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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행복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파커 파인과 상의하세요.'

<파커 파인 사건집> 파커 파인이 등장하는 단편 12편이 실려 있다.
<파커 파인 사건집>파커 파인이 등장하는 단편 12편이 실려 있다. ⓒ 황금가지
파커 파인이 등장하는 작품 속에서, 영국의 조간신문 1면에 실린 광고문구다. 이렇게 대담한 광고를 만든 사람은 파커 파인이다. 현대사회에서는 행복한 사람보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모두 파커 파인에게 가서 상담을 한다면 어떨까. 그 상담료만 챙기더라도 파커 파인은 무척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광고의 문구처럼, 파커 파인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상대한다. 파커 파인의 개인사무실은 광고를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끊이지 않는다. 파커 파인은 그들과 상담하며 적절한 조언을 해준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들이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행동방침을 알려준다.

탐정이라기보다는 상담소 소장 또는 해결사 같은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는 인물이다. 파커 파인도 자신을 가리켜서 그렇게 말한다.

도둑과 범죄는 자신의 분야가 아니다. 자신이 다루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마음의 질병을 치료해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행복해지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파커 파인은 단순하게도 사람들의 불행을 다섯 가지로 압축시킨다. 이것은 모두 통계에 의한 것이다. 파커 파인은 개인사무실을 개설하기 전에 35년간 관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불행한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파커 파인

그 긴 시간 동안 관청에서 통계자료 수집에 몸 바쳐온 인물이다. 파커 파인은 은퇴 이후에 자신의 경험을 색다른 방식으로 활용해보자고 결심한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상대로 한 개인사무실을 개설하게 된 것이다.

파커 파인은 자신의 일을 가리켜서 '단순한 일'이라고 말한다. 파커 파인은 의사와 같은 입장에 있다. 그는 의사로서 우선 병을 진단한다. 그후에는 하나하나 치료절차를 밟아 나간다. 물론 어떤 치료법도 소용없는 병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파커 파인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파커 파인은 자신이 맡겠다고 결심한 병에 대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치료하고야 만다.

파커 파인은 처음 찾아오는 고객을 상대로 이렇게 자신만만한 말을 늘어놓는다. 그를 처음보는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의심을 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파커 파인은 묘하게도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덩치가 크지만 뚱뚱한 것은 아니고, 머리는 알맞게 벗겨져서 고상한 품위가 엿보인다. 안경 너머로 반짝이는 두 눈을 가지고 있다. 그의 모습은 상대로 하여금 절로 신뢰감을 갖도록 하는 분위기를 은연중에 풍기고 있다.

그래서인지 고객들은 파커 파인을 믿고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파커 파인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사연도 다양하다. 바람 피우는 남편 때문에 고생하는 유부녀, 지루한 일상을 견디지 못하는 퇴역군인, 모험을 하고 싶어하는 직장인 등. 이런 사람들은 모두 파커 파인에게 자신의 고충을 이야기한다.

걔중에는 많은 돈을 주체하지 못해서 돈 쓰는 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여인도 있다. 파커 파인은 사무실에서 고객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문제 때문에 자신을 찾아왔는지 대번에 알아 차린다. 고객이 어떻게 그것을 알았냐고 물으면 파커 파인은 태연하게 대답한다. 그것은 통계에 따른 것이라고.

이때마다 파커 파인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알려준다. 파커 파인은 우선 적절한 금액의 보수를 정한다. 그 보수는 선불인 경우가 많다. 고객이 보수를 지불하면 파커 파인은 며칠 이내에 지시사항을 우편으로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고객은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서 파커 파인의 연락이 올 때까지 자신의 일상을 유지해 간다.

다양한 방법으로 불행을 치유하는 파커 파인

그리고 정해진 날짜가 되면 어김없이 파커 파인에게서 지시사항이 담긴 편지가 도착한다. 고객은 아무 의심없이 그 지시대로 행동한다. 그 지시사항대로 행동하다 보면 낯선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고, 처음 보는 장소에 찾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된 일상의 변화는 짧게는 며칠, 길게는 그 이상으로 지속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고객이 말했던 불행의 원인은 제거된 상태가 된다. 바람난 남편은 다시 부인에게 돌아오고, 일상은 더 이상 지루하지 않다. 스릴 넘치면서도 위험하지 않은 커다란 모험을 즐길 수도 있다.

