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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버려진 쓰레기들 해떨어진 늦은저녁, 나들이를 나왔다가 건널목에서 본 쓰레기더미.
버려진 쓰레기들해떨어진 늦은저녁, 나들이를 나왔다가 건널목에서 본 쓰레기더미. ⓒ 최종규

하루일을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기에 앞서, 사진기 하나 어깨에 걸고 골목길 밤마실을 나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 일과 도서관 일로 바쁘면, 해가 떨어진 뒤에야 비로소 나들이를 나올 수 있습니다.

밝은 햇볕을 받으며 길을 걸으면 더 좋지만, 나날이 밝은 햇볕보다는 먼지띠 뿌연 하늘밖에 볼 길이 없는 터라, 이래저래 아쉬움을 삼켜야 하는 날이 늘어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맑고 고운 하늘 한 번 즐기지도 못하며 살아야 할까요. 맑고 고운 하늘은 ‘관광지’에서만 즐겨야 할까요.

닫은 가게 늦은저녁이라서 문을 닫은 가게
닫은 가게늦은저녁이라서 문을 닫은 가게 ⓒ 최종규

늦은 저녁이라 저잣거리는 모두 문을 닫은 때. 하는 수 없이 동인천역 둘레에 있는 마트로 갑니다. 스물네 시간 동안 열어놓는 마트로.

늦은 저녁이나 새벽에는 고마운 마트입니다. 하지만 이런 마트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은 얼마나 고달플까요. 일하는 분은 밤잠까지 좇아가며 아픈 다리 두들기며 서 있어야 할 텐데. 또, 밤이나 새벽에 찾아드는 주정꾼들 어수선함은 얼마나 짜증 날는지.

중앙시장 1 중앙시장에 이어 걸린 천막
중앙시장 1중앙시장에 이어 걸린 천막 ⓒ 최종규


중앙시장 2 마주보는 가게마다 천막을 이어 놓아서 비오는 날에도 비를 안 맞고 걸어다닐 수 있습니다.
중앙시장 2마주보는 가게마다 천막을 이어 놓아서 비오는 날에도 비를 안 맞고 걸어다닐 수 있습니다. ⓒ 최종규

배다리 네거리 건널목을 건넙니다. 지하보도로 건너기 싫어서 조금 돌아가야 하는 건널목으로 갑니다. 동인천 둘레에는 건널목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쪽에는 지하상가가 많이 있어서 그리로 건너라는 뜻입니다. 제물포와 주안도 비슷합니다. 지하상가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도록 하자고 이렇게 건널목을 안 놓는지 모를 일입니다만, 걷기 힘든 어르신이나 장애인들은 어쩌라고 이렇게 해 놓는지.

건널목 한쪽에 잔뜩 쌓인 쓰레기더미를 봅니다. 누가 이렇게 잔뜩 버렸을까요? 누구보고 치우라고 이렇게 아무렇게나 내다 버릴까요? 쓰레기봉투를 사다가 담으면 그만일까요? 쓰레기봉투에 안 담았어도 그냥 길가에 내놓으면 누군가는 치워야 하니까 아랑곳하지 않아도 될까요?

비오는 날에는 옛 저잣거리는 비오는 날에도 길가에 길게 늘어뜨린 해가리개, 또는 천막 덕분에 비를 안 맞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비오는 날에는옛 저잣거리는 비오는 날에도 길가에 길게 늘어뜨린 해가리개, 또는 천막 덕분에 비를 안 맞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 최종규

늦은 저녁이면 더욱 환해지는 술집 불빛을 스치면서 마트에 닿습니다. 주섬주섬 몇 가지 먹을거리를 골라서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비닐봉지 필요하세요?” “아니요, 가방에 담으면 돼요.”

꽃그릇 밤이 되어도 들여놓지 않는 꽃그릇.
꽃그릇밤이 되어도 들여놓지 않는 꽃그릇. ⓒ 최종규

두 사람이 가방을 나누어 들고, 집 쪽으로 돌아갑니다. 이번에는 동인천역 뒤쪽 중앙시장 길로 돌아갑니다.

