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내가 김장을 했다. 따라서 덩달아 나까지 자정이 넘도록 그 바라지를 하느라 힘들었다. 우선 마늘을 일일이 까서 다듬고 찧어줘야 했다. 소금에 절인 배추를 흐르는 수돗물에 세척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평소 위생을 제일주의로 치는 ‘깔끔 아줌마’인 아내는 가족의 건강과 맛을 위한 김장김치 담그기에도 그야말로 지극정성이다. 또한 내 가족이 먹는 김치는 사 먹어선 안 되고 반드시(!) 손수 담가야한다는 사관을 지니고 있는 ‘오리지널 신토불이’ 아낙이다. 주지하듯 김장을 하자면 여간 까다롭고 힘든 게 아님은 물론이다. 우선 김장의 재료인 배추와 무, 그리고 마늘과 파 등의 양념을 신경 써서 골라야 한다. 그렇게 유심하게 고르는 연유는 우선 김장의 재료가 국산인지, 아님 중국산 저가의 농산물인지를 판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젯밤 아내는 수 시간의 노고 끝에 드디어 김장김치를 대충 완성하였는데 우선 배춧잎 사이사이에 영양과 맛난 속을 넣어 담근 가장 보편적인 김치인 통배추 김치를 열 포기 이상 담갔다. 다음으로 무를 삼삼한 소금물에 담그고 파와·생강,·마늘과·소금 외 고추 등을 썰지 않고 넣어서 담근 국물 위주의 김치인 동치미도 한 통을 완결했다. 굵기가 손가락보다 약간 큰 어린 무를 무청 째로 여러 가지 양념을 하여 버무려 담근 김치인 총각김치는 명실상부한 총각인 아들이 더 좋아하게 생겼다. 하여간 엊저녁, 아니 오늘 새벽 한 시까지 김장을 담그느라 파김치가 된 아내였는데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일어난 아내는 여전히 동동거렸다. 그러더니 역전시장에 가서 파 한 단과 다섯 개 정도의 무를 더 사 오라는 것이었다. 기왕지사 김장을 담그는 김에 깍두기까지를 ‘서비스’ 하겠다며.
궁시렁거리면서도 내가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는 게 낫겠다 싶어 냉큼 시장에 갔다. 아내의 하명을 좇아 무와 파 외에도 청국장까지 사서 집에 오는데 집 입구의 골목에서 이웃집 할머니가 손수레에 배추 속에서 뜯어낸 배추 잎새기를 한아름 싣고 텃밭으로 가시는 것이었다. “할머니도 오늘 김장 하세요? 근데 몇 포기나?” 여쭈니 무려 백 포기하고도 스무 포기를 더 하신다고 하셨다.
“(객지에 나가있는) 아이들이 먹을 것까지를 하자면 이렇게는 해야 돼.” 겨우 열 포기 정도의 김장을 담갔음에도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도 ‘김장 완수’의 진척이 더딘 우리집을 반추하자니 오늘 그 할머니의 노고가 예사롭지 않았다.
자고로 김장은 힘들다. 그렇지만 거기에 가족 모두의 손이 가세하고 합세한다면 그 김장김치의 맛은 더욱 살갑고 정겨우며 웅숭깊은 맛으로 거듭 나리란 생각을 하며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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