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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9일 금요일, 순례 7일째, 28km. 새벽 6시 40분 출발, 오후 2시 도착.

아침이다. 다시 길을 나서야 할 시간.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문득 발 앞에 있는 검은 가로줄이 눈에 띄었다. 그것들은 위 아래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개미들의 행렬이었다. 새까만 개미떼가 한 줄로 서서는 열심히 길 사이를 오고가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손가락만한 시커먼 민달팽이가 길 위에 올라앉아 진액을 뿜으며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달팽이를 먹는다는데, 이것도 먹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전 먹을 수 있다고 해도 안 먹을래요'하며 너스레 떨던 기억이 떠올랐다.

힘들지 않아? 자기 몸의 몇 배나 큰 밀알을 물고 느린 걸음을 걷던 개미
▲ 힘들지 않아? 자기 몸의 몇 배나 큰 밀알을 물고 느린 걸음을 걷던 개미
ⓒ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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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개미들의 행렬에 눈길이 간 것을 보면 그동안 걸어오며 나도 모르게 개미들을 밟아왔음이 분명하다. 그것이 개미뿐이랴, 거대한 민달팽이도, 꽃들도, 그 밖에 내가 있는 줄도 몰랐던 수많은 존재들이 '순례를 한다'는 나의 구실 아래 목숨을 빼앗겼을 것이다. 문득, '나는 대체 뭘 위해서 지금 걷고 있는가'하는 위험한 질문이 떠올랐다. 자리에 주저앉아 개미들의 행렬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대체 왜 이렇게 열심히 꼬리를 지어 길을 걷니? 너희들은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각각의 개미들의 입에는 하얀 것이 물려 있었다. 그것들은 크기도 하고 작기도, 길기도 했다. 아! 너희들 지금 식량을 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구나. 그러고 보니 큰 개미는 큰 식량을, 작은 개미는 작은 식량을 물고 있다. 어떤 녀석은 덩치에도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밀알 하나를 통째로 옮기느라 낑낑거리며 느린 걸음을 하고 있었다. 또 어떤 녀석들은 몇 개의 밀알이 달린 줄기를 골라잡아 앞에서 한 녀석이 당기고 뒤에서 또 한 녀석이 밀며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

개미들의 밀알은 마치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 내가 등 뒤에 짊어진 순례자의 배낭과 닮았다. 매일 풀고 다시 여미는 일을 반복하는 배낭 속에는 여벌의 옷과 침낭, 자질구레한 위생도구들 한 짐, 그리고 여행을 증명하는 서류와 여비, 그 날 사 둔 음식 약간이 전부다. 길  위의 버거운 무게이자 동시에 이 걸음을 이어가게 해주는 소중한 물건들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이 향하는 곳은 어디이며, 등짐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대체 얼마나 무거운 배낭이기에 나는 항상 보이지도 않는 것이 버겁다고 괴롭다며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것들이 삶을 '이어가게' 해 주는 것들은 아닐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라 리오하 지역의 간판도시, '로그로뇨'를 향해

1시간쯤 걸어 '산솔(Sansol)'에 도착했다. 90m를 더 걸으면 온천(?)이 나온다는 매력적인 광고판을 따라 눈을 돌리니, 웬 벌판에 집 한 채만 덩그러니 얹혀 있다. 아마도 저곳이 순례자들 사이에서 자연에 가까운 이색 숙소로 유명한 곳인가 보다.

때 마침 길 위에서 어제 산솔의 숙소에서 하루를 묵었다는 노르웨이 아줌마를 만났다. 그녀는 경탄을 마지않았다.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화장실도, 샤워시설도, 아무것도 없이 태고의 인간이 되어 샘에서 씻고 들판에서 해우(解憂)하고 그렇게 자연의 품에 안겼다고 했다. 그렇게 살 수가 있었다고 했다. 멋진데?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연이었다. 오늘도 여전히 와인으로 유명한 스페인 '라 리오하(La Rioja)'지방을 지나는 중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오늘 도착할 '로그로뇨(Logroño)'는 라 리오하 지역의 간판 도시다. 어젯밤 레몬맥주 술잔을 기울이며 S씨는 이곳에 '타파스(Tapas)'로 유명한 거리가 있다며 로그로뇨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이제 겨우 두어 시간을 걷기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지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늘 밤 맛보게 될 타파스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했다.

그 때,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 위에 서 있는 자동차 한 대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익숙한 가방을 맨 순례자가 자동차 옆에 서 있었다. 차 주인과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점점 차와 순례자에 가까워지자, 나는 그가 바로 스페인 소녀 C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 여기 있었구나! 반갑다!"
"어, 너구나…, 이리 와 봐!"


나는 C옆에 서 있었고, 그녀는 웃으며 차 안의 운전자를 내게 소개해 주었다. 아니, 이 분은 며칠 전 팜플로나에서 내게 와인학(?) 강의를 해 주셨던 분이 아니신가.

