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멍멍!~ 컹컹컹~!'
"엄마야!"지난 11일 경북 군위군 매봉산 병수리 임도를 타고 이제 막 봉산리 마을로 가는 길이었어요. 아랫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마주쳐 삼거리가 되는 산길에서 큰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렸어요. 가뜩이나 길이 가파르고 내려서는 곳에 높은 턱이 있어서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난데없이 개 한 마리가 뛰쳐나오며 우리를 보고 마구 짖는 거였어요. 얼마나 놀랐던지 몸이 자전거와 함께 기우뚱거리는 걸 가까스로 멈춰 섰습니다.
"아니, 저건 또 뭐야!"
"휴우……."남편과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오도 가도 못하고 얼어붙었지요. '수정암'이라고 하는 산속 작은 암자에서 뛰쳐나온 개인데, 새끼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젖이 축 늘어져 있는 암캐였어요. 또 다른 개 한 마리는 다행히 목줄에 묶여 있는 듯한데, 이 두 녀석이 한꺼번에 얼마나 짖어대는지 꼼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더구나 처음 짖을 때 이 암자에서 사람소리도 들렸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사람은 뵈지 않고 사납게 짖는 개소리만 산속을 시끄럽게 울렸어요.
지난봄에도 문화재가 있다는 절집에 찾아가는 길에 마을 들머리에서 개 두 마리가 뛰쳐나와 혼쭐이 난 적이 있었지요.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침까지 질질 흘리면서 으르렁거리며 마구 짖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고 식은땀만 흘리고 있는데, 마침 절에 다녀오던 어떤 부부 덕분에 그 자리를 피하여 절집엔 가보지도 못하고 바로 돌아 나왔던 적이 있었지요.
그때 얼마나 놀랍고 무서웠던지 자전거를 사이에 두고 개와 마주하며 대치(?)하고 있던 십 분이 십 년처럼 느껴졌어요. 발만 옮겨도 으르렁거리며 바싹 다가서는데 그야말로 오금이 저리더군요. 이런 나쁜 기억 때문에 지금도 그 절집은 두 번 다시 갈 수 없는 곳이 돼버렸답니다. 적어도 우리한테는….
우리도 집에서 개를 키워봤고, '개'라면 누구보다도 좋아하지만 한 번 호되게 당한 뒤부터는 길에서 목줄이 풀린 개를 만나면 크든 작든 더럭 겁부터 난답니다.
그냥 ‘무시’하고 가라고요?한 번 생각해보세요. 산속에서 목줄도 묶여있지 않는 큰 개를 만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냥 ‘무시’하고 가야 하나요? 아니면 도망을 가야 하나요? 도망치려고 해도 오르막인 산길이라서 자전거로 가봐야 그냥 뛰어가는 것만 못해요. 또 그러다가 쫓아와서 물기라도 하면….
"괜찮아. 그냥 가자. 엊그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쓴 기사에도 자전거 여행하다가 개를 만나면 못 본 척하고 간다는 이야기가 많더라고."나는 이렇게 말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갔어요. 그러자 개도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면서 아까보다 더욱 사납게 짖는 거예요.
"아니, 도대체 개를 왜 풀어놓는 거야? 그리고 아깐 절에서 사람소리도 들리더니, 왜 나와 보지도 않는 거야!"
"아! 정말 미치겠다. 어떻게 해야 돼!"등에서는 식은땀이 나고, 앞으로 나가자니 죽으라고 짖어대고, 가만히 있자니 이 산속에서 우리를 구해줄(?) 이는 없고…. 그렇게 또 십 분 동안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어요.
"아니, 이 사람들은 우리가 개한테 당하는 걸 즐기는 거야 뭐야!"아무리 산 속이라도 사람이 다니는 길이 있고, 또 사람이 지나가고 있다면 개를 치우든지 묶든지 해야 합니다. 자기는 기르는 사람이니 개가 물 리가 없겠지요.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은 어디 그런가요. 커다란 개가 발 앞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짖고 있으면 어찌 겁이 안 나겠습니까?
더구나 여긴 절집이니 찾아오는 사람도 있을 터인데, 또 우리는 그 길로 다만, 지나갈 뿐인데 한낱 개 때문에 이렇게 애를 먹어야 하는지…. 이보다도 더 괘씸한 건 절집 안에 있으면서도 내다보지도 않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머리끝까지 화가 나고 짜증이 치솟아 오르는데 못 견디겠더군요.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앞세워 끌면서 개 앞을 지나갔어요.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더욱 사납게 짖어대는 소리를 듣고 보면서 뒷걸음으로 산에 올라갔어요. 제 앞을 지나가자마자 또다시 다가오는 녀석을 얼마만큼 거리를 두고 뒷걸음질을 쳐야 했어요. 산모퉁이 하나를 다 돌아갈 때까지 슬금슬금 다가오면서 짖는데, 참말로 두렵고 화가 나서 미치겠더군요. 뒤돌아서서 가면 와서 다리라도 냅다 물 것 같아서 정말 무서웠어요.