중앙시장도 모두들 문을 닫고 스산한 이즈음. 길이 참 조용합니다. 불빛도 거의 없습니다. 어두컴컴 고즈넉. 높은 구두 신은 아가씨나 아주머니가 지나가면 또각또각 발소리가 멀리까지 들립니다. 우리 뒤쪽으로 발소리가 크게 들려서 이 골목으로 빠져들고 저 골목으로 접어드는데 자꾸 따라옵니다. 이런. 어쩌다가 가는 길이 이리도 같을 수 있을까.

걸상 골목길을 걷노라면 걸상을 틈틈이 만납니다.
걸상골목길을 걷노라면 걸상을 틈틈이 만납니다. ⓒ 최종규

바로 집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조금 더 걷기로 합니다. 중앙시장을 빠져나와 길을 건너 금곡동으로 갑니다. 아침에도 조용하고 낮에도 조용하며 저녁과 밤에도 조용한 동네인 금곡동. 지난날, 인천 배다리가 넘실넘실 북적대던 그때 밤에 이 동네는 어떠했을까요. 그때도 조용했을까요? 그때도 사람이 이렇게 뜸했을까요?

서울 용산역에서 인천 동인천역까지 급행전철을 놓는다면서 적잖은 골목집이 뜯겨 사라졌습니다. 이런 탓도 있지만, 시에서는, 또 나라에서는 이 옛 도심지가 ‘낡았다’고, ‘오래되었다’고, 이제는 ‘가난한 사람만 남았다’고 해서 ‘깨끗하게 정비해야’ 한다고, 돈(세금) 많이 거두어들일 수 있도록 ‘아파트와 쇼핑센터’를 높직높직 올려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인천 종합건설본부장은 당신이 나라 밖으로 출장을 다녀온 이야기를 주민들한테 들려줍니다. ‘홍콩이… 싱가포르가… 네덜란드가…’

글쎄요, 한국은 한국이 아닐는지. 한국에서도 인천은 인천이 아닐는지. 인천에서도 금곡동은 금곡동이 아닐는지. 송림동은 옛 마을 이름 그대로 ‘소나무로 우거진 마을’, ‘솔숲’입니다. 송림동 옆 송현동은 옛 마을 이름 그대로 ‘소나무로 언덕을 이룬 마을’, ‘솔고개’입니다. 그 옆 율목동은 옛 마을 이름 그대로 ‘밤나무로 숲을 이룬 마을’, ‘밤골’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옛 백성들 마을에 나무를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소나무 없는 송림동과 송현동이고, 밤나무 없는 율목동입니다. 길이름을 ‘솔고개-솔숲-솔빛-밤골’ 따위로 바꾼다고 해 보아야, 솔빛과 밤냄새를 느낄 수 없는 껍데기 이름으로 무엇을 삼을 수 있을는지.

꽃나무 꽃그릇과 함께 어김없이 만나는 꽃나무.
꽃나무꽃그릇과 함께 어김없이 만나는 꽃나무. ⓒ 최종규

나라 밖 사례를 들면서, 배다리 골목집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는 꼭 있어야 합니다’ 하고 되뇌는 종합건설본부장한테, 동네 주민이 말합니다. ‘한쪽에 쇼핑센터 세우고 한쪽에 아파트 세우고 한쪽에 올드타운을 만들 생각이라면, 지금 있는 이 동네가 올드타운이니까 그대로 두시면 되지 않아요?’

집앞 텃밭 노는땅을 그대로 보아넘기지 않고 꽃밭이나 텃밭으로 일굽니다.
집앞 텃밭노는땅을 그대로 보아넘기지 않고 꽃밭이나 텃밭으로 일굽니다. ⓒ 최종규

돈으로 옛 골목길을 밀어붙이고, 돈으로 옛 살림집을 무너뜨리고, 돈으로 다시 시멘트와 콘크리트 따위를 끌어들여서 20층도 아닌 40층이나 50층짜리 높은 아파트를 세우고 싶어하는 개발계획은 누구 머리에서 나왔을까요. 이렇게 아파트를 올려세우면 땅값도 오르고 집값도 올라서 동네 주민들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까요?

