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언론은 "사실상의 칩거"라고 표현하고 있다. 지난 8일부터 모든 외부 약속을 취소하고 삼성동 자택에만 머물렀다. 정치권과 언론이 그의 입을 주시하고 있다. 그의 말 한마디에 2007 대선판이 왔다갔다 하기 때문이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8일 대선출마 선언을 하면서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한 구애 작전을 펼쳤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같은날 밤 박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양쪽의 구애에 묵묵부답이다. 언론들의 인터뷰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사실 박 전 대표는 지난 8월 20일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기자가 박근혜 전 대표를 단독으로 만난 것은 지난 10월초 서울의 한 호텔에서였다. 현안에 대한 인터뷰가 아닌 '언젠가의 인물연구'를 위한 만남이었다. 약 1시간 가량 이어진 대화에서 핵심적으로 나눈 이야기는 '박근혜, 그 권력의지의 뿌리'에 대한 것이었다. '인물연구 박근혜'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8월 17일 경선 마지막인 서울 유세에서 박근혜 후보의 연설을 보고서였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지켜보는 사람을 살 떨리게 하는 저 권력의지는 어디에서 나올까? 그 뿌리를 캐보고 싶었다. 사람 살 떨리게 하는 박근혜의 권력의지, 그 뿌리는... 두 번째는 경선 후 박근혜 캠프 사람들을 만나면서였다. 그들은 패배자이면서도 패장을 떠나지 않았다. 박근혜의 어떤 힘이 그들을 계속 끌어당기고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은 최근의 박근혜 행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회창 후보의 등장 이후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한 달 여가 지난 만남에서 나눈 대화를 지금 여기 기록하는 것도 그 이유다. 박근혜 전 대표는 '외로울 때, 결정적 선택을 해야 할 때 어떤 기준으로 하느냐'는 질문에 "외로운 결정을 해야 할 때, 혼자 결정을 하게 될 때가 되면 이것은 끝까지 밀어붙여야겠다 하는 감이 있다"며 "그런데 그게 대개는 맞다"고 말했다. 최근 그의 칩거도 "끝까지 밀어붙여야겠다는" 그 무엇에 대한 감을 잡는 과정일 것이다. 경선 당시 '네거티브'라고 이명박 후보쪽에서 비판했던 '후보 검증'에 대해 그는 "최고의 자리에 앉을 사람을 뽑는 거니까 제대로 알고 뽑자는 취지"였다며 "한나라당의 경우 과거의 경험도 있고 해서 그냥 넘어가서는 (본선에서) 위험해질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왜 대통령이 되려 했는가'라는 질문에 "국민이 행복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편치가 않다"고 했다. 그는 "농촌과 재래시장에 가면 왜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궁핍하게 살아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고 굉장히 속상하다"면서 "그럴 때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박 전 대표는 "대통령에 출마 안 하면 감옥에 보낸다든가, 때린다든가 하는 것이 없었어도 나온" 이유를 말하면서 "꼭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만큼 절실했다. 대한민국을 새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박 전 대표는 경선에서 도와줬던 사람들이 패배 후에도 패장을 떠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런 것은 물질로 사거나 일부러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라면서 "같은 꿈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돈 때문에 결합했다면 돈 계산이 끝나면 떠나고, 자리가 탐났다면 자리 없어지면 끝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목표와 이상이 같았기 때문에" 함께 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박 전 대표와의 일문일답.
- 인간 박근혜에게 권력은 무엇인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했는가? "내가 감수성이 예민하다. 권력의 끝에까지 가봤고, 그래서 권력의 속성을 자연스럽게 잘 알게 되었다. 그것이 얼마나 무상한가도 알고…. 발타자르 그라시안(Baltasar Gracian)이 쓴 책을 보면 '권력이 유일하게 좋은 점은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라는 말이 나온다. 잘 사는 나라, 행복한 나라를 만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실현하려면 대통령이라는 권력이 없으면 안되지 않는가? 그런 것 말고는 오히려 권력을 가지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개인 생활도 없고…." -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의 마지막 대회전이었던 서울 유세(8월 17일)에서 박근혜 후보의 연설을 들으면서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왜 이명박 후보는 안되는가를 절절히 외치는 것을 보면서 살 떨리는 느낌을 받았다. 본인도 그걸 느꼈나.
"나는 항상 혼신의 힘을 다해서 유세를 했다. 그러니까 듣는 사람도 절실하게 들렸을 것이다. 여러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 내 마음을 담아서 이야기했다. 마음을 담아서 하면 눈빛만 보아도 느낌을 줄 수가 있지 않은가." - 마지막 유세 원고는 누가 써줬나?
