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부활절 때 교회에서 계란을 나눠 줬다. 부활을 상징하는 계란이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찐 계란을 나눠 준 것은 아니었다. 계란 속에는 예쁜 작두콩 씨앗이 들어 있었다. 이른바 봄철에 싹을 틔우고, 여름과 가을철을 잘 견디면 튼실한 열매로 거듭난다는 교훈을 안겨주는 셈이었다. 교우들은 의심 반 기대 반으로 각 가정당 하나씩을 받아들었다. 물론 한 가정에 두 개씩을 받아 든 집도 있었다. 교회학교 아이들이 있는 집이 그랬다. 그래서 서로들 그 계란 속에 든 씨앗을 바라보며 나름대로 정성껏 물을 주었다. 물론 퇴비도 준 가정도 있었고, 깻잎을 덮어 준 가정도 있었다. 그 모두가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일이었다. 그렇게 많은 가정들이 그 계란을 받아 갔지만 튼실한 열매를 맺은 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겨우 몇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 가운데 가장 풍성하게 열매를 맺은 한 곳을 찾았다. 한 줄기에 족히 30개나 되는 열매가 맺혀 있는 집이었다. 강동구 암사동 양지마을에 사는 우리 교회 권사님 한 분이 그 주인공이었다.
“권사님. 대문이 열려 있네요?” “그냥 열어 놓고 살아요.” “그러다가 다 따 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그렇잖아도, 누가 와서 몇 개 따 갔더라구요.” “속상하셨겠네요.” “아니에요. 신기하기도 하고 또 심으려고 그랬겠지요?” “그래서 그냥 놔두시는 거예요?” “그럼요. 다들 나눌 수 있어 좋잖아요.” “권사님 마음이 참 아름답네요.” 정말로 마음씨 고운 권사님이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작두콩들이 하나 둘 없어져도 오히려 좋아하시는 분은 처음 본 것 같다. 이 분은 본래 비닐하우스로 온갖 작물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 작두콩도 다른 집들보다 더 풍성하게 가꿨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물만 그렇게 정성스레 가꾸는 분은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을 비롯하여 집안 식구들까지도 온 정성을 다해 사랑으로 품는 분이었다. 사실 권사님에게는 아들 셋에 딸 하나가 있다. 물론 아들들은 자신의 몸으로 낳았지만 딸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본래 그 딸은 14살 전까지는 친부모 아래서 살았다. 하지만 갑작스런 부모의 사망과 함께 어린 그녀는 충격에 빠졌다. 그 무렵 권사님이 그녀를 자신의 수양딸로 삼아 아들들 못지 않게 온갖 사랑을 다해 돌보았다. 그리고 20살이 되자 그 딸을 독립시켰고, 시집 갈 무렵엔 그 권사님이 친어머니가 되어 주셨다. 혼인식 때 장성한 그녀가 권사님 앞에서 주르륵 눈물을 흘렸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그녀가 낳은 아들이 백일이 되었다니, 그 권사님을 향해 얼마나 고맙고 감사히 여기겠는가. 그 까닭인지 그녀는 다른 아들들보다 지극정성으로 권사님을 찾아 뵙는다고 한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일이 많이 있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일도 없을 듯 하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 권사님께서 운영하시는 비닐하우스 속에 자라는 온갖 작물들은 해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단다. 그러니 그 계란 속에 든 씨앗이 추수감사주일인 오늘 완연한 작두콩으로 부활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지 않나 싶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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