지금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집이 없어서 걱정’일까요? 지금 우리나라에는 ‘집이 없는’ 게 아니라, ‘부동산 투기할 집’이 더 있어야 하니까 아파트를 꾸역꾸역 새로 짓고 있지 않나요? ‘돈 주고 내 집 삼을 집’은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모자라다면, ‘돈 적은 사람과 돈 없는 사람이 발 뻗고 쉴 전셋집’이 모자라다고 느낍니다.

자꾸자꾸 집값이 올라간다면, 돈 적거나 없는 사람은 어찌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돈을 많이많이 벌라는 이야기인데,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돈을 많이많이 벌 수 있나요? 우리들은 돈만 많이많이 벌면 좋은가요? 우리 삶은 그저 돈만 많이많이 버는 데에 다 바쳐야 하나요? 돈만 많이많이 벌어야 하는 우리 삶이라면, 초중고등학교 교육과 대학교 교육은 어디에 쓸모가 있나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터전, 한 사람으로 태어난 소중한 목숨을 고맙게 느끼면서 이 땅과 햇볕과 바람과 물을 담뿍 들이마시면서, 나 사는 보람과 재미와 즐거움을 신나게 누리며 흙으로 돌아갈 수 있는 터전으로, 이 동네를 고이 가꾸고 살려놓으면 안 되나요?

골목길 마음 골목집은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이기도 합니다.
골목길 마음골목집은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이기도 합니다. ⓒ 최종규

금곡동 안쪽에 조그맣게 꾸며 놓은 손바닥 쉼터 걸상에 앉습니다. 손바닥 쉼터에는 우람한 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배다리 둘레에는 오래된 나무가, 오래 산 나무가 드뭅니다. 그럴밖에 없어요. 지난 1952년, 그때 ‘인천상륙작전’을 한다면서 미국 군함들이 함포를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쏘아댔는데요. 그때 살아남은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때 집들 가운데 살아남은 집도 드물어요. 살아남은 집도 지붕이며 마당이며 온통 구멍투성이가 되었지요.

여든여섯 살 나이에도 그림 그리기를 놓지 않은 박정희 할머님이 그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때 비 오듯이 함포를 뻥뻥뻥 쏘아대는데, 그런데도 살아남았어. 죽지 않고 살아남았지. 두 번 살았다고, 한 번 죽고 두 번 살았다고. 그러는데 아버지가 말해. 저기 자유공원에 올라가 보자고. 거기에 구멍이 얼마나 많이 났나 구경하러 가 보자고.’

사람도 집도 살아남기 어렵던 그때, 동네를 지키고 있던 소나무며 밤나무며 남김없이 불타고 쓰러지고 줄기가 꺾였겠지요.

골목집 텃밭 생태와 환경을 가꾸는 도시농사 '모델'을 꼭 나라밖으로 나가서 찾아야 할까요? 우리 나라에도 구석구석에 많은데.
골목집 텃밭생태와 환경을 가꾸는 도시농사 '모델'을 꼭 나라밖으로 나가서 찾아야 할까요? 우리 나라에도 구석구석에 많은데. ⓒ 최종규


생각에서 깨어나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다시 동네를 걷습니다. 금곡동 이곳, 배다리 이곳, 어느 골목을 걷든 꽃 그릇을 보고 텃밭을 만납니다. 비어 있는 땅 하나를 지나치지 않는 동네 사람들 손길을 느끼고, 버려진 물건 하나 내버려 두지 않는 동네 사람들 마음 길을 느낍니다. 흙을 담고 씨앗을 심을 수 있으면 무엇이든지 꽃 그릇이 됩니다. 꽃 그릇을 놓을 자리만 있으면, 해가 조금이라도 드는 자리만 된다면, 어김없이 꽃 그릇을 차곡차곡 가지런히 모아 놓습니다.

조금 넉넉한 자리가 열려 있다면,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 두고두고 흙을 옮겨 와서 텃밭을 일굽니다. 꽃밭으로 가꾸기도 합니다. 지나가는 길손한테 나누어 주기도 하고, 이웃사람끼리 나누어 먹기도 합니다.

