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일) 오전 6시 40분. 서울시청 앞에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가을 단풍을 보기 위해 가이드인 나와 마흔네 명의 관광객이 향하는 최종 목적지는 또다시 내장산입니다. 교대에서 손님 두 분이 내리는 소동이 빚어지는 등 오늘도 출발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정읍 IC를 빠져나갈 때 시계를 보니 10시 15분. 순간, 착각을 했습니다. 30분이면 갈까? 그러면 시간이 빠른데. 그러나 그같은 우려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정읍시내를 빠져나가자 차가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차는 정읍천을 끼고 가다서다를 반복했고, 눈은 열심히 정읍천 너머를 바라봅니다. 그쪽 길은 어떤가 하구요.
그러나 그쪽도 더디기는 마찬가지. 우리 뒤를 따라오던 차들이 길에서 손님을 내려드리자, 우리 손님들도 덩달아 들썩입니다. 하지만 걷기엔 너무 먼 길, 한참을 기다리다 겨우 내장 저수지 못 미친 곳에서 내려드렸습니다. 어제와 똑같은 설명으로 세 가지를 반복·세뇌시키고 나서.
"첫째 3시 50분! 둘째 제4주차장! 셋째 보라색 버스!"
손님을 다 내려 드리고, 나도 제4주차장 앞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반쯤 비었던 대형 주차장이 차가 들어설 자리도 없이 꽉차 있었습니다. 차는 조금씩 움직여 무료 셔틀버스 정차장이 보이는 다리 위에 세우고, 기다리다 지친 나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때 시간이 이미 12시 반이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오늘은 케이블카는커녕 매표소 안에도 들어가기 힘들겠구나' 생각하고 관광단지 안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비가 안 와 그런지 먼지가 장난 아닙니다. 걷고 있는데 기사님이 전화를 했습니다. 차를 움직일 수 없어 그냥 그 자리에 놔두시겠다며, 그나마 우리 차 뒤에 도착한 차들은 설 자리가 없어서 도로를 빙빙 돌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대형 버스들이 그 복잡한 길을 유랑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람은 인산인해. 그제야 '어제 <MBC뉴스>에 내장산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떻더냐 물으니, 좋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직접 본 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어제 우리가 벽련암에 있을 때 헬기가 계속 선회하고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오늘 단풍은 그다지 예쁘지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 예뻤던 단풍은 이미 떨어지고 있고, 지금은 벗은 나무와 예쁜 나무 그리고 아직 푸른 나무가 동거하고 있는 상태. 와서 보신 분들, 다 실망하십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들은 이야기인데, 이번 축제가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정읍시에서 단풍축제에 부부사랑 주민축제를 겸하는 바람에 이 혼잡이 빚어진 거라구요. 거기다 국화 축제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정읍시에 묻고 싶어졌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축제를 하고 나면 뭐 좀, 많이 남나요?'
차는 제자리걸음, 사람들은 홍수 난 상태. 사람들 물결 따라 그냥 걷습니다. 주차장마다 차가 가득가득. 제1주차장 앞길에도 관광버스가 줄을 서 있습니다. 이젠 교통경찰관도 손을 놓았는지 구경만 하다 가끔 한 번씩 호루라기를 붑니다. 그분들 불쌍합니다. 관광버스 기사님이 나와서 차 댈 때가 없는데 어쩌냐고 호통치면 가만히 듣기만 합니다. 그리고 어제도, 전 주에도, 매표소 안은 어디나 승용차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무료 셔틀버스 줄, 끝이 안 보입니다. 포기하고 걷는 분들이 더 많지요. 나야 워낙 탈 생각이 없었으니, 그냥 걷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시계를 봅니다. '셔틀버스를 갈 적 두 번, 올 적 두 번, 모두 네 번을 타야 하니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 위에서 2시 반에는 내려오셔야 한다고 말했지만, 늑장부린 손님들로 인해 애먹었던 과거의 경험들을 떠올리니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정확하게 2시 20분에 문자를 보냅니다. 보내야 할 번호는 모두 18개. 세 번에 걸쳐 나누어 보내면서 길을 걷습니다. 다 내려와 화장실까지 다녀오니 전화가 옵니다. 우리 손님인데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니 문자 한 번 더 때리는 게 나을 것 같다' 는 전화였습니다. 지시대로 또 문자를 보냈습니다.
우리 차 옆에는 감 노점이 있는데, 우리 차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상황. 우리 기사님, 차 빼랄까 봐 차 안에 들어가 밖에서 안 보이는 곳에 숨어 주무셨답니다. 그러면서 미안하니 감이나 사라고 하십니다. 감, 샀습니다. 세 상자나(사장님의 주문이 있었기에). 기사님, 오늘 출발하기는 다 틀렸다고 미리 걱정이 태산, 너무 복잡해 언제 다 내려올지 모른다고 투덜대십니다.
"아니에요. 4시 5분에는 출발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은 정말 성적이 좋았습니다. 몇 분은 애초 일러드렸던 대로 제4주차장에 갔다가 돌아오시느라 늦었고, 또 몇 분은 화장실 갔다 오느라 늦었지만, 예상대로 4시 5분에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손님들 얼굴이 밝지가 않았습니다.
왜냐구요? 구경을 제대로 못하신 겁니다. 오고 가고 2시간 이상이 걸렸으니 구경할 시간이 있었겠어요. 점심도 못 먹고 내려와 허둥지둥 축제장으로 가 겨우 요기하고 오는 정도였답니다. 벽련암 갈 시간도 없어 겨우 내장사만 보고 왔다는 푸념들이 이어졌습니다.
이래도 단풍 축제 가시겠습니까? 그 푸념은 돌아올 때 휴게소에서도 이어집니다. 휴식시간은 20분. 여자 화장실 줄은 까마득. 여자 화장실 문제는 아주 심각합니다. 여성들의 몸 구조도 구조려니와 보통 행락객의 7∼80퍼센트는 여자거든요. 사정이 그렇다고 여자들은 그만 나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 아마도 도로공사에서 머리 좀 짜내셔야겠습니다.
난 처음부터 간식거리를 차로 사가지고 와 드시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니 여행 내내 시간에 쫓기다 집에 간다고 불만이십니다. 오늘은 정말 손님들께 죄송했습니다. 저로서도 별 대안이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구요. 그나마 우리는 다행히 국도를 타는 탁월한 선택을 한 덕분에 9시 반에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제 가이드 이야기도 마감할 시간입니다. 맨 처음 1박 3일로 그칠 이야기였는데 계속 불려나가는 바람에 길어졌습니다. 진작에 은퇴를 신청해 놓았지만, 성수기라 아무 말도 못하고 나갔는데 이젠 정말 안 하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하던 일도 있고 또 머리칼도 허연 사람이 자꾸 나서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걱정입니다. 발을 들여 놓기보다 발을 빼기가 더 힘들다더니, 또 부르면 거절하기도 어려운데 말입니다. 저는 내일 혼자 여행을 떠납니다. 시시콜콜한 제 가이드 일기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다음 또 새로운 여행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