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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인당수사랑가>의 한 장면
 뮤지컬 <인당수사랑가>의 한 장면
ⓒ (주)파임커뮤니케이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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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당수사랑가>라는 뮤지컬 이름을 들었을 때 기묘한 느낌이 들었어요. '인당수'는 심청이가 몸을 던지는 바다이고,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고 노래하는 '사랑가'는 춘향전에 나오잖아요. '두 고전을 섞었나?'

극장을 찾아가 본 결과, 정말 그렇더군요. 뮤지컬 <인당수사랑가>는 '심청전'과 '춘향전'을 하나로 묶은 '퓨전극'입니다.

그런데 이 공연, 단지 두 고전을 '퓨전'한 것 외에도 다양한 '퓨전'이 보여요. 판소리로 대표되는 국악이 나오는 동시에 우리 속담을 가사로 쓴 랩 또한 들을 수 있거든요. 그러니 (퓨전음식이 그렇듯이) 퓨전극 또한 얼마나 잘 융합(퓨전)했는지가 관건일 터. 그런데 아쉽게도 <인당수사랑가>는 그 덕목을 끝까지 지켜가지 못해요. 하나하나 짚어보기로 하죠.

막이 오르자 "오월 단오 꽃향기 날리네"라고 노래하며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양반 옷을 입고 등장한 이는 사또 아들 몽룡. 이어서 한 여인이 등장하는데… 그녀가 보살피는 눈 먼 아비는 "그네나 실컷 타고 오너라"고 소리치네요. 그녀의 이름은 심춘향. '장님 아비를 부양해야 하는 효녀'의 캐릭터를 춘향전으로 가지고 온 거예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의 전개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인물 설정은 독특합니다. 몽룡이 그네를 타는 춘향과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 관객이 이미 아는 바이지만, 둘은 몽룡의 아버지인 사또의 반대에 부딪혀 이별하게 되거든요. 야반도주한 몽룡과 춘향을 사또 일행이 찾아내는 데는, '심청전'에 나오는 뺑덕네가 돈을 노리고 심봉사에게 술책을 쓰기 때문이고요. 한양에 간 몽룡을 기다리는 춘향에게 변학도가 접근하는 방식도, '옥중에 갇힌 눈 먼 아비'를 들먹거리며 수청을 강요하니까요.

이렇듯 신선한 재구성에, '한 판 거하게 놀아보는' 마당극의 정신이 결합되어 중반까지 객석은 계속 즐거워했어요. 춘향과 몽룡의 '닭살 돋는' 애정연기도, 남자배우들이 '동네처녀'로 분해 우스꽝스러운 여장을 하고 춤을 추는 장면도 충분히 재미났어요. 특히 실력 있는 판소리 창자이기도 한 정상희씨가 판소리를 하며 자연스럽게 무대·객석과 소통할 때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뮤지컬 <인당수사랑가>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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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지만요… 이 모든 재미는 후반부에 급속히 무너져 내렸어요. 변학도의 강요 때문에 춘향이가 고통스러워하는 대목부터, <인당수사랑가>는 그 전의 신선함을 잃고 춘향의 일편단심만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춘향의 아픔과 사랑을 노래하는 뮤지컬 넘버가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배우 강윤정씨가 연기한 '후반부 춘향'은 과도한 '바이브레이션 발성'으로 인해 가식적이라는 느낌마저 주었지요.

그리하여 중반까지 빠른 전개와 기발한 연출에 즐거워했던 관객들은, 갑자기 이야기가 늘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특히 춘향과 몽룡이 모두 인당수에 빠지는 결말을 보고 저는 '황당한 비극'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했죠. 이전의 재치는 모두 어디 간 것인지… 감동을 꼭 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인지? 정작 저는 그 순간에 쏟아지는 졸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는 걸요.

뮤지컬 <인당수사랑가>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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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극장을 나오면서 저는 많이 안타까웠고, 조금은 불쾌했답니다. 신선함을 끝까지 밀어 붙였으면 좋았을 텐데, 객석의 눈물을 꼭 짜내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해도 좋았을 텐데… 2002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다듬을 시간도 많았을 텐데…. <인당수사랑가>를 만드신 분들. 다음 공연 때는 이 아쉬움이 없어질 수 있을는지요?

덧붙이는 글 | 12월 31일까지, 대학로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에서 공연합니다.



태그:#뮤지컬, #인당수사랑가, #퓨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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