"아주머니가 로그로뇨 근처에 사는 분이라서, 팜플로나에서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대. 지금은 로그로뇨에 일이 있어서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마침 나를 알아보고 이렇게 만났지 뭐니!"

그렇구나!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는 C와 아주머니의 대화를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배낭을 풀기 시작했다.

"우리가 원하면 배낭을 로그로뇨의 숙소에다가 맡겨줄 수 있다고 하시는 걸? 너도 괜찮으면 같이 보내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순례자들이 힘든 구간, 혹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택시 서비스를 이용하여 다음 숙소까지 짐을 보내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일주일째, 앞으로 갈 길이 더 먼데 벌써부터 내 몫의 짐을 남에게 떠넘긴다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벌써 일주일째, 매일 20km가 넘게 걷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길 위에서 다시 만난 인연이 놀라웠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냐 하는 생각에 성큼 가방을 내려놓았다.

구름 걷히는 하늘 순례의 일상적인 풍경
▲ 구름 걷히는 하늘 순례의 일상적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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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와 나는 사라지는 자동차 뒤통수를 향해 가벼워진 어깨 위로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려 '고맙습니다~!'를 외치며 힘차게 손짓하였다. 걸음마저 가벼웠다. 길은 내리막의 시작이었다. 이른 아침 자욱했던 구름은 자취를 감추고 새파란 하늘이 머리 위로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방금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며 서로 웃음을 주고받았다.

"우와~ 나 이 길 걸으면서 처음으로 뛰어보는 거야!"

나는 아스팔트 위를 뛰는 듯 날며 휙~ 뒤를 돌아 C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게 눈을 찡긋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음악 좋아하니?"
"그럼! 정말 좋아하지."
"좋아, 내 모바일로 스페인 음악 한 번 들어볼래?"


스페인에 온 지도 7일째, 며칠 전까지 함께였던 mp3를 짐으로 보내버리고 난 후 음악은 통 듣지 못했다. 게다가 스페인 음악이라니! 처음으로 듣는 것이다. 그것도 사방 천지에 아무도 없는 초원에서 C와 둘이서.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이리저리 움직이며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이건 지금 스페인에서 가장 유행하는 음악이야. 드라마에 나와서 사람들이 다 알지. 나도 좋아해!"

C는 한 곡씩 설명해 주었고, 나는 흥이 과한 듯한 멜로디와 가사의 억양에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었다. 곧장 그녀는 핸드폰을 바지 옆 주머니에 쏙 넣고 나를 앞질러 리듬에 맞춰 몸을 사뿐사뿐 움직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나 역시도 알아듣지는 못하는 노래지만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에 맞춰 걸음을 내딛었다. 꺄르르 웃으며 서로의 사진을 찍기도 하고, 우리는 몇몇 순례자들을 스쳐지나갔다.

문득 노란 티셔츠를 입고, 2리터짜리 물병을 가방에 끼고 열심히 걸어가는 폴란드인 P가 눈앞에 보였다. C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P는 지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고는, 곧 우리가 가방 없이 걷고 있음을 알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희들, 가방은 어떻게 된 거야?"

'우리는 서로 어떻게 말할까?'하며 눈치를 보며 웃음을 주고받았다. 곧 C가 '저기, 나무 아래에 버리고 왔어요!'하고 말했고. 나는 '그럼 안 믿을 거야~'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녀가 정황을 설명하고, 나는 그런 두 사람을 스쳐 길을 걸어갔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며칠 내내 얼굴을 마주친 친구인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걷는 그에게 미안했다. 우리들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면 어쩌지? 나는 그가 좋았는데.

'비아나'에서 체사레 보르자를 만나다

길은 이어져 '비아나(Viana)'라고 하는 마을에 도착했다. 활기를 띠는 오전시장. 거리에 내어놓은 나무상자에는 각종 채소와 식재료들이 싱싱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장을 보러 나와 둘셋씩 모여 미뤄놓은 수다를 떨고 있었고, 아이들은 비좁은 골목마다 모여들어 뜨거워지기 시작한 햇빛을 받으며 뛰어놀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체사레 보르자'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인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거리마다 휘날리는 휘장 같은 것이며 커다란 옥외광고판 같은 것들은 뜬금없는 세상에서 온 나조차도 그 이름(만)을 알고 있는 역사 속의 인물과 깊은 관계가 있는 곳임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도착한 성당 바닥에는 금빛을 띠는 철판에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드문드문 '체사레 보르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혹시 여기가 체사레 보르자랑 무슨 관계 있는지 알아? 여기 바닥에 있는 철판에 쓰여 있는 글 설명 좀 해 줄래?"
"응? 어디 보자…,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아마 여기서 죽었나본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의 매력적인 저서명으로 이름을 익힌 그의 이름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길을 걸을 때에는 목적지에 가는 것이 급해서 나중에 한국에 오면 찾아보겠노라 다짐하고 스쳐갔다. 이제 그 말빚을 갚아보려고 한다.

