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후보 선거캠프에 참여해 궁지에 몰렸던 박범훈(사진) 중앙대 총장이 회심의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지난 3년간 학교경영에 부실을 초래했다"며 총장직 사퇴를 주장했던 사람들이 '제3캠퍼스를 유치했다'는 말에 별안간 조용해졌다. 그것도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하남시다. 박 총장의 정치적 행보를 비난하던 교수들도 조용해졌다. 총장 즉각 사퇴를 강하게 요구했던 대학평의원회도 마찬가지다. 평의원회 홈페이지엔 지난달 16일 발표한 성명서를 끝으로 별다른 게시물이 없다. 불과 3주 만이다. 개그맨 박명수식 표현을 빌리자면, '급(急)' 변했다. 드러난 정황만 보면, 박 총장의 펀치가 약효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제대로 먹혔다는 얘기다. 비단 교수뿐 만이 아니다. 3캠퍼스 유치 소식에 박 총장에 대해 급호감으로 돌아선 이들도 적지 않다. 정치적 행보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학교 이미지에 도움이 되니까 좋다'는 것이다. 졸업생 A(44)씨는 "아무 것도 해낸 일 없는 총장보다는 방법이야 어쨌건 학교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낫다"면서 "제3캠퍼스 유치는 동문의 입장으로서 기쁜 소식이다"고 말했다. B씨(중앙대학교 졸업)도 "중앙대가 사실 예전 명성을 많이 잃어가 많이 안타까웠다"면서 "이번 유치를 발판으로 나빠진 이미지를 한꺼번에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며 환영했다. 박 총장은 캠퍼스 유치 덕에 할 말이 생겼다. "누가 뭐래도 유치 하나는 해냈다"고 말이다. 덕분에 든든한 후원자까지 생겨났다. 목에 힘을 줄만하다. 물론, 순전히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얘기다. 그러나 과정을 곱씹어보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중앙대, 하남시에 제3캠퍼스 추진' 제3캠퍼스는 경기도 하남시의 옛 미군기지 자리에 들어설 예정이다. 부지는 미군기지인 캠프 콜번이 있던 곳으로 28만1953㎡에 달한다. 중앙대는 이곳에 IT와 BT(생명공학), 외국어 및 국제통상 관련 학부와 대학원, 연구소 등이 들어서 학생 1만명과 교수 500명이 함께 생활하는 연구중심의 캠퍼스를 2013년까지 조성할 계획이다. 박 총장은 지난 6일 김문수 경기지사와 김황식 하남 시장과 함께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중앙대 하남 글로벌 캠퍼스 유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박 총장은 "2018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연구 중심의 글로벌 캠퍼스가 필요한 상황에서 근접성과 교통 등을 고려해 하남 미군기지 터를 최적지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캠프 콜번 지역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다는 것. 계획대로 캠퍼스가 들어서려면 제한을 풀어야 한다. 관련법을 고쳐야 한다는 말이다. 법률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에서 결정이 어떻게 날지는 아직 모른다. 그럼 박 총장이 무대포식으로 마냥 뛰어들었다는 얘긴가. 물론, 아니다. 김황식 하남 시장은 "경기도와 협조해 법안 통과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김문수 경기지사도 굳이 태클은 걸 이유는 없다는 자세다. 박 총장에게는 역시 믿는 데가 있었다. 왜 하필이면 중앙대냐? 왜 이렇게 밀어줘? 박 총장에 대한 열렬한 지지는 대선 주자인 이명박 후보와 무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박 총장은 지난달 10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캠프에서 '문화예술정책위원장'을 맡았다. 대학 총장의 갑작스런 대선캠프 참여로, 세간이 이목이 집중됐다. 모두들 그 이유에 관심이 쏠렸다. 그는 이날 경기도 안산에서 열린 국민성공시대 출범식에서 "이명박 후보는 예술가입니다"라며 운을 뗐다. "청계천은 훌륭한 예술작품입니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명품이고 훌륭한 예술작품입니다. (중략) 문화예술이 발전하면 국가 경제에 이득이 됩니다. 저도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각 분야의 전공자들을 모시고 국정에 반영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어떤 비난의 말을 듣더라도 이 후보를 돕고자 하는 생각입니다." 말의 요지는 대강 이렇다. 정확한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말을 분석해보면 '청계천=예술작품', '예술작품 발전=경제 발전', '이명박 후보=경제 전문가'라는 공식이 나온다. 논리는 제법 그럴 듯하지만 급조한 티가 많이 난다. 이유야 어쨌든, 박 총장은 이명박 후보 캠프에 참여, 적극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3주 뒤, 제3캠퍼스 유치 관련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물론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귀가 맞아도 너무 '딱딱' 들어맞는다. 판단은 읽는 이에게 맡긴다. 끊임없는 아우성
교수들이 침묵한 사이에도, 학생들의 비난은 끊이질 않는다. 중앙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http://165.194.97.39/center/bbs_list.html?gubun=change)에는 '박 총장은 사퇴하라'는 내용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릴레이]라는 머리글을 단 게시물은 8일 오후 3시 12분 현재 118건에 이르고 있다. 학생들은 여기에 박 총장의 이번 정치 참여에 대한 짧은 생각을 적었다. 한 학생은 게시판에 "대학은 학문의 전당, 지식의 상아탑이다"이라며 "대학 구성원은 정치적 중립일 필요 없지만, 대학 자체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적었다. 다른 학생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3학년 박모(25·중앙대 서울캠퍼스)씨는 "(박범훈) 개인의 정치 참여에 대해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개인에 앞서 한 대학의 총장인데, 적어도 신중했어야 옳다. 캠프에 참여하려면 적어도 '중앙대 총장이란 감투'는 뗐어야 옳다"고 말했다. 이모(여·24·중앙대 서울캠퍼스)씨는 "언론에 비춰진 총장 모습을 보면 과연 교육자로서 의식이 남아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정치를 할 생각이라면 둘 중 하나는 포기하는 것이 옳다. 학생들을 개인 물건 다루듯 하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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