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진보개혁세력은 이회창 후보의 등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명박 후보의 부패와 천박함에서 원인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지난 10년간 정권을 담당했던 민주화 세력을 포함한 범 진보개혁세력의 무능함에서 찾을 것인가? 이회창 출마는 진보개혁세력 책임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이명박 후보가 당내 단합에 실패하는 등, 경선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BBK 주가 조작 사건을 비롯한 온갖 부패추문에 연루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이회창 후보가) 물질적 지지기반(97년 대선 994만표, 2002년 대선 1145만표)을 가진 정치인으로 출마 유혹을 포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이명박 후보가 한국 보수의 품격을 떨어트렸다는 것이다. 금민 한국사회당 대통령 후보는 민주화 세력 집권 10년의 무능함이 이회창 후보 출마의 원인이 됐고, 이는 “비극적인 일”이라고 했다. 진보개혁세력의 무능함이 2007년 대선을 이명박 후보 지지율이 50%를 상회하는 보수 일색의 상태로 몰아갔고, 이 상태가 “이회창 후보가 등장할 수 있는 터전이 됐다”는 것이다. 금민 후보의 이야기는 민주화 세력의 무능함이 1953년 체제에 기생하는 오래된 한국 보수가 재등장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단지 분석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면 둘 다 맞다. 굳이 구분하자면 금민 후보의 분석틀은 심층적이고, 정대화 교수의 분석틀은 당면한 보수 분열의 직접적인 원인을 찾아냄에 있어서 유의미하다. 그런데 첫 번째 분석틀로 사태를 바라본다면 진보개혁세력의 무능한 상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2007년 대선을 (수구) 보수 대 (부패한) 보수의 대결로 인정하고, 그 싸움이 갈 데까지 가는 출혈전쟁이 돼 떡고물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요행일 뿐이다. 사실 지금 형세로 보면 이런 행운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이회창 후보의 등장으로 기가 꺾인 이재오 최고위원은 자진 사퇴했고, 이명박 후보는 좀 더 오른쪽으로 자신의 행보를 옮겨 수구 보수와 발맞추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명박은 아닌 것 같지만 정동영, 문국현도 확실치 않은... 어쨌든 이회창 후보의 등장은 한국 보수의 분열, 혹은 지각변동을 의미한다. 2007년 대선은 부패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합리적인 보수가 수구 보수를 대체할 수 있는 세력인지를 평가받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회창 후보의 등장으로 시험대에 오른 것은 합리적 보수만이 아니다. 한국의 진보정치세력도 마찬가지로 시험대에 올랐다. 단 보수 세력과 다른 점은 1953년 체제를 극복하는 것만 아니라 1997년 체제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제출해야 한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진보개혁세력의 새로운 길 찾기도 한국사회가 보수화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임채원 대통합민주신당 정책기획단장은 이회창 후보의 출마를 “1987년 이후 가장 큰 위기”라고 했다. 고원 창조한국당 전략기획단장은 “이명박 독주였을 때의 체념의 선택구조가 지금은 부패와 수구, 부패와 냉전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절망의 선택구조로 바뀌었다”고 했다. 한국사회당도 진보개혁세력의 위기의식을 공유한다. 안효상 한국사회당 부대표는 “리셋, 포맷을 다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선거는 인격과 세력으로 표출되는데 (지난 10년간 한국정치의) 주도세력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리셋, 포맷의 대상은 어디까지인가? 안효상 부대표는 “이명박이 아닌 것 같지만, 차라리 정동영이라도 하는 심정도 있지만 정동영도 뭔가 아닌 것 같다. 또 참신함으로 따지면 문국현인데 세력의 관점으로 보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냐는 판단”이라고 했다. 리셋의 대상에는 무능한 혹은 배신한 개혁 세력과 낡은 진보세력 모두가 포함된다. 지난 10년 동안의 한국 정치는 민주화 세력이 주도했지만, 그 결과 보수 일색인 구도에서 진보개혁세력 전체가 위기에 처했다. 한국사회당이 지난 10년 동안 드러난 한국사회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다른 진보개혁세력의 동의를 이끌어내려 하는 것도, 한국사회당 또한 2007년에 진보개혁세력이 처한 현실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진보개혁세력이 스스로 대안세력임을 증명하지 않고서는 2007년 대선 판도를 바꿀 수 없다. 정동영 후보의 정체성? 고원 전략기획단장은 “상당 정도의 단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진보정치세력의) 청산주의 관점은 위험하다”고 했다. 대한민국에 아직 1987년 체제의 자산이 있고, “그 때문에 신자유주의적 가치 일방으로 가는 것을 넘어서겠다는 대중의 움직임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대중의 그와 같은 움직임이 과연 대선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정도인지는 의심스럽다. 어쨌든 청산이든, 비판적 계승이든 진보개혁세력이 공유하는 바는 세력 구도로 보면 반보수 연대로, 내용적으로 볼 때는 1997년 체제에 대한 포괄적이고 긍정적인 대안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연대로 드러날 것이다. 정동영 후보, 문국현 후보, 권영길 후보, 금민 후보 등이 포괄적이고 긍정적인 미래대안에 동의한다면 가치연대, 반보수 연대는 성사된다. 