파커 파인은 때로 속임수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바람난 배우자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남편 또는 부인에게 맞바람을 피우게 한다. 모험을 연출하기 위해서 커다란 세트장을 통째로 조작하기도 한다. 권태를 느끼는 여인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고 시골에 처박아두기도 한다.

파커 파인에게는 그럴만한 역할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적절한 보수를 주기만 하면 제비족으로 변하는 남자, 탕녀처럼 행동하는 여자, 성추행범으로 변신하는 흑인들이 있다. 고객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면 이들에게도 그에 따른 보수가 주어진다.

때로는 이런 방식의 해결이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파커 파인에게 불평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파커 파인은 요지부동이다. 파커 파인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불평을 듣고 나면 서류철에 그 고용인의 변화를 기록해둔다. 또 다른 통계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이렇게 파커 파인은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 파커 파인은 이런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을까? 그는 여러 해 동안 많은 사람들을 불행에서 건져내 주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 속에서 파커 파인 자신의 일상이 혹시 지루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파커 파인은 커다란 여행을 떠난다.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타고 파리에서 이스탄불로 떠난다. 그곳에서 시작해서 다마스커스, 바그다드, 이란, 요르단, 나일강을 거쳐서 그리스까지 향하는 긴 여행길에 오른다. 오랫동안 사람들을 근심에서 건져준 파커 파인의 긴 휴가길이다. 이 기간 동안 파커 파인은 모든 것을 잊고 휴식을 취하고자 한다. 엉뚱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 모처럼의 휴식을 망치고 말테니까.

긴 여행길에서 탐정으로 변하는 파커 파인

하지만 이 휴가 기간에도 파커 파인은 마음 편히 쉬지 못한다. 여행길 도중에 파커 파인을 알아보고 그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예기치 못한 이상한 사건들이 파커 파인의 주변에서 발생한다. 바그다드로 가는 차 안에서 한 여행객이 살해당하는가 하면, 8만 달러짜리 진주목걸이를 분실하는 사고도 생긴다.

나일강을 항해하는 배 위에서 알 수 없는 죽음을 맞는 부인이 있는가 하면, 이란의 작은 마을에서 은둔하고 있는 영국인도 있다. 파커 파인은 이런 사건 또는 사람들과 마주할 때마다 특유의 추리력으로 그 사건들을 모두 해결한다. 휴식을 위한 휴가여행이 마치 문제를 해결하는 장기간의 출장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이 여행길에서 마주친 사건들은 대부분 강력범죄다. 파커 파인의 주변에는 살인과 납치, 절도 등의 범죄로 얼룩진 많은 인간군상이 있다. 파커 파인은 그들을 관찰하면서 범죄형의 인간인지 아닌지를 간파한다. 범죄를 행하더라도 살인을 할만한 인물인지도 함께 꿰뚫어본다. 수십 년동안 통계자료를 모아온 경력이 역시 여기에서도 빛을 발한다. 파커 파인은 마음의 질병을 치료하는 상담소장에서 어느새 훌륭한 탐정으로 변한 것이다.

파커 파인을 창조한 작가는 영국의 애거서 크리스티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만든 탐정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미스 마플 그리고 에르큘 포아로다. 이 두 탐정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심각한 범죄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수사도 무척 진지하기만 하다.

반면에 파커 파인이 나오는 시리즈는 그렇지 않다. 파커 파인은 왠지 다정하고 유쾌한 인물처럼 느껴지고,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가볍고 어찌보면 재미있는 사연을 가지고 있다. 파커 파인이 휴식을 위해서 긴 여행을 떠났던 것처럼, 애거서 크리스티도 창작활동 도중에 머리를 식히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산물이 바로 파커 파인이라는 흥미로운 캐릭터였을지 모른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0 (완전판) - 복수의 여신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황금가지(2013)


#추리소설#파커 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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