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회에 이어) 옷에 실수를 하고서도 그 말이고 밖에서 일하고 들어 온 얼음장 같은 내 손을 만지면서도 그 말이었다. 그 말은 점점 악화일로를 걸었는데 급기야는 나를 끔찍한 공포로 몰아넣었다. “나 같은 거는 사람도 아잉기 농띠처럼 죽지도 않고 니 짐떵어리다. 니 짐떵어리.” “너 없을 때 내가 그만 칵 죽어삐리야 이도 저도 안보고 쏙 편하제.” “나 땜시 니가 딴 살림 함스로 두벌고생 하는 거 내가 눈을 감아야 안 보지.”
자식이 집에서 부모 모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시간이 남아 돌 때 하는 것도 아니요, 할 일이 없을 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씀 드려도 통하지가 않았다. 물론 어머니가 정신을 놓고 지내다가고 문득문득 본정신일 때 자식보기 미안하고 똥오줌 범벅인 이부자리가 창피해서 하는 면피용 발언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저런 극단적인 말씀을 하시는 순간의 심정은 어머님 건강에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어무이. 어무이가 나 어릴 때 기저귀 갈아 채우고 똥 걸레 다 빨아 주고 했잖아요. 그것도 몇 년 동안을 그랬잖아요. 제가 이제 그거 어머니한테 갚아 드리는 거에요. 저는 괜찮아요” “애 키울 때는 다 그라지. 앙 그라는 사람 누가 있노.” “마찬가지죠 어머니. 자기 어머니가 나이 잡숫고 몸 아프면 자식이 다 그라능기라요. 오줌 누믄 옷 갈아 입히고 똥 묻으믄 빨아드리고요.” “요새 세상에 그라는 사람이 오대있노. 지 밥 묵끼도 바쁜데.” “아이 차암. 옷에 똥오줌 누시는 사람보다 그거 빨 수 있는 사람이 몇 배 행복한 거예요. 저 아무리 고생한닥캐도 어머니 하고 안 바꿔요. 절대.” 내가 어머니에게 해 드리는 것은 어머니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라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도 설득이 되지 않았다. 그때 떠 오른 것이 있었다. 내 말보다 책이 훨씬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자식 얘기가 아무리 옳다고 해도 자식은 언제나 자식이다. 불면 날아가고 쥐면 깨질 것 같은 자식은 나이가 환갑이 되어도 여전히 자식인 것이다. 인터넷 서점을 뒤졌다. 부모님 은혜와 효에 대한 책들을 샀다. <부모은중경>이라는 불교 경전과 <효경>이라는 중국 고전이었다. <부모은중경>은 여러 권이 있었는데 그림을 곁들여 재미있게 만들어진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라는 사계절출판사 책을 샀다. <효경>도 내용이 제일 풍부한 홍문관 책을 샀다. 인터넷에서 한자로 된 원문과 해설서들을 같이 읽었다. <부모은중경>의 한문으로 된 원문을 노트에 옮겨 적는 사경작업을 하면서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 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를 가져서 열 달 동안 겪는 어머니의 고통이 절절하게 담겨 있었다. 한자어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표현들이 되풀이 해 읽을수록 새겨지는 바가 달랐다. ‘어버이 살아생전에 그 큰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아 보고 싶어서 굶주리는 어버이에게 제 살을 도려내서 백 천 번을 드린들 다 갚을 수 없네’라는 구절이 있었다. 부처님은 대중들에게 설법 하기를 “자기의 두 눈을 칼로 도려내서 눈머신 어버이에게 드리기를 백 천 겁을 해도 어버이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하셨다고 나와 있었다. ‘양 어깨에 한쪽은 아버지를, 또 한 쪽은 어머니를 지고 수미산을 백천 번을 오르내리며 구경을 시켜 드리느라 살이 다 닳고 뼈가 드러나도 어버이 은혜를 갚을 수 없다’고 했다.(30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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