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영영 날이 샐 것 같지 않은 길고 긴 겨울밤이면 할아버지를 졸라 옛날이야기를 듣곤 했다. "얘야, 옛날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단다"라고 할아버지는 수시로 내게 경고하시곤 했다. 이야기만 실컷 들을 수 있다면 가난 따위야 무슨 상관이람. 어쩌면 할아버지께선 옛날이야기를 하는 동안 등잔 속에서 속절없이 닳고 말 '석유 지름' 이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고 막무가내로 조르는 손자의 청을 이길 할아버지 또한 없다. 할아버지께서 이야기를 시작할 기미가 보이면 얼른 할아버지 무릎을 베고 눕는다. 할아버지의 무릎을 베고 있으면 어쩐지 이야기가 귀에 솔솔 잘 들어오는 것 같다. 어디 보자, 그럼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오늘은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는 하기 없기." 난 미리부터 확실하게 못을 박아둔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그 이야기가 신물이 났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이야기 주머니는 뻔하다. '우렁각시', '선녀와 나무꾼',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등을 거치고 나면 이내 바닥이 나고 만다. "할아버지, 그런 이야긴 골백번도 더 들었어. 그런 이야기 말고 딴 이야기는 없어?" 할아버지께선 마침내 비장의 무기를 꺼내신다. 옛날 중국 땅에 생쥐 형제가 살고 있었단다. 어느 해던가 몹쓸 흉년이 들었지. 먹을 것이라곤 시래기 한 올도 밤 한 톨도 없었지. 생쥐 형제는 언젠가 어머니에게서 이야기 들은 적이 있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떠올렸단다. 그곳엔 먹을 것이 아주 많다고 했거든. 두 형제는 이렇게 앉아 죽느니 먹을 것을 찾아 조선으로 가기로 했지. 조선으로 가려면 황해를 건너야 했단다. 생쥐 형제는 황해를 건너가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처럼 풍덩, 바다에 몸을 던졌지. 그리고 헤엄을 치기 시작했단다. 옴방똠방, 옴방똠방. "그래서요?" "옴방똠방 헤엄쳐 오고 있지." "그래서요?" "지금도 옴방똠방, 옴방똠방 황해를 헤엄쳐 오는 중이지." 저 생쥐 형제는 어느 세월에나 바다를 건너 올 것인가. 쉽게 황해를 건너오지 못하는 생쥐 형제에게 차츰 절망하기 시작했다. 할 수 있다면 생쥐 형제 대신 내가 헤엄쳐 주고 싶었다. 절망과 무기력은 형제다. 그 둘은 늘 따라다닌다. 절망의 끝에서 무기력에 빠진 난 스르르 잠이 들고 만다. 하느적거리던 호롱불도 이내 꺼지고 만다. 삶의 품질은 정신적 굴욕과 육체적 굴욕 사이에서 결정된다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신 옛날이야기 가운데 '호랑이와 곶감'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중국 생쥐 이야기와 똑같은 배고픔의 한이 서린 이야기다.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아서 마을로 내려와 이집저집 기웃거리던 호랑이는 어느 집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아이 엄마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여우, 곰, 호랑이 등 무서운 동물들의 이름을 차례로 주워섬긴다. 그러나 아이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그러다가 "아나, 곶감" 한마디 하자 아니는 뚝, 울음을 그친다. 이 광경을 엿보던 호랑이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나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니. 아이가 울음을 그칠 만큼 무서운 곶감이란 놈과 행여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이거 큰일 아닌가. 호랑이는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꼬랑지 빠지게 산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산으로 도망친 호랑이는 어떻게 됐을까. 호랑이의 후일담이 몹시 궁금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조금도 내 궁금증을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그 뒤야 누가 알리, 더질더질. 누가 부과하지도 않은, 스스로 추켜든 의무감에 눈뜬 소수자에 의해서 방향을 바꾸며 흘러온 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난 때때로 호랑이의 후일담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곤 했다. 난 언젠가 '호랑이와 곶감'의 속편을 쓰고 죽을 수 있을까. '백수의 제왕'이라고 으스대며 살던 호랑이. 하심(下心)을 모르고, 좌절이란 것도 모르던 호랑이. 거칠 것 없이 생을 살아온 호랑이에게 느닷없이 알게 된 곶감의 존재는 얼마나 커다란 절망이었을까. 인식한다는 것, 안다는 것은 때로 얼마나 큰 공포인가. 난 호랑이가 겪었을 정신적 좌절을 충분히 이해한다.