체사레 보르자, Cesare Borgia, 1475년 이탈리아 출생~1507 스페인 비아나 사망. 후에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되는 로드리고 보르자와 그가 가장 사랑한 정부 반노차 카타네이 사이의 서자. 이탈리아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1491년(16세)에 팜플로나 주교, 아버지가 교황이 된 후 1492년에 발렌시아 대주교가 된다.

아버지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결혼관계로 정치적 세력을 넓히고, 동시에 이탈리아에서 땅을 떼어내 보르자 공국을 만들기 위한 영토점령을 시작한다. 정치가로서의 아버지와 행동가로서의 아들 체사레 콤비의 야망은 전 이탈리아의 지탄을 산다. 아버지가 죽고 그의 원수가 차대 교황으로 등극하자 그는 체포와 구금의 신세가 되고, 혈연관계였던 스페인 나바라 왕에게 피신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어난 작은 전투에서 목숨을 잃는다.

정치학의 교본(?)쯤으로 간주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모델로 하는 이가 바로 체사레 보르자였다. 마키아벨리가 체사레 보르자의 세력에 가담하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이 이 책이 나올 수 있던 이유란다. 상대에게 웃음을 띠며 심장을 베고, 뒤통수에 직격탄을 맞출 수 있는 냉혈한이자 행동가로서 유명한 이였다고 한다.

체사레 보르자는 놀랄 만큼 대조적인 면을 많이 가진 사람이었다. 마키아벨리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는 때로는 과묵해서 속마음조차 드러내지 않지만 수다스러운 허풍쟁이일 때도 있었다. 신들린 듯한 활동력이 폭발할 때는 밤새도록 작전을 짜고 지시를 내리곤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나태함에 빠져 있을 때는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빈둥거렸다. 그는 걸핏하면 화를 내고 측근들한테 다소 냉정하게 대했지만 백성들한테는 매우 관대했고 현지 주민의 운동 경기에 참가해 씩씩하고 멋진 모습으로 두각을 나타내기를 좋아했다.

적어도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이 사람, 나랑 조금 닮았잖아?'하며 피식거릴 수 있었다. 어찌되었건 정부를 둔 교황이 교권을 잡고 땅따먹기를 하는 르네상스 시기, 열정의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한 어느 역사 속의 인물이 숨을 거두었던 땅에 멍하니 서서 '여기가 어디야?'라며 천진난만하게 있었다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이것으로 말 빚 하나는 갚았다.

사실 나는 그 동네가 좋았다. 작고 아기자기하며 사람들의 활기로 살아 있는 느낌이 꿈틀거렸던 비아나에서 하루를 지내고 싶었다. 그리고 아침에 길을 나설 때에 역시 '오늘 목표는 로그로뇨이지만 걷다가 마음이 동하는 곳이 있다면 그 곳에서 지내도 좋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짐은 이미 놀라운 우연으로 만난 아주머니의 자동차 짐칸에 실린 채 이 길을 따라 10km는 족히 더 걸어야 할 곳에 먼저 도착했을 것이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길을 향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내가 만약 이 길에 다시 선다면, 반드시 이 마을에서 여정을 풀리라….' 벌써 '다음' 순례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 하루 이어지는 길 위의 '기적'

더 이상 가방 없이 걷는다는 것은 우리를 흥겹게 해 주지 못했다. 음악은 이미 멎은 지 오래였으며, 춤사위는 잊혀지고 말았다. 12시를 넘긴 햇빛은 그 맹위를 여실히 떨치기 시작했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분명 로그로뇨인데, 어찌된 일인지 이 도시는 걸어도 걸어도 닿을 수가 없다. 점점 대도시에 가까워진다는 것이 분명했다. 잘 닦인 넓다란 도로와 황량한 살풍경, 더욱 지쳐간다. 우리들은 점점 말을 잃어갔다. '차라리 혼자 걷는 게 나았을까? 난 이런 느낌이 싫어….' 마음 속으로 구시렁대기 시작한다. 짐을 덜 수 있다고 환호를 내지르며 좋아하던 때는 언제였던가.

갑자기 우리를 마주보며 지나쳐가던 차 한 대가 멈췄다가 다시 길을 간다. 그리고 잠시 후 바로 그 차가 유턴을 하여 우리가 걷는 길 쪽으로 가까이 와 멈췄다. 다름 아닌 우리들의 짐을 로그로뇨의 숙소까지 보내주었던 아주머니가 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운전석 옆에는 또 다른 아주머니가 타고 있었다. C와 그녀들은 스페인어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나는 여전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열심히 고개만 끄덕였다. 아마도 짐은 숙소에 잘 있으니 열심히 걸어가라는 이야기라고 추측하기만 한다.

