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무척 쌀쌀해졌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지니 유난히 어머님이 그립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님은 이 즈음이면 월동준비에 무척 바쁘셨습니다. 배추를 백 포기쯤 담아야 든든하다고 김장철이 되기도 전에 마늘이며 고추를 이 장 저 장 돌아다니면서 구입하셨지요. 그리고 연탄도 삼백 장 정도 들여 놓으셔야, 마음을 놓으셨지요. 하지만 요즘의 핵가족의 가정에서는 김장은 거의 하지 않고, 슈퍼나 장에 가서 구입해 먹고 겨울철에도 얼마든지 배추를 구입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세상이지만, 그래도 아직 가난한 서민들은 월동준비가 가장 큰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이웃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은 텃밭에 가득 배추와 채소를 가꾸어서 겨울내내 아무 걱정이 없답니다.
모두 요즘 배추는 '금추'이고, '금추'이다보니 배추밭에 와서 이 금추를 훔쳐가는 좀도둑도 생겼다고 뉴스를 통해 접하지만, 우리 이웃들은 전혀 딴 나라에 사는 사람들처럼 배추밭에 '금추'들이 무사하답니다. 여름 동안 가꾸어서 몇 차례 뽑아서 장에 내다 팔고 다시 텃밭을 가꾸어 씨를 뿌리고 파릇파릇 어느 이웃들은 김장을 하고도 또 씨앗을 뿌렸는데, 파릇파릇 배춧잎이 시퍼런 지폐처럼 돋아나 있습니다. 정말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흙은 씨앗만 뿌리면 뿌린 대로 되돌려주는 듯합니다. 고마운 흙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 텃밭을 지나다니면서 흐뭇합니다.
부산은 최남단의 지방이라 참 따뜻한 고장입니다. 거센 해풍 속에는 따뜻한 온기가 있습니다. 상추 한단 가을철에는 금값인데, 우리 이웃의 텃밭들은 공터마다 거름을 주고 가꾸어서 씨만 뿌리면 잘 자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풀도 뽑아주고 물도 자주 주어서 이렇게 먹음직한 채소로 자란 것입니다. 월동 걱정 중에 김장 걱정이 첫 번째인데, 이 첫 번째 걱정이 해결되어서 서로 이웃끼리 상추를 솎아 선물처럼 주고받기도 합니다. "우리 밭에 나온 상추 한번 먹어봐요." "우리 밭에 나온 배추 한번 먹어봐요." 작은 소쿠리에 한 잎 한 잎 정성스레 씻어서 선물하는 이웃들이 있어서 정말 흐뭇한 요즘입니다.
파릇파릇한 녹색의 배춧잎은 하얀 배춧잎보다 영양가가 좋다고 합니다. 이런 배추는 살짝 삶아서 쌈을 사 먹어도 좋고, 김장을 해 놓으면 빛깔은 나지 않지만 맛은 그저 그만이라고 합니다. 한 이웃은 총각김치를 담기 위해 무밭을 가꾸었는데 정말 싱싱한 무들이 잘자라고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남쪽 나라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행복한데, 이렇게 부지런한 이웃들 덕분에 가끔씩 얻어먹는 배추 쌈과 상추 쌈의 맛으로 너무 행복해서, 초등학생처럼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그러나 내년 봄이면 재개발로 굴착기에 묻히고 말 텃밭 생각에 괜스레 눈가가 촉촉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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