우는 아이가 느낀 것은 육체의 굴욕이다. 아이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울었던 것이다. 샘에 가서 숭늉을 얻어먹기는커녕 솥단지에 든 숭늉도 떠다 먹기 힘들 만큼 눈치 느린 엄마만 알지 못했을 뿐이다. 아이는 곶감을 얻어 먹으려고 그만 울음을 그친다. 곶감을 먹는 것으로 아이의 육체가 겪는 굴욕은 깨끗이 치유될 것이다. 한편 호랑이에게 곶감은 정신적 굴욕이다. 제왕의 위치에서 끌어내려지는 듯한 느낌. 호랑이는 이 느닷없는 정신적 추락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아마도 산으로 돌아간 호랑이는 그 굴욕감을 잊어버리기 위해 오랫동안 문밖 출입을 삼가했으리라. 나는 그런 호랑이에게 마음속에서 우러난 깊은 연민을 보낸다. '호랑이와 곶감'이란 이야기가 생겨난 배경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 조상의 삶이 얼마나 배고픈 것이었나를 알 수 있다. 호랑이도 배고팠고, 아이도 배고팠다. "배고픈 데는 장사 없다"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이야기 속 곶감은 먹을 것을 상징한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기아를 극복한 삶을 살고 있다. 지금도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애써 굴욕을 참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곶감 같은 사소한 먹을거리에 목숨을 걸고 덤비지는 않는다. 그 대신 우리에겐 정신의 굴욕이 많아졌다. 그 대부분은 피할 수 없는 굴욕이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잘 먹고 잘 살려고 몸부림치는데서 오는 부차적인 것들이다. 육체의 굴욕은 식욕이 채워지는 순간 저절로 극복된다. 그러나 정신이 씹은 곱굴욕감은 쉽게 회복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깊어가는 가을 저녁, 난 곶감에 관한 시 한 편을 찾아 읽는다. 아, 어디에도 비길 데 없는 절창이다! 과연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라 일컬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분이로고. 필요 이상으로 정신적 굴욕을 감수한 그의 생애만 빼고 나면 말이야. 맨드래미 물드리신 무명 핫저고리에, 핫보선에, 꽃다님에, 나막신 신고 감나무집 할머니께 세배를 갔네. 곶감이 먹고싶어 세배를 갔네. 그 할머니 눈창은 고추장 빛이신데 그래도 절을 하면 곶감 한개는 주었네. "그 할머니 눈창이 왜 그리 붉어?" 집에 와서 내 할머니한테 물어보니까 "도깨비 서방을 얻어 살어서 그래"라고 내 할머니는 내게 말해주셨네. "도깨비 서방얻어 호강하는 게 찔려서 쑥국새 솟작새같이 울고만 지낸다더니 두 눈창자가 그만 그렇게 고추장빛이 다아 되어버렸지
-서정주 미발표 유작 '곶감 이야기' 옛 선인들이 안분지족(安分知足)-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앎-을 강조한 것은 어쩌면 이 정신적 굴욕을 경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나저나 중국에서 먹을 것을 찾아 우리나라로 건너오는 생쥐 형제는 어디까지 헤엄쳐 왔을까. 지금도 여전히 옴방똠방 황해바다를 헤엄쳐 오고 있는 중일까. 옴방똠방- 할아버지는 어디서 이런 멋진 의성어를 찾아내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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