그리고 방금 장을 보고 오셨는지, 차 뒤쪽에서 비닐을 부스럭거리다 복숭아 두 개를 내미신다. C가 내켜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나 역시도 괜찮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뭔가를 꼭 주고 싶으셨는지 자동차 위에 있던 부채를 펼쳐서 C에게 주신다. 그리고 가방을 뒤적이시며 비슷한 모양의 부채를 나에게 쥐어주셨다. 착! 하고 펼쳐 들면 연한 베이지색의 부챗살이 촘촘히 이어진 예쁜 것이었다. 마치 아리따운 여인네들이 망사장갑을 끼고 살포시 들어 바람을 즐기기에 알맞은 것이었다. 땀에 쪄든 우리네 순례자에게는 퍽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아주머니는 나를 불러, 가방에 들어 있던 쪽지 하나를 쥐어주신다. 순례와 관련되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며, 숙소에 도착하면 C에게 부탁하여 꼭 번역을 받아 읽어보라고 하신다. 작은 종이에는 몇 문장의 스페인어가 적혀 있었고, 물음표로 끝나는 것을 보아 질문 같기도 했다. 나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시는 건가? 어쨌든 지금 내게는 도통 알 수 없는 비밀문서이기 때문에, 로그로뇨에 도착하면 C에게 번역을 부탁해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길 위의 기적은 이렇게 하루하루 이어지고 있었다.

로그로뇨 초입 오른편에 끝없이 이어지는 포도밭
▲ 로그로뇨 초입 오른편에 끝없이 이어지는 포도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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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기일전한 우리들은 다시 열심히 걷기로 했다. 곧 로그로뇨의 돌 이정표가 나타났고, 우리들은 이제 곧 도착이라며 신이 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끝없는 포도밭이 다. 저 멀리 비쭉 올라선 성당이 있는 곳이 아마도 우리의 도착지이리라. 그렇다면 로그로뇨는 아직도 너무나, 너무나도 멀었다! 부채를 펼쳐들며 한량놀이를 하던 것도 순간, 과연 오늘 도착할 수는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있지, 부채를 가지고도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어."
"그래?"
"응. 옛날에 여자들은 그랬대. 나도 잊어버렸지만…, 이렇게 어깨를 톡톡 치거나 입을 가리거나 하는 것으로 말 대신 뜻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거야."
"그래…."


거대한 묘지를 지나고 다리를 건너, 숙소에 도착

부채와 여성의 의사표현 방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기에 우리들은, 적어도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잿빛 콘크리트 바닥을 달구는 태양 아래, 거대한 묘지를 지나고 다리를 건너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이미 도착한 순례자들로 붐비고 있었고 마당 한 가운데에서 졸졸거리는 작은 연못은 당장 들어가 첨벙거리고 싶을 정도로 청량해 보였다.

기진맥진해 나타난 우리 둘 앞에 숙소의 봉사자 아주머니가 오셔서 파라솔 아래 자리를 권하고 잠시 쉬라고 하신다. 물을 건네주시고, 곧 넓적한 접시에 담긴 멜론 조각을 건네셨다. 씻지도 못한 손은 안중에 없이 곧장 집어 들어 입에 넣은 멜론은 시원하고도 달콤했다. 후에 읽게 된 작은 글에서 도착한 순례자에게 과일을 제공하는 것이 이 숙소의 오랜 전통이라고 했다. 그 아름다운 전통 속에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계단도 없는 2층 침대의 위쪽으로 곡예 하듯 올라가 짐을 풀어놓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널었다. 정신을 차리고 연못이 있는 1층 마당으로 나오니 이미 아시아의 여장부들인 S씨, Y언니, J씨가 도착해 파라솔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가방마저 자동차에 내맡긴 채 걸었음에도 그녀들보다 늦었다. 얼굴을 맞대는 것이 꺼림칙했다. 대체 이 사람들은 얼마나 빨리 걷는 거지? 나는 왜 뒤처지고 있는 거지? 그런데 대체 이런 생각으로 언니들 얼굴도 보지 못하는 나는 뭐지?

마당 한 가운데 차가운 연못에 걸터앉아 시큰거리는 발목을 담갔다. 얼음 같은 차가움이 곧 시원함으로 바뀌고, 복잡한 생각들과 짜증나는 아픔도 덜해졌다. 좀 늦으면 어떻고 침대에 오르기 위해 아등바등 해야 하는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내일이면 해가 채 뜨기도 전에 떠나야 하는 오늘 단 하루 내게 허락된 안식처인 이곳에서.


#산티아고가는길#스페인#도보여행#성지순례#카미노데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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