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날씨가 포근해 연탄 성수기가 10월 중순부터 시작됐다. 예년에 비해 한 달 남짓 늦어진 것이다. 지난 22일 오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전남 여수의 제일연탄 공장을 찾았다. 전남 관내에는 연탄공장이 강진과 화순에 각각 1곳, 여수에 2곳을 포함해 4곳이 있다. 여수의 공장에서 여수, 순천, 광양, 보성, 고흥, 곡성, 남해, 하동 지역까지 연탄을 보급한다.
제일연탄의 정칠권(49) 전무는 연탄공장이 여수엑스포 부지로 선정돼 이사를 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이곳에서 한솥밥을 먹는 연탄 수송업자가 자그마치 40여명. 그 식솔들을 포함하면 150여명이나 된다. 또 인근 연탄공장과 이곳의 상근자를 포함하면 18명, 이들의 가족이 약 60여명으로 총 210여명의 생계가 걸린 문제다. 이들은 여수에서 연탄 공장이 사라지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컨베이어 벨트 타고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연탄'둔탁한 쇳소리와 함께 공장의 기계가 힘차게 돌아간다. 연탄이 쉴 새 없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쏟아져 나온다. 연탄을 실어 나르는 화물차도 모처럼 활기를 찾았다.
연탄 배달 22년째인 이형진(58)씨는 부부가 함께 일을 한다. 남편과 20년 세월을 함께 한 그의 아내 역시 배달 일에는 이골이 났다.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수입이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그는 고유가로 최근에 연탄의 수요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연탄 배달 일을 해서 3남매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보성 벌교 월곡 마을에 사는 그는 새벽 4시면 집에서 나온다. 연탄공장은 오전 8시부터 가동하지만 빠른 순번을 받기 위해서는 새벽길을 나서야 한다. 그런 그보다 더 부지런을 떠는 사람들이 많아 제법 부지런하다는 그도 하루 2번 실어 나르기가 빠듯하다고 한다.
오늘 첫차는 고흥지역에 실어다 주고 왔다. 오후 4시께가 돼서야 2번째 짐을 싣는다. 오늘 늦은 시간에라도 배달을 해주겠다며 고객에게 전화를 거는 그의 얼굴이 무척이나 밝아 보인다.
"연탄 값이 자꾸만 올라 안타깝제, 무슨 대책이 있어야제"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부부가 함께 같은 일을 하시는데 어떻습니까?
"같이 다니니까 좋제, 오히려 좋제."
- 어떨 때 가장 힘이 드나요?"사방천지가 아파도 묵고 살랑께 할 수 없이 일을 해야 될 때죠."
-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요."촌에 배달을 갔었는데 노부부가 고생한다며 막걸리 값이라도 하라고 꼬깃꼬깃한 지폐를 건네주는데 가슴이 다 시리더라고요."
- 슬하에 자녀는?
"3남매인데 막둥이가 해군장교로 군 복무를 해요. 자식들 보며 보람을 느껴요."
- 월수입은 얼마나 됩니까."성수기에는 150~200만원 벌이 돼요."
- 가슴 아팠던 일이 있었나요."연탄 값도 없는 노인들 보면 마음이 아파요. 자식들이 있는데도 나 몰라라 하거나, 그들도 살기 힘들어 용돈을 못 보내 준께 짠하제. 영세민들은 국가에서 지급해준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데…, 정부의 연탄 지원금이 자꾸만 줄어든께 서민들이 사용하는 연탄 값이 자꾸만 올라 안타깝제. 무슨 대책이 있어야제."
- 동료의 말에 의하면 이장님이라고 하던데요.
"벌교 월곡리 이장을 12년째 맡고 있어요."
연탄 한 장에 40~50원 올라올해만 해도 벌써 연탄 한 장에 40~50원 올랐다. 연탄 1장의 가격은 300~330원이다. 배달 조건에 따라 인건비 때문에 다소 가격 차이가 있다. 연탄을 지게로 다 져 날라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데우는 연탄 배달부 이형진씨. 세상을 누구보다 더 따뜻한 마음으로 사는 그의 가슴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어느새 따스하게 전해져 온다. 아직도 연탄은 우리 서민들의 겨울을 책임져 주는 소중한 땔감이다.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연탄이 아니다. 서민들이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불처럼 훈훈한 겨울을 보낼 수는 없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