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그늘의 계절>겉표지
<그늘의 계절>겉표지 ⓒ 랜덤하우스코리아

표제작 ‘그늘의 계절’의 주인공 후타와타리는 인사와 관련된 일을 한다. 인사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누군가를 승진시키고 누군가를 쫓아내야 한다. 혹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두고 권력을 갖고 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중에는 관례상으로 자리를 줘야 하는 일도 있다. 경찰 간부로 있던 사람이 현역에서 퇴임하면 적당한 자리를 하나 주는 것이다. 그러자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밀어내야 한다. 후타와타리는 그 일을 별 일 아닌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나가줘야 할 사람이 못 나가겠다고 하면 어떨까?

 

그냥 쫓아낼 수도 없다. 간부로 있던 만큼 조직의 많은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둘 수도 없다. 그러자면 새로 오는 사람에게 자리를 줄 수도 없고 그에 따라 체면도 안 선다. ‘대우’도 안 해준다는 소문은 반가운 것이 아니다. 어찌해야 하는가? 방법은 없다. 후타와타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문제의 주인공을 찾아가 사정하기로 한다. 직장인의 난감한 비애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것으로 따지면 ‘땅의 소리’의 신도도 만만치 않다. 그는 간부를 고발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동시에 고발당한 간부에게 문제가 없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그렇게 조사를 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 누군가의 비리를 보고해야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문제를 뒤집어써야 하는 딜레마가 나타난 것이다. 신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직장인의 마음도 씁쓸하기는 매한가지다.

 

어째서일까? <루팡의 소식>과 <사라진 이틀> <종신검시관> 등으로 추리소설치고는 이례적으로 훈훈함을 만들어주던 요코야마 히데오가 뒷모습이 씁쓸한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그늘의 계절>에 담긴 소설은 모두 4개인데 그 소설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직장이라는 조직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직장 상사 때문에 신념을 저버리고 ‘조작’을 해야 하는 일도 있다. ‘가방’같은 소설에서는 상사를 위해 봉사했다가 약점을 잡히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생긴다. 조직을 냉혹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답게 훈훈함을 주는 요소가 없지는 않다. 냉기가 흐르는 가운데서도 온기가 품어지는 뭔가를 던져준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작다. 고작해야 손난로 정도의 크기다. 더군다나 그것은 지나치게 극적으로 등장한다. 조직에서의 갈등과 같은 것은 현실적으로 그리는데 반해 희망이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따뜻함은 금세 사라지고 쓰린 웃음만이 남고 만다. 오히려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을 던져주고 싶을 정도다. 왜 이런 것일까?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답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어째서일까?

 

어쩌면 요코야마 히데오는 지금과는 다르게,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 모른다. 소설로써의 희망보다는 현실 속의 그들과 많이 닮은 사람들을 등장시켜 현실의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줘 희망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인지 모른다. 정면 돌파다. 거울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거울을 보여줘 상태가 이러니 뭔가 조치를 취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억지스러운 추측일까? 요코야마 히데오의 의도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내용을 보건데, 특히 <그늘의 계절>의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한 사람이라도 된다, 친구를 만들어라”라는 말의 여운을 생각해 보건데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다루는 방식은 가볍지만 그 안에 담겨진 의미는 묵직하다.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진지하고 씁쓸해 보이지만 가슴 속에 뭔가를 피워주는 <그늘의 계절>, 직장인들의 마음을 독특한 방식으로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그늘의 계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2007)


#일본소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