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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광풍'이요, 거스를 수없는 물줄기 같은 대세다. 그러나 그 광풍이, 그 물줄기가 언제, 어디로 흐를 지, 신기루처럼 사라질지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엄습함은 어쩐 일일까? '다문화'란 단어 앞에서 느끼는 최근 현실과의 괴리감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일까?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다문화사회에 대한 논의들이 범람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다문화사회가 무엇을 뜻하고, 다문화교육은 무엇이고, 다문화가족은 무엇인지, 다문화사회의 철학, 이론, 방법론 등을 묻는다면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다문화 친화적인 현실의 생성에 기여하기를 희망하며 다문화 담론에 대해 고민하며 토론했던 이들의 기록들을 모은 책이 나왔다. <한국에서의 다문화주의>(한울아카데미 간)라는 책이다.

책은 1부 한국에서의 다문화주의, 2부 다문화 정체성, 3부 다문화교육의 현황과 문제점, 4부 다문화주의와 종교로 구성되었다.

오늘날 다문화 담론의 빠른 확산과는 달리 다문화 주체를 오히려 소외시키고 구분 짓는 담론 역시 양산되는 것이 현실이다. 다문화에 대한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다문화사회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이주민 자신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고, 정부가 이주민 정책을 다문화주의에 입각한다고 선언했지만, 여전히 반인권적 단속과 추방이 계속되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주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파키스탄 이주노동자와 결혼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필진으로 참여한 다문화가족협회 공동대표인 정혜실은 "다문화가 그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multicultural인지, 아니면 문화가 경계를 넘어 서로서로 흡수되고 포용되는 cross-cultural 인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기도 전에 쉽게 다문화가족이라는 명명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 담론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지만, 용어 선택에 있어서도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저자 중 한 명인 오경석이 던진 질문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다문화주의 혹은 다문화주의 전부가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과연 '어떤 다문화주의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내는 일이다"라는.

이제 저자들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필요한 다문화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기 전에, 다문화주의라 할 때, '문화'라는 단어를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정의하고 있는지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사회는 인종, 언어, 역사 등 다름의 내용을 문화상대주의적 시각으로 대하는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화 개념의 편향성으로 인해 마녀사냥에 의한 희생자, 역사적 마이너리티들을 만들어왔고, 서구가 만든 이슬람 편견을 그대로 답습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은 곧 '문화상대주의를 강조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실천되는지, 그 실천의 내용이 문화 상대주의적인지에 대한 고찰이 미진했다는 얘기(정진헌)'이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주의는 정부에 의해 추진되고, 이주여성 상담소를 포함한 지원단체들에 의해 지지되는 특징을 보여 왔다. 아울러 이러한 관주도형의 다문화주의는 정부로부터 프로젝트 기금을 지원받아 GO(정부기구)와 NGO(민간단체)의 구분마저 모호한 다문화주의 단체들의 등장을 가져왔다.

문제는 정부가 다문화주의를 사회통합의 기제로만 활용하고 있다는 점과 한국에서의 다문화주의가 국제결혼 이주여성과 그녀들의 자녀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주도형 다문화 정책에서 화교와 장기체류 이주노동자들은 철저히 소외되고, 각국 공동체들은 다문화행사의 대상자로만 간주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현재 한국에서의 다문화주의가 국제결혼 이주여성으로 대표되는 이주민을 '위한' 다문화주의이기는 해도, 이주민에 '의한' 다문화주의는 결코 아님을 뜻한다. 그러한 다문화주의는 상호 존중과 공존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함께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복합적인 현상을 설명하려는 해석학적 태도의 결여를 가져온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다문화를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우리의' '우리다움'만 확인하고 강화하는 역설이 잉태되고 양산되는 것이 우리 현실이며, 최근 다문화 담론이 유감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우리에게 필요한 다문화주의는 어떤 것인가?

이에 대해 '다문화와 새로운 정체성'을 주제로 이야기한 박흥순 숭실대 강사는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주의를 논의하고자 할 때 서구에서 논의되고 있는 다문화주의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한국 사회와 구성원들의 인식과 관점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와 토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단일민족이라는 통념을 지니고 있던 우리사회는 인구학적 측면에서 100만이 넘는 이주민으로 인해 이미 다문화사회로 바뀌고 있다. 이들 이주민들, 즉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새터민(탈북자) 등으로 불리는 이주민들은 사회 이슈가 되고 있긴 하지만, 늘 한국 사회의 시각에서 진단된 역할 모델과 문화적 간극과 차이를 극복하기를 강요받는 위치에 놓여 있다.

혹자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듯, 한국에 왔으면 한국의 법을 따르라'고 응당 이야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문화라는 것은 서로 영향을 주며 상호 작용하고, 침투하며 변해간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섣부른 '동화'를 강제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놓고 볼 때, "한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이 갖고 있는 정체성은 고정되거나 보편적이지 않고 상황과 장소에 따라 변화되고 변형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박홍순)"는 주장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 시대는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통치를 경험한 한국사회에서 자민족 우월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와 순혈주의라는 가치는 분단 상황이라는 한국적 특수성으로 인해 그 세력을 공고히 하며, 다문화 담론의 높은 벽이 되기도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그 벽은 다문화담론이 활성화되면서 서서히 무너질 것이다. 다만  <한국에서의 다문화주의-현실과 쟁점>에서 다루고 있는 다문화사회와 관련한 주제들이 계속적인 논의와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가 도출될 때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자양분을 풍성하게 할 논의들을 마련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놨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차제에 일선 현장의 다문화교육도 일회성 행사라는 한계와 이주민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드는데서 벗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끝으로 현실 정치에서 100퍼센트 실현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인도네시아의 국시인 '다양성 속의 조화'(Diversity of social culture' but life in UNITY (bineka tunggal ika)'라는 문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다문화주의가 지향해야 할 바를 지적하고 싶다. 그리하여 다수자들로 하여금 소수자들의 문화도 배우게 하자는 성찰도 일어나고, 존재의 다름과 같음을 이해하면서 다른 존재자들과도 함께 잘 어울려 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태그:#다문화주의, #이주민, #다문화교육, #다양성,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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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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