학생들의 에너지 의식은 어느 정도일까? 마침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성의있는 답변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조선대학보에 문의를 해 보니, 마침 태양광 설치 기숙사를 사용하고 있는 수습기자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태양광 시설 덕에 온수, 난방을 비교적 저렴하게 쓸 수 있어 좋습니다. 외부에서 견학온다는 분들이 많다지만, 정작 학생들은 어떤 시설들이 있는지 잘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학교에서 홍보를 잘 못하는 건 아닐까요?"
왜 굳이 학교에 재생에너지 시설을 들여 놓아야 하는지에 대해 점검이 필요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지역에너지는 민관협력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교육의 효과는 얼마만큼 자발적 흐름, 자율적 동력을 만들 수 있는가에 달렸다. 에너지 전환을 일굴 민관협력 체계를 만들고, 자발적인 민간 에너지 운동과 호흡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 2001년 전망수요의 약 8% 절감을 약속한 광주시는 '푸른광주21'과 'CO2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이다. 에너지 절감을 약속한 가정이 1년 뒤 약속을 지키면 나무 한 그루를 원하는 곳에 심어주는 사업이다. 참 매력적이고 효과 좋을 사업이란 느낌이다.
하지만 2003년부터 초등학교 등에서 에너지학교를 운영해 왔던 김광훈 사무국장은 광주시의 에너지 정책에 불만이 많다. 예를 들면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교육이 더 많이 지원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도 광주시청 에너지 담당은, 김 사무국장은 소중한 분이라고 추켜세웠다. "우리는 그분에게 쓴소리를 계속 듣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모신다" 했다. 에너지 자립을 위한 광주시의 민관 협력, 결과는 두고 지켜 볼일이다.
홍동면에서 축산분뇨를 메탄가스로 바꾸는 설비를 활용하고 있는 김석근씨를 만났다. 8년여 전,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일인데 지금은 농림부 지원 사업에 선정돼 본격적으로 시설이 돌아가고 있다. 아직은 실험단계지만 군청 축산과 공무원이 열심히 돕는다고 한다.
"방출하면 공해지만, 사용하면 에너지"인 메탄가스를 활용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금 이곳은 또 하나의 명소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농장 부지를 정리해서 넓은 주차장 하나를 마련했다. 김씨는 "처음에는 메탄가스 뽑아서 불 때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짭짤하게 전기를 뽑아 쓴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작은 시작이지만 홍성에 작은 '에너지 모임' 하나가 생겼다. 마침 회의가 있어 참석할 수 있었다. '충남의제21'에서 행사를 함께 하자고 제안해 모인 자리였다. 풀무학교 교사, 급식네트워크 사무국장, 지역신문 기자 등이 모여 이제 막 시작된 모임을 어떻게 이끌고 갈 지와 에너지 현안 등을 놓고도 이런저런 말을 나누었다.
"오마이뉴스 기사를 봤더니 바이오에너지 문제 있다고 하더라. 바이오디젤은 무조건 선이 아니다. 바이오디젤 타고 무제한 달려버리면 어떻게 하나?" "경기도 지사가 독일 사례를 배워 액비처리 시설을 적용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많다" 등 의견을 놓고는 전문적인 찬반 논쟁이 한창 오갔다.
이 모임은 홍성군의 에너지 자립을 선도할 작은 불씨 같았다. 지역 에너지 자립이란 한 목표를 위해 모인 작은 걸음이지만 그 뜻이 분명한 만큼 무한한 잠재성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참석했던 홍성신문 이번영 기자는 홍성군의 에너지 전환에 관심과 열정이 많다. 홍성신문에 에너지 문제를 꾸준히 연재하면서 외부 탐방객에게 홍성 안내를 도맡아 할 정도다. 민간단체가 주로 시행하고 있는 '시민발전'(재생에너지 시설에 투자할 시민 주주를 모집해, 시설에서 생산한 전기를 되팔아 수익을 나누는 사업이다. '에너지전환'은 최대 15%까지 수익률이 난다고 한다)을 홍성군청과 함께 해 보고 싶다고 담담하게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지역 에너지, 이제 시작이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기획취재기자단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