도시농사가 대수인가요. 많이많이 지어야만 농사가 아닙니다. 돈 되는 푸성귀를 길러야만 농사가 아닙니다. 깻잎 하나 얻으려고 심는 씨앗 하나가, 고추 한 알 얻으려고 심는 모종 하나가, 박 하나 얻으려고 가꾸는 풀 포기 하나가 바로 농사입니다.

옛 연통 이제는 쓰임새가 사라져 버린 옛 연통, 또는 굴뚝.
옛 연통이제는 쓰임새가 사라져 버린 옛 연통, 또는 굴뚝. ⓒ 최종규


‘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말하고, ‘생태도시 아바나’를 말하는 우리 지식인들입니다. 그래요. 나라 밖에 나가 보니, 그런 멋지고 훌륭한 ‘도시 문화 공동체’가 눈에 확확 들어오겠지요.

그러면, 우리 지식인들 눈에는, 한국땅 곳곳에 스며 있는 조그마한 살림모둠, 공동체는 뜨이지 않는가요. 버려진 플라스틱 바가지에, 김치 상자에, 스티로폼에, 찢어진 다라이에 흙을 퍼 담아서 씨앗을 하나하나 심어 고이고이 가꾸는 이런 도시 농사는, 이런 도시 농사를 기꺼이 서로서로 나누어 즐기는 문화는, ‘에이, 지저분해!’ ‘에이, 더러워!’ ‘에이, 그게 뭐냐?’ ‘에이, 보기 싫어!’ ‘에이, 구닥다리야!’ ‘에이, 보잘것없잖아?’일 뿐인가요?

겨울 나기 겨우나기 준비를 마친 꽃그릇.
겨울 나기겨우나기 준비를 마친 꽃그릇. ⓒ 최종규

우리들은 우리 말과 글을 대단히 업신여깁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자면 꼭 알아야 하고 써야 하는 우리 말과 글입니다만, 지식인이고 안 지식인이고 우리 말과 글을 소중히 붙안으며 가꾸고 있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있을까요? 발가락까지 꼽을 만큼 될까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우리 말과 글은 지식쪼가리 틀을 벗어나지도 못하지만, 재미없고 딱딱한 문법일 뿐입니다. 영어를 가르치고 한문을 가르치듯 재미나게 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글짓기(글쓰기) 교재로, 논술 시험 준비로 가르칠 뿐입니다. 알맹이는 없이 빈 껍데기만 들씌웁니다.

우리 스스로 말과 글을 깔보고 있으니, 이중언어도 삼중언어도 아닌 영어와 한문을 아이들한테 지식보따리로 덥석 안깁니다. 그런 지식보따리는 뒷날 자기가 써야 할 때 익혀도 넉넉한데, 이 나라 아이들한테 ‘신나게 뛰어놀 흙마당’이나 ‘풋풋한 마음을 채울 착한 이야기와 이웃 삶’을 선사하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교과서 지식, 책읽기 독후감, 논술 대비, 생활영어, 고사성어 판입니다.

계단 골목길에 있는 작은 집으로 이어지는 계단.
계단골목길에 있는 작은 집으로 이어지는 계단. ⓒ 최종규

고추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고추가 나무에서 열리는지 풀 포기에서 맺히는지 모르는 아이들입니다. 고추에도 꽃이 피는지, 무에서도 꽃이 달리는지, 딸기에도 꽃이 영그는지 모르는 아이들입니다.

배꽃을, 능금꽃을, 살구꽃을, 감꽃을, 오이꽃을, 가지꽃을, 고구마꽃을, 감자꽃을, 시금치꽃을, 도라지꽃을, 수박꽃을, 나팔꽃을 왜 아이들이 느끼도록 못하고 있을까요. 콩꽃을, 보리꽃을, 벼꽃을, 수수꽃을 아이들이 손수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어떻게 왜 문제가 되는지 깨달을 수 있을까요? 농사꾼 삶이 왜 팍팍해질밖에 없는지, 농사꾼 살리고 노동자 살리는 정책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찾아낼 수 있을까요?