"메시지팀에서 초고를 써줬지만 내가 넣고 빼고 다듬었다. 항상 그렇게 했다." - 경선전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경선이 끝나고 한참 되었는데도 흩어지지 않고 있다. 그들 중에는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이명박 후보를 위해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박근혜 의원과의 진한 관계를 털지 못하고 고뇌하고들 있다.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길래….
"그런 것은 물질로 사거나 일부러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캠프에 모인 사람들은 그동안의 활동 배경도, 습관도 각자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왜 정권교체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추구하는 목표가 일치했다. 제대로 된 선진국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열의가 있었다. 법치가 지켜지고 신의가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런 합심은 같은 꿈이 없이는 안 된다. 돈 때문에 결합했다면 돈 계산이 끝나면 떠나고, 자리가 탐났다면 자리 없어지면 끝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목표와 이상이 같았기 때문에 함께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선전 내내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에 비해 불리하게 나오는 상황에서도 계속 같이 갈 수 있었다." "법치가 지켜지고 신의가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 같은 이상, 같은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조직의 구심력이 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인 박근혜는 여성인데, 남자들처럼 큰소리 치고 그런 것 같지도 않는데, 그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그들이 왜 따르나. "근본적으로는 애국심이다. 커다란 명분이 있기 때문에 함께 하는 것이다. 그분들 가운데에는 내가 대표로 있을 때부터 가까이에서 지내면서 내가 어떻게 정치를 해왔는지를 본 사람들이 많다. 내가 하는 그 정치가 옳고 맞다고 봐줬기 때문에 마음으로 함께 한 것이다." - 경선 결과 발표 때로 돌아가보자. 당시 단상 위에 있었을 때 처음엔 박근혜 후보가 투표에서만 2000여 표 앞서간다고 전해들은 것으로 안다. 그런데 막판에 결국 여론조사까지 합쳐서 지게 됐다. 하다못해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 져도 마음을 추스르기 쉽지 않은 것인데, 패배를 확인한 후 승복 연설을 할 때까지 어떻게 자신을 추스렸나. "(한참 말이 없다가) 경선에 참여하는 것은 다 결과에 책임지고 승복한다는 전제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게 민주주의의 원칙이고 기본이다. 최종 패배라는 쪽지가 오기 전까지 별 생각이 없이 앉아 있었다. 둘 중의 하나는 승자이고 또 한사람은 떨어지는 것이니…." - 당심에서는 이겼는데….
"그 표는 당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일반 국민 선거인단 표도 섞여 있었다." (박 대표는 당심이 아닌 '민심'에서 이겼고, 진 것은 여론조사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경선전 막판 3, 4일에 역전할 수도 있겠다는 감을 느꼈나.
"마지막에 전수조사도 하고 여론조사도 하고 그랬는데 조금씩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 아마도 그 쪽(이명박 후보쪽) 여론조사도 그렇게 나왔을 거다." - 대통령을 향한 권력의지는 어디에서 나오나. 그 과정이 엄청 복잡하고 피곤한데… 보통사람들 같으면 '에이 그냥 편히 살자' 이럴 텐데.
"처음 정치할 때는 어떤 자리를 갖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IMF로 나라가 어려워졌을 때 이 나라가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다시 반석 위에 올려놓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려면 제도권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뭐라도 해야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하다보니까 야당 대표도 하게 됐는데, 야당해가지고는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대안을 내놓아도, 예산도 없고, 손발도 없고 그렇게 힘이 없으니까 결국 비판만 하게 된다. 국민들이 편안하게 집 장만하고 아이들 키우는,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되지 않으면 내가 불행하다, 국민이 행복해져야 나도 좀 행복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이 행복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편치가 않다.
농촌에 갈 때면 더욱 그렇다. 외국에 가면 농촌도 그림 같은데 왜 우리는 이렇게 궁핍하게 살아야 하나, 그런 걸 생각하면 굉장히 속상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 전국을 돌면서 많은 국민들을 만났다. 재래시장을 돌면서 시민들에게 많은 약속을 했다. 그분들의 눈빛을 볼 때 아, 나에게 뭔가 기대하는, 믿는 게 있구나 그걸 느꼈다. 저 약속을 꼭 지켜야겠다, 보답해야겠다. 그러려면 대통령이 되어야겠다 그런 생각이 굉장히 강하게 들었다.
