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집 앞 키 작은 은행나무가 연노랑 빛으로 물들기 시작할 즈음 주체할 수 없는 쓸쓸함으로 마음이 시리기 시작했다. 콩밭에 홀로 앉아 가을걷이에 여념 없는 이웃집 할머니의 호호백발, 속절없는 세월 탓인 듯 지나는 바람 한줄기에도 맥없이 떨어져 내리는 낙엽들, 노을이 세상을 홍시 빛으로 물들일 때면 그 낙엽들을 긁어모아 불을 놓는 아버지의 무심한 두 눈빛, 길을 덮은 노란 은행잎 사이를 들추며 은행을 찾느라 여념이 없는 허리 굽은 할아버지의 야윈 어깨, 황금 옷을 벗어버린 을씨년스러운 가을 들녘을 훑으며 떨어진 나락이삭을 보물 줍듯 주워 모으는 시골아낙의 갈퀴 같은 손. 그 모든 것에 마음이 시렸다. 그저 계절 탓이려니 했다. 그러나 그 쓸쓸함이 외로움의 수위를 점점 깊게 만들면서 대책 없이 허무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에 삶의 의욕마저 잃어가는 듯했다. 어디 그뿐인가. 만사 귀찮았다. '노느니 염불한다'고 노느니 책이라도 들고 놀자는 게 내 생활철학이건만 외면당한 책들이 뽀얗게 먼지를 이고 있었다. 방바닥에 나뒹구는 머리카락 한 올도 당최 용납이 안 되는 병적인 예민함은 하루 온종일 구들장 신세를 지는 나를 코웃음 치며 비웃었다. 매끼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기름이 자르르한 쌀밥만큼 맛있는 게 없다는 남편에게 "만날 밥만 먹고 사느냐. 외식도 좀하고 살자"며 퉁퉁 부은 얼굴로 강짜를 부렸다. 그저 슬프고, 그저 귀찮고, 그저 짜증나고, 매사 심드렁하고… 분명 예삿일은 아니었다. 예삿일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혹시 중년의 우울증? 스스로의 진단이 병을 만든다고 했던가. 어느덧 나는 우울증 환자, 그것도 중증 환자라도 된 듯 무기력해질 대로 무기력해져 순식간에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듯했다. "여보. 나 우울증인가 봐.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해. 본인이 진단을 내렸으니까 처방도 본인이 더 잘 알겠네." "저번에 TV보니까 우울증에는 가족들의 도움이 제일 필요하다던데…." "그래? 그럼 내가 뭘 도와주면 되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내가 우울증이라는데 어찌 그리 무심할 수 있을까 싶었다. 아니다. 부창부수(夫唱婦隨)가 맞는 말이다. 우울증이라고 하소연하는 나나 그 하소연에 그리 싱겁게 대꾸하는 남편이나 오십보 백보 아니겠는가. 기가 막혀 남편 얼굴만 멀거니 바라보는 내게 남편이 한마디 툭 던졌다. "갓바위 부처님 보러 갈 때가 됐나 보군." 이런 걸 보고 이심전심이라고 하는가 보다. 남편과 결혼해 살면서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이다. 내 고요한 일상에 불청객(?)이 찾아들면 난 열일 제치고 팔공산으로 내달렸다. 참 신통하게도 그렇게 다녀오면 내 일상에 드리워졌던 짙은 안개가 거짓말처럼 걷히곤 했다. 그리고 안개 걷힌 자리로 금빛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실타래가 요술처럼 한번에 술술 풀리듯 해묵은 걱정거리가 거짓말처럼 해소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과 결혼한 것이, 사경을 헤매시던 아버지가 기적처럼 살아나신 것이, 18년을 헤어져 살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시 부부란 이름으로 해후를 하신 것이, 백수 아닌 백수가 되어 지난 한 해 그리도 힘들어하던 남편에게 올해는 그래도 담상담상 일거리가 생긴 것이 다 팔공산에 다녀온 후였다. 되짚어 생각해 보면 굽이굽이 쉬이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인생 고개도 어느 순간 퍼뜩 정신차려 보면 이미 넘어서고 있었다. 합천 해인사를 들러 팔공산을 갈 요량으로 지난 토요일(11일) 길을 나섰다. "호강은 못 시켜줘도 마음고생은 시키지 않을게." 어느 늦가을 해인사를 다녀오며 남편은 싱거워도 너무 싱겁게 그렇게 프로포즈를 했다. 그 흔한 장미꽃 한 송이 없이 말이다. 그런데 프로포즈를 받던 순간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은 그야말로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노란 물감을 뒤집어 쓴 채 길가에 길게 늘어선 은행나무, 그리고 그 나무에서 떨어진 은행잎들이 온통 도로를 뒤덮은 덕분에 온 시골동네가 노란비단을 휘감은 듯 참 아름다웠다. 그 근사함에 싱겁기 짝이 없는 남편의 프로포즈도 덩달아 황홀했다.