법전을 외고 물리학을 깨우친들, 이런 지식이 어디에 쓸모가 되고 어디에서 도움이 될까요. 인문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지리학 교육학 예술학 따위를 누구보다도 잘 꿰뚫고 있다 한들, 이 나라 골목집 사람들 보금자리 문화 하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거나 껴안을 수 있는가요?

계단 골목길 계단
계단골목길 계단 ⓒ 최종규

터덜터덜 골목길을 걷습니다. 사람 참 없는 골목길을 걷습니다. 제 어릴 적, 그러니까 거의 스무 해 앞선 어릴 적, 어두운 골목길을 걸을 때면 꽤 무서웠습니다. 동네 깡패나 건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나이 든 형들이 주먹질을 하고 돈을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허튼수작 거는 양아치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데 골목을 지켜보았자, 돈 나올 사람 하나, 개미새끼 하나 안 지나가고 늙은 쭈그렁뱅이들만 있는 줄 진작 느꼈기 때문에, 부평이고 주안이고 계산동이고 부천이고로 나갔겠지요.

젊은 사람들은 자꾸만 떠나려고 하는 동네. 아니, 젊은이를 키워낸 어버이 스스로 떠나려고 하는 동네. 식구들이, 동무들이, 오순도순 복닥이며 치고박고 뒤섞이면서도 웃고 울고 떠들며 살아가는 동네가 아닌, 조금 더 많은 돈을 벌어서 조금 더 많은 물질문명과 기계문명을 누리고 싶어하는 곳으로 떠나느라 비어 가는 동네. 우리는 한 달에 얼마를 벌어야 행복한가요?

집으로 돌아가는길 골목길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집으로 돌아가는길골목길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 최종규

우리는 얼마나 먼 길을 나서고 있기에 집집마다 자가용을 몰아야 할까요. 두 다리로 걸어다니기에는 너무 힘든가요? 자전거로 오가기에는 번거로운가요? 몸에 땀이 맺히는 일이 싫은가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가 귀찮은가요?

차를 굴리자면, 그만큼 돈을 더 벌어야 하고, 자원을 더 써야 하며, 우리 삶터는 도시이건 시골이건 더 망가질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버는 만큼 더 쓰고 있으니, 지구 삶터는 나날이 병들어가고 공기는 나빠집니다. 공기가 나빠지니 우리 먹을거리도 더러워지고 마실 물도 지저분해지겠지요. 정수기를 집마다 놓는들 물이 깨끗해질까요? 공기정화기를 방마다 들인들 공기가 깨끗해질까요?

문제 밑뿌리를 캐야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일이 참으로 행복인지, 즐거움인지, 멋인지, 아름다움인지, 껍데기인지, 빈털터리인지 느껴야 하는데.

두 빛 하늘에 걸린 달빛과, 예배당 달빛
두 빛하늘에 걸린 달빛과, 예배당 달빛 ⓒ 최종규

혼자서 주절주절 떠들다가, 듣는 사람 없는 골목길에서 주절주절 떠들다가, 이제 다리가 아파 집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잠깐 기지개를 켜면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아, 저 하늘, 저 먼 하늘에 비치는 달빛보다 예배당 십자가 불빛이 훨씬 밝네. 그러네.

덧붙이는 글 |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응모글

지금 인천시는, 중ㆍ동구 둘레를 놓고, 또 남구를 비롯한 오래된 동네를 놓고 ‘도심정화사업’을 벌여 골목집과 재래시장을 몰아내고, 동구 배다리 둘레는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골목집이 몰려 있는 동네 한복판에 놓으려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대단한 이름이나 많은 돈벌이나 큰 힘 하나 없이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동네가 이곳 인천 중ㆍ동구, 또 남구입니다. 경제개발과 경제성장하고는 조금도 안 어울릴 수 있겠지만, 온 삶을 바쳐 땀흘려 일하고 조그마한 몸뚱아리 드러누울 작은 집 한 칸이나 방 한 칸 마련하여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도 ‘내 집에서, 내 땅에서, 조용하면서도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다가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님 정책을 한 번도 거스르지 않고 허리 구부정할 때까지 살아온 사람들 숨결을 사랑합니다. - 배다리 골목길 이야기를 띄우면서.



#골목길#인천#배다리#금곡동#가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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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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