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7일 도쿄 도심에서는 지방참정권을 요구하는 재일동포 5천여 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민단 주최로 열린 지방참정권 쟁취 궐기대회에서 재일동포들은 일본에 거주하는 영주 외국인들에게 최소한의 권리인 지방참정권을 조속히 인정해줄 것을 촉구했다.
영주 외국인에 대해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정부의 태도는, 지난 2005년부터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인정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태도와 비교될 만한 일이다. 예컨대, 2005년 7월 11일에 개정된 현행 주민투표법 제5조 2항에서는 “20세 이상의 외국인으로서 출입국관리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대한민국에 계속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로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가 정하는 자는 주민투표권이 있다”라고 규정하였다.
이처럼 자국 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참정권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더 관대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일동포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위와 같은 요구를 하는 것도 상호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참정권 인정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정부는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참정권은 관대하게 인정하면서, 정작 한국에 거주하는 재외동포의 참정권은 인정하지 않는 모순을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의 순서를 따지자면, 전자보다는 후자에게 먼저 참정권을 인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8월 28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받은 바 있는 현행 공직선거법에서도 아무런 헌법적 근거 없이 재외동포들의 참정권을 제한하고 있다. 헌법 제24조에서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위법인 공직선거법에서는 ‘모든 국민’에 포함되는 재외동포들의 선거권을 임의로 제한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이 한국 거주 재외동포들의 참정권을 어떻게 제한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의 경우다. 공직선거법 제15조 1항에서는 “19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다”고 규정하였다. 이 규정만 놓고 보면, 한국 국적의 재외동포로서 한국에 거주하는 재외동포 특히 재일동포도 당연히 선거권을 갖게 된다. 그러나 한국 거주 재외동포들은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또 다른 두 개의 규정에 의해서 선거권을 제한받게 된다.
“제3조 : 이 법에서 ‘선거인’이라 함은 선거권이 있는 자로서 선거인명부에 올라 있는 자를 말한다.”“제37조: 선거를 실시하는 때에는 그때마다 구청장·시장·읍장·면장은 대통령선거에 있어서는 선거일 전 28일,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의 의회의원 및 장의 선거에 있어서는 선거일 전 19일 현재로 그 관할 구역 안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선거권자를 투표구별로 조사하여 선거인명부작성기준일부터 5일 이내에 선거인명부를 작성하여야 한다.” 위 조문에 따르면, 한국에서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재외동포들은 선거인명부에 등록될 수 없기 때문에, 선거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인 자격을 얻지 못한다. 현행 재외동포법(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들은 주민등록증이 아닌 국내거소신고증을 받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지방선거의 경우다. 공직선거법 제15조 2항에 의하면, “19세 이상의 국민으로서 … 선거인명부작성기준일 현재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관할 구역 안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자”는 “그 구역에서 선거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의회의원 및 장의 선거권이 있다”고 하였다. 이 경우에도 역시 재외동포들은 국내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참정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한 헌법 제24조는 ‘국민의 선거권을 법률에 의해 제한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그 절차와 요건을 법률로 규정하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마땅한 규정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행 공직선거법은 아무런 헌법적 근거도 없이 재외동포들의 선거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에 따라 공직선거법 등의 관련 조항이 2008년 12월 31일 이전에 개정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번 대선과 내년 총선까지도 재외동포들이 한국에서 참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위헌적 상태는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벌써 2년 전부터 외국인의 참정권은 인정하면서 정작 국내 거주 재외동포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정부의 태도는 매우 모순적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분명히 사리에 맞지 않는 태도다.
그러므로 재일동포들을 진정으로 차별하는 곳은 일본이 아니라 바로 한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에서 재일동포들은 여느 외국인들과 똑같은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지만, 정작 자기 고향인 한국에서마저 국민 대우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한국 거주 외국인보다도 더 못한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지방신문 기자로 활동하다가 몇 해 전부터 서울의 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어느 재일동포는 “우리는 일본에서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고 한국에서도 행사할 수 없다”면서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보다도 더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불만을 자주 토로한다.
이러한 정서는 그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재일동포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은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정부의 차별을 비판할 게 아니라, 한국 내에서 벌어지는 재외동포에 대한 차별부터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여야 정당들은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지 말고, 최소한 한국 거주 재외동포들만이라도 하루빨리 참정권을 전면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한국 국민이 한국에서 참정권을 행사하는 기본적 권리는 그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