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댐 수몰지구민들이 이주해 사는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지촌리. 춘천에서 화천 가는 5번 국도 길목 사북면 거점소재지다. 북한강과 춘천호의 경관과 서정을 좇다보면 무심코 스쳐지나가기 쉽다. 마을이 아니라 무채색 산등성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초록빛 ‘행복마을 공동체’가 마을 안에 한창 꿈틀거리고 있다.
“춘천시내에서 이곳으로 부임하면서 교회와 마을 사람들간에 가로놓인 벽부터 우선 허물자고 마음 먹었어요. 부활주일을 맞아 돼지를 잡고 막걸리도 받아놓고 동네잔치를 벌였지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자기들끼리만 노는 것으로 알았다'던 마을 주민들이 참 좋아했어요. 마음을 열어준 거지요. 내친 김에 인근 지역의 16개 마을을 차례차례 돌며 노인잔치를 벌였어요.”
이제 지촌리 마을의 무게중심으로 자리잡은 듯한 사북감리교회 한주희 목사. 내미는 명함에는 목사 보다 농부라는 직함이 앞서 새겨져있다. 실제로 스스로 한울빛농장을 꾸려간다. 나아가 사북생명농업생산자모임까지 이끄는 마을 대표농사꾼이 되었다. 아예 아이 둘은 홍성의 풀무학교 등 농업학교에 보냈고, 내친 김에 춘천지역 친환경농업포럼까지 맡아 동분서주한다.
목사와 농부를 넘어 지역일꾼으로 “2000년부터 마을의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학생들과 고구마, 잡곡 등 유기농사를 짓고 있어요. 2004년에는 그래서 모은 돈으로 한 달 가까이 23명의 학생, 청년들이 사물놀이를 앞세워 유럽을 한바퀴 돌아봤고요. 아무리 시골 농사꾼이라고 해도 더 이상 우물안 개구리로 살아서는 안 되잖아요. 어엿한 세계인으로, 지구인으로 자연과 사람들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야죠.”
목사로서 교회 안에 갇히지 않고, 그렇다고 농부로 논밭에서만 지내면 안 되겠다는 게 지역일꾼으로 나선 한 목사의 생각이다. 마을과 지역을 사람이 살아갈 만한 곳으로 만들고 나아가 세계와 미래까지 엮어보겠다는 게 한 목사가 그리는 ‘21세기형 행복한 마을공동체’의 큰 밑그림이다.
지촌리가 놓인 사북면은 전 지역이 험한 산지를 이루는 전형적인 내륙오지다. 중앙부를 흐르는 북한강이 면을 동서로 양분하고 있다. 지촌리는 신포리와 더불어 면소재지에 해당한다. 마을 앞에 북한강이 흘러들어 인공호수 춘천호를 이루고 춘천댐이 완공되면서, 수몰된 논과 밭을 남겨두고 주민들은 척박한 산등성이로 삶의 터를 옮겼다.
게다가 6개의 부대가 주둔한 준군사지역으로 농협, 초․중학교, 파출소, 보건소, 우체국 등 관공서나 공공시설물이 마을의 정체성을 주로 구성한다. 사북면 전체인구라야 이제 2600명 남짓하고 그중 지촌리에는 소농 내지 영세농 450여명이 살아간다. 3개 행정리로 이루어진 지촌리에는 100호의 농가가 논 75ha, 밭 70ha 등 총 145ha의 농경지를 일구고 있다.
“마을에는 주로 논이 많지만 점차 인삼 등 특용작물 또는 약용작물 재배가 늘고 있어요. 오이, 토마토, 호박 같은 원예작물도 많고요. 옥수수, 고추, 콩, 양봉, 축산, 버섯재배도 중요한 소득원이죠. 춘천호가 있으니 낚시터를 운영하거나 어부로 물고기를 잡고 매운탕을 끓여 팔아 먹고사는 주민들도 있어요.”
이런 마을에 한목사는 2003년 겨울, ‘사북생명농업생산자모임’을 결성했다. 현재 14농가가 참여, 생산한 농산물은 춘천생협 등에 직거래 위주로 유통하고 있다.
문제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찾고 “춘천댐 건설과 인공호수인 춘천호가 만들어지면서 농사 규모가 줄었습니다. 이농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로 경제활동도 지속적으로 위축되고 있고요.”
우리나라 여느 농촌마을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지촌리도 온통 안고 있다는 한 목사는 걱정이 많다. 무엇보다 춘천호와 군부대 주둔지라는 특별한 환경에서 ‘마을 주민들이 먹고살 수 있도록’ 지역특성에 맞는 적절한 소득 방안을 찾는 게 숙제라고 한다.
“독거노인과 단독세대가 늘고 젊은 층이 도시로 떠나 초·중학교 학생수가 날로 줄고 있어요. 수몰로 산지하천에 취락이 형성되고 마을 한복판을 5번 국도가 가르며 지나가고 있어
전형적 농촌마을이라기보다 차라리 춘천과 화천을 잇는 길목에 가까워요. 체험하고 싶거나 머무르고 싶은 의미와 감흥을 주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치곤 하는 무색무취한 마을 이미
지가강해요.”
무엇보다 작은 지역이 행정적으로 5개리로 세분화, 마을공동체성과 정체성의 분화를 초래
한 게 큰 원인이라는 한 목사의 진단이다. 더욱이 토착민보다 외지에서 유입된 주민이 65%를 넘으면서 마을발전과 변화 모색에 대한 내발적인 열의와 관심도도 매우 낮다는 것이다.
“우선 지역주민의 공동체성 함양과 마을을 위해 헌신하는 지도력을 개발해야 합니다. 미래세대에게 체험활동과 교육을 통해 위축되고 왜소화되어가는 농촌과 농업에 대한 자의식을 높이고요. 그래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일꾼으로 세계관과 정체성을 정립시켜야 합니다.”
마을의 문제는 마을공동체의 이름으로 더불어 해법을 찾고 풀어야 한다는 게 한 목사가 생각하는 마을만들기의 기본이자 지론이다.
해법은 마을공동체 밑그림으로 풀고 최근 한 목사는 주민 스스로 선발하고 헌신적이고 주체적으로 활동할 가칭 '마을공동체와 발전을 위한 주민공동회'를 발의해두었다. 마을만들기의 종합 밑그림을 그리려는 것이다.
지역 특성을 살린 생명농업 확대를 바탕으로 안전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농산물 생산 및
가공으로 도시민들이 찾아오고 머물러 농·도 교류를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폐쇄된 군부대 부지 4천여평을 환원 받아 마을공동 축제와 생활공간, 교육공간으로 활용, 농촌마을의 공동체성을 극대화한다. 고령화로 늘어가는 독거노인과 단독세대 들을 위한 복합생활공간 확보로 전통문화계승과 신․구세대 사이의 소통과 교제의 공간으로 삼는다.
마을청소년의 국제교류 및 농업교육, 도시청소년들의 농촌체험 활동의 상시화로 농업과 농촌살이의 연속성을 담보한다. 지촌리 대표농부 한 목사가 우리 농촌에 풀어놓는 현실적 해법이자 대안이다.
덧붙이는 글 | 오래된미래마을(cafe.daum.net/Econet) 원주민이자 한국스트로베일건축연구회(cafe.naver.com/strawbalehouse.cafe) 일꾼 정기석이 쓴 이기사는 농경과원예 12월호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