그런데 지금 지지율 15%로 진보개혁세력 후보들 중에서는 1위인 정동영 후보가 과연 새로운 대안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가치연대의 구심이 될 의지를 가지고 있나? 청산이 아닌 계승하는 방식의 가치연대가 가능하다면 참여정부의 공과를 모른 체 하지 않겠다는 정동영 후보가 계승하고자 하는 가치의 실내용이 무엇인지가 궁금하다. 정동영 후보는 문국현 후보, 권영길 후보와의 가치연대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동시에 진보개혁세력이라 부르기에 민망한 이인제 후보와의 세력연합을 염두에 두고 있다. 가치연대든, 참여정부 공과의 계승이든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을 의심스럽게 하는 행보다. 정동영 후보가 단순한 세력연합이 아닌 유권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가치연대를 도모하고자 한다면 우선 정동영-이인제 합당설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밝혀야 한다. 정동영 후보가 오직 반보수 연대라는 세력연합의 결과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나머지 진보개혁세력이 정동영 후보와 함께 해서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감동은 없을 것이다. 설령 정동영 후보가 세력연합을 통해 요행으로 집권한다고 하더라도, 내부 정치세력 간에 가치에 대한 확실한 합의가 없었던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과 마찬가지로 실패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물론 국민은 또 한 번 속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무능한 10년이 무능한 15년이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가치연정을 이야기하고도 진보개혁세력이 머리를 맞대야 할 판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권영길 후보의 진정성도 의심스럽다. 권영길 후보가 만인보와 백만 민중대회에 정성을 쏟는 만큼 가치연대를 위한 진보개혁세력의 논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란다. 가치의 공통분모는 ‘사람’ 금민 후보는 “아직 대선이 다 끝난 것이 아니”라며 “진보개혁세력이 1997년 체제에 대한 경제 사회적 대안을 갖고 대선을 끌어간다면 이번 대선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직 가능성이 있다! 정동영 후보의 ‘차별 없는 성장’, 문국현 후보의 ‘사람 중심, 진짜 경제’는 금민 후보의 노동사회혁신, 보편적 복지를 통한 성장 담론과 ‘사람’을 공통분모로 맞닿아 있다. 신자유주의 10년 동안 축적된 위기는 곧 사람의 위기다. 빈곤이 심화되고 노동조건이 악화되는 사회 흐름 속에서 사람 존중의 가치가 많이 소멸됐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도, 원자재와 에너지를 수입하고 노동과 기술을 투여해 생산한 상품을 수출하는 한국에서는 사람이 유력한 대안이다. 고원 전략기획단장은 이번 대선에서 진보개혁세력이 실현해야 할 가치는 “교육, 인권, 환경, 노동 등 사회적 기본권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재규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임채원 정책기획실장은 “지금은 지식사회의 인적투자라는 개념과 잘 결합해야 한다”고 했다. 안효상 부대표는 “차별 없는 성장, 사람중심 진짜경제, 그리고 노동사회 혁신을 통해 '좋은 성장'으로 가야 한다. 복지의 개념도 인간의 생애주기에 따라 건강, 양육, 교육, 노동을 책임지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권영길 후보는 경제 사회적 대안보다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에 강조점을 찍고 있긴 하지만 ‘사람 중심’을 매개로 정책을 구성하긴 했다. 진보개혁세력의 대연정을 촉구하며 그런데 2007년 대선에 도전하는 모든 정치세력들이 도모하는 것은 현실에서의 정치적 이익이다. 이미지 전략, 친환경/건설 토건주의 상징정치 일색의 대선구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가치연대가 집권을 위한 로드맵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정동영 후보가 추구하는 상층의 세력연합보다 강력한 연합 방식은 가치연대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대연정이다. 상층의 세력연합을 통한 후보단일화는 몸집은 부풀릴 수 있어도 감동이 없다. 하지만 시민사회까지 포괄하는 진보개혁세력의 가치에 대한 합의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대연정에는 감동이 있다. 대연정은 물론 대통령제 하에서는 불가피하게 후보단일화라는 형식을 취한다. 그러나 대연정은 집권 이후의 국정운영전략에 대한 대중적이고 공개적인 합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상층의 세력연합보다 진일보한 선거연합의 방식이다. 아래로부터의 대연정, 대선에 후보를 낸 정치세력들만의 대연정이 아닌 한국의 시민사회까지 크게 끌어안는 대연정은 진보개혁세력의 집권 이후 국정운영전략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현 가능하고 진보적인 가치에의 합의 자체가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했음직한 진보적 부동층 표심을 움직일 것이다. 가치연대의 구체적인 방식, 로드맵의 실현 과정은 진보개혁세력이 합의한 가치가 대중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일 것이며, 6대4의 구도를 5대5의 구도로 바꾸기 위해서 표를 결집시키는 과정이 될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대연정을 통한 감동의 정치가 현실화된다면 한국사회당은 여타의 진보개혁세력들과의 논의 구조 속에서 ‘효과의 정치’를 수행하고자 한다. 한국사회당의 미래비전을 대한민국 전환의 논리로 제시하는 것이 한국사회당이 이번 대선에서 목표로 하는 ‘효과의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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