모퉁이를 돌아 나와서는 자전거를 타고 얼마나 빨리 내뺐는지 몰라요.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가까스로 마음을 놓았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한낱 짐승인 개한테 당한 걸 생각하니 더욱 화가 나고 개와 그 절집임자가 괘씸스럽기 짝이 없어요.
개 때문에 울고 웃고화난 마음을 풀고 어차피 나온 것, 즐겁게 타자고 둘이 서로 위로하면서 병수리 임도, 노행리 임도, 천주교묘지 길까지 모두 타고는 오후 늦게 구미에 닿았어요. 장천면 오로리 고개를 넘어 그동안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마을로 들어와 산 밑 외딴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할머니 한 분이 대문 밖에 나와서 무언가 일을 하고 있는데, 그 곁에 큰 개 한 마리가 보였어요. 우리는 둘 다 똑같이 놀라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뚝 멈춰 자전거에서 내렸어요. 아까 낮에 개한테 당했던 생각이 갑자기 스쳤던 게지요. 다행스럽게도 이 녀석은 몸집은 컸지만 목줄에 묶여 있었어요. 게다가 신기하게도 우리를 보고 짖기는커녕 꼬리까지 살랑살랑 흔들어요. 개가 매우 착하게 보였어요.
"어머나! 예뻐라. 어쩜 너는 짖지도 않고 이렇게 착하니?"
"아이구 고 녀석 참 순하게 생겼네!"
"어이구, 그놈 너무 순해서 탈이여, 낯선 사람 보면 짖어야 되는데 통 짖질 않어."개가 짖지 않는다고 나무라는 데도 할머니 말투에서 더할 수 없는 정겨움이 배어 나왔어요. 시골사람 순박한 정이 느껴졌답니다. 우리는 가방을 뒤져서 남은 초콜릿 바와 양갱을 모두 꺼내어 개한테 주었어요. 그걸 받아먹으면서도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꼬리를 살랑거리며 흔들어요. 할머니와 착한(?) 개한테 인사를 하고 돌아오면서 참 기분이 좋았어요.
"야, 정말 개도 임자를 닮는다더니, 할머니 말투 좀 봐라. 얼마나 살갑고 순박한지."
"그러게 말이야 개 임자가 저렇게 순하니까 개도 착한 게지."아! 정말로 돌겠다. 오늘 끝까지 개가 말썽이구먼.
어느덧 해질 무렵. 집까지 가려면 깜깜해야 닿을 듯해서 마음이 바빴어요. 오늘 하루 개와 마주치며 당한 일을 얘기하면서 부지런히 발판을 밟으며 좁은 냇둑을 따라오고 있을 때였어요. 대문도 없는 어느 집에서 느닷없이 또 개 한 마리가 뛰어나왔어요.
"아니, 오늘 무슨 날인가? 정말 돌겠다!"보아하니, 몸집은 크지만 아직은 새끼인 듯 보이는데, 이 녀석 그야말로 천방지축이에요. 우리 앞에서 가지도 않고 겅중겅중 날뛰는데 참말로 죽겠더군요.
엎친 데 겹쳤다고 저쪽 승마장에서 영화 <베토벤>에 나왔던 개와 똑같이 생긴 큰 개가 또 뛰어나오는데, 잠깐 동안 또 바짝 얼어붙고 말았답니다. 다행히 덩치 큰 놈은 개 임자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이내 돌아갔어요.
먼저 나왔던 녀석은 냇둑이 끝나 큰 찻길로 나올 때까지 겅중겅중 뛰면서 쫓아와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고 했던가요? 보기에는 순하게 생겼지만 끝까지 날뛰며 따라오니, 개 맘이 언제 바뀔지도 모르고 행여 덥석 물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바짝 졸았답니다.
오늘은 온종일 개 때문에 울고 웃다가 끝내 개 때문에 하루를 망쳤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자전거 타러 나섰다가 개한테 시달린 생각을 하면 지금도 화가 나요.
개 키우는 사람들, 제발 목줄 좀 묶어놓고 키우세요!
개도 임자를 닮는다고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