경선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든가. 혼자 그냥 살면 요즘처럼 이렇게 편안히 살수 있는데… 그런데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래야 나도 편안하고 행복하니까. 나중에 내가 나이 들어 눈을 감더라도 그래야 편안하지 않겠는가. 대통령에 출마 안 하면 감옥에 보낸다든가, 때린다든가 하는 것이 없었어도 그래서 나온 거다. 꼭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만큼 절실했다. 대한민국을 새로 만들고 싶었다."
"꼭 하고 싶은 게 있었다, 대한민국을 새로 만들고 싶었다"
- 초기에 '수첩공주'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참모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학습능력이 매우 빨랐다, 알고보니 수첩공주가 아니었다"는 말을 하던데. "새로운 나라를 어떻게 만들까 관심이 많으니까 공부가 저절로 됐다. 예를 들어 기업의 규제를 풀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은데, 그렇다면 어떤 규제를 어떻게 푸는 것이 효과적인가에 대해 참모들과 연구를 하면서 공부를 했다. 그런데 언론도 문제가 있다. 대안제시, 정책제시 안한다고들 하는데 내가 교육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을 때는 별로 주목을 안하더라. 기사도 안 쓰고." - 경선 때 박 후보가 제시한 캠프의 원칙이 있었다면?
"당 대표 시절에도 그랬지만 법에 어긋나는 것은 하지 말라고 했다. 그것 안하면 손해가 간다 하더라도 하지 못하게 했다. 우리가 꿈꾸는 선진국이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고 법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불법으로 한다면 그건 안되는 것 아닌가." - 그래서 박 캠프에서 이명박 후보 검증 이야기를 했고, 상대방에선 그것을 네거티브라고 했는데.
"대개 외국에선 대선후보에 대한 검증을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맡아서 규명한다. 최고의 자리에 앉을 사람을 뽑는 거니까 제대로 알고 뽑자는 취지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규명이 제대로 안됐다. 거의 없었다.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는 좀 절박했다. 과거의 경험도 있고 하니 그냥 넘어가서는 (본선에서) 위험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없는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은 네거티브지만, 그러나 언론에서 보도된 것을 해명하라고 한 것은 네거티브가 아니다. 어차피 본선에서 따져질 것이니까."
- 외로울 때, 결정적 선택을 할 때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하나.
"오랫동안 정치를 해오다보니까 어떤 기준이나 감이 생긴 것 같다. 단순하게 국회의원 배지를 달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바꿔보자는 꿈이 있고, 정치를 바꿔보자는 꿈이 있으니까... 어떤 때는 외로운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혼자 결정을 하게 될 때가 오면 딱 오는 게 있다. 이것은 끝까지 밀어붙여야겠다 하는 감이 있다. 그런데 그게 대개는 맞다. 물론 그것은 다른 분들하고도 상의하고 장·단점을 검토한 끝에 최종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 그 외로운 결정을 할 때 부모님의 영향을 받나? 보통 사람도 어떤 결정을 할 때 부모님의 말씀이 떠오를 수도 있는데.
"내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한 가지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굉장히 사심 없이 나라를 사랑했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어머니 방식대로, 아버지는 대통령으로서. 아버지는 왜 우리 민족은 5천년의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느냐를 늘 생각하셨고 그것에 대해 한(恨)을 가지고 계셨다. 그 민족의 한이 아버지 개인의 한이 된 거다. 한 번은 제가 퍼스트레이디를 할 때였다. 제가 식사할 때에 신문에 난 기사도 읽어주고, 시사적인 이야기도 함께 나눌 때인데, 한 신문에 난 기사를 제가 읽어드렸다. 근대화된 조국을 만들어 국민들을 가난의 설움, 그 한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라는 식의 기사였던 것 같다. 그 구절을 읽어드렸더니 아버님이 '어쩜 그렇게 내 마음을 꼭 찝어서 썼을까?'라고 하셨다. 이제 세월이 바뀌었다. 21세기이고 지식정보화 사회이지 않은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뀌었지만,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는 정신은 내 어딘가에 체화되어 있는 것 같다."
- 박 의원은 갸냘퍼 보이는데 눈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잘 안 운다. 그런데 지난 총선 때 우리 당이 거의 소멸 위기에 있을 때 방송연설하는데 막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계속 나왔다. 그리고 고엽제 환자 만났을 때도 눈물이 나왔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월남전에 나가 싸웠는데, 고생한 분들을 알아줘야 하는데, 너무 대우를 안해주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 (※ '인물연구 박근혜'편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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