다시 찾은 해인사 입구 작은 시골마을은 여전히 황홀한 가을을 맞고 있었다. 길가에 늘어선 아름드리 은행나무는 쉴 새 없이 잎들을 떨어뜨리고 있었고 떨어진 잎들이 길 위로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다. 차를 한쪽에 세워두고 은행잎이 만들어 놓은 푹신한 비단길을 남편과 함께 걸었다. 기실, 말은 필요 없었다. 이따금씩 바라보자니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 눈동자가 깊었다. 그새 우린, 눈빛으로도 하고 싶은 모든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서로 그렇게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12일). 갓바위 부처님이 계신 팔공산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등으로 굵은 땀방울이 쉼 없이 흘러내릴 때쯤 정상에 다다랐다. 다다른 순간 눈앞으로 펼쳐진 광경에 입이 쫙 벌어졌다.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불공드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뤄 앞으로든 뒤로든 한발짝 옮기기가 버거울 지경이었다.
백팔배를 올려야 하는데 내 작은 몸뚱이 하나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기다려야 했다. 10분, 30분. 마침내 자리가 나 백팔배를 시작했다. 한 알 한 알 염주알을 굴리며 정성스럽게 절을 올렸다. 부모님과 남편과 아이의 건강을 빌었다. 백팔배가 끝났을 때 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소용돌이를 만들던 거대한 회오리가 살갗을 간질이는 기분 좋은 미풍으로 잦아들고 있었다.
내 우울증의 실체는 중년을 지나는 거대한 회오리였다. 마흔 넷, 중년이다. 중년은 뭔가를 시작하기보단 뭔가를 정리해야 할 때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보단 영원히 가지 못할 길이란 체념이 필요할 때다. 즉, 중년은 살아온 지난날의 삶을 정리하고 반성해야 할 인생의 한 정점인 것이다.
그런데 내 지난 세월은 그저 아등바등 살아온 나날들뿐이다. 덧없이 보낸 세월 속에 나이만 먹었지 뭐 하나 번듯하니 이루어 놓은 게 없다. 속빈 강정 같은 내 지난 삶이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그 회한의 격한 소용돌이가 슬픔의, 귀찮음의. 무기력함의 회오리를 일으킨 것이다.
인생을 사계절에 견주어 보자면 중년은 가을쯤일 것이다. 가을, 스산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단풍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단풍은 봄과 여름내 만든 양분을 나무에게 다 내어주고 스스로 고운 색으로 단장한다. 그리고 낙엽이 되어 땅에 떨어져 거름이 된다. 참 아름다운 희생이다.
중년, 이루어 놓은 게 없다고 쓸쓸해 하지 말자. 아등바등 살아온 내 삶에 최선이란 수식어 하나쯤 붙인들 뭐 그다지 부끄럽겠는가. 나이만 먹었다고 자책하지 말자. 대신 삶의 연륜을 쌓았다고 자화자찬한들 뭐 그다지 부끄럽겠는가. 다만 살아온 지난날이 앞으로 살아갈 새털같이 많은 세월을 위해 기름진 자양분이 되어주기를 빌 뿐이다. 그리하여 내 인생의 중년도 고운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들길 바랄 뿐이다.
팔공산을 내려오는 길. 늦은 오후임에도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줄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올라갈 때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 탓인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내려오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게 된다. 단 한마디의 말도 않고 그저 온화한 미소만 띤 채 앉아 계시는 갓바위부처님. 그러나 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그래서 내 마음의 불청객이 찾아들면 만사 제치고 팔공산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팔공산의 가을은 그 어느 때보다 애틋했다. 왜? 내 인생의 참다운 가을이 거기 있었기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중년의 많은 색깔들'이란 글이 내내 가슴에 젖어든다. 얼마 전 심한 가을앓이를 치르고 있는 내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며 지인이 보낸 글이다. 한 구절 한 구절 너무 절실해 우울할 때마다 들춰 보다 보니 어느새 외워버렸다. 중년의 많은 색깔들… 나의 중년은 과연 무슨 색일까? 앞섬보다 한발 뒤에서 챙겨가는 아름다운 중년이고 싶다. 중년의 많은 색깔들 중년은 많은 색깔을 갖고 있는 나이이다. 하얀 눈이 내리는 가운데서도 분홍 추억이 생각나고 초록이 싱그러운 계절에도 회색의 고독을 그릴 수 있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본다. 중년은 많은 눈물을 가지고 있는 나이이다. 어느 가슴 아픈 사연이라도 모두 내 사연이 되어버리고 훈훈한 정이 오가는 감동 어린 현장엔 함께하는 착각을 하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로만 우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운다. 중년은 새로운 꿈들을 꾸고 사는 나이이다. 나 자신의 소중했던 꿈들은 뿌연 안개처럼 사라져가고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꿈들로 가득해진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로 꿈을 꾸고 가슴으로 잊어가며 산다. 중년은 여자는 남자가 되고 남자는 여자가 되는 나이이다. 마주보며 살아온 사이 상대방의 성격은 내 성격이 되었고 서로 자리를 비우면 불편하고 불안한 또 다른 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론 흘기면서도 가슴으로 이해하며 산다. 중년은 진정한 사랑을 가꾸어갈 줄 안다. 중년은 아름답게 포기를 할 줄도 안다. 중년은 자기주위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 그래서 중년은 앞섬보다 한발 뒤에서 챙겨가는 그런 아름다운 나이이다. '初心으로 돌아가 살아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