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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성지고 중앙현관
영산성지고 중앙현관 ⓒ 이호랑
전라남도 영광은 어떤 곳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단연 '굴비'다. 그러나 몇 가지가 더 떠오를 수 있다. 원불교(圓佛敎)를 설립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이 태어난 곳이고, 그가 원불교를 개창한 곳이다. 그리고 원불교의 교리를 모토로 하고 있는 '영산성지고등학교'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산성지고등학교는 1998년 3월 10일 개교한 특성화고등학교로 기숙사 제도로 운영되는 인가형 대안학교다. '대안학교 마을만들기' 팀은 2007년 11월 16일, 전라남도 영광에 위치한 영산성지고등학교(이하 영산성지고)를 방문했다.

전라남도 영광은 서울에서 꼬박 4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곳이다. 이 때문에 팀원들 모두 답답한 차안에 오랜 시간 갇혀있어야 했다. 짐을 내리며 보니 넓고 웅장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약간 큰 규모의 산내분교와 같은 느낌이었다.

미리 연락을 주고받았던 최수경 선생님이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본관으로 향했다. 걸어가는 길에 넓은 크기의 잔디밭이 눈에 들어왔는데, 양 끝에 축구 골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운동장이었다. 본관에 가까워질수록 보이지 않던 주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벽에 일원상(원불교의 상징, O)이 새겨진 건물들이 가끔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지혜의 샘'이라는 학교 도서관으로 안내되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한쪽에 마주붙인 책상들과 의자가 놓여있고, 한쪽에 책이 꽂혀있는 높다란 책장들이 모여 있었다. 하나둘씩 자리에 앉고 전부 모인 것을 확인한 선생님이 영산성지고에 대한 소개를 시작하셨다.

영산성지고는 특성화학교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일반교과과정도 배운다. 그러나 일반학교처럼 많은 과목을 공부하지는 않는다. 그것보다는 '특성화 교과'라는 것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데, 산악활동과 마음일기, 생활요가, 생활명상으로 구성되는 계속교과와 도자기공예, 사물놀이, 생활체육 등으로 구성되는 선택교과로 나뉜다.

여기서 종교 성격이 가장 많이 묻어있는 과목이 '마음일기'다. 마음일기란, 자신이 그날 하루 동안 겪었던 마음의 변화, 마음의 사용, 그날의 경계 등을 마치 일기를 쓰듯이 적는 것이다. 학교 홈페이지의 한 글을 예로 들어보겠다.

6월 16일
'늘푸른과'는 이번 봉사활동을 영광노인전문병원으로 갔다. 처음에는 진짜 힘들었지만, 둘째 날에는 쉬웠다. 도서실 정리하는 일을 하는데 책이 엄청나게 많아 상당히 힘들었다. 이때 경계가 왔다.


일을 하는 사람은 하고 안 하는 사람은 안 하는 것이었다. 노는 아이들 중에는 ○○이도 △△이도 있어서, 일할 때 같이하고 쉴 때 같이 쉬자고 하였더니 엎드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짜증이 나면서 경계가 생겼다.

그런데 1학년들이 다 쳐다보고 있는데 그럴 수도 없어서 나라도 열심히 해야 저 애들이 배우겠다는 생각을 하고 일만 열심히 했다. 조금 있다가 보니 1학년들이랑 ○○이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아까 짜증낸 것이 참 미안했다. 오늘은 마음공부가 참 고맙다.

<감정> 동원이가 마음공부 덕을 톡톡히 보았구나. 참 잘했다. 마음공부를 하다보면 상대방을 탓하기보다는 내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먼저 바라보는 습관이 생긴단다. ○○이는 아마도 잠시 피곤하거나 아팠을 거야. (후략)

 쉼터
쉼터 ⓒ 이호랑
'경계'란, 삶 속에서 내 마음과 만나는 모든 상황들, 마음을 요란하게 또는 불편하게 하는 모든 사건과 사실들을 말한다. 마음공부는 '경계'를 인식하고, 경계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다.

학생들은 이런 하루하루의 변화들을 일기로 적게 되고, 지도교사와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럼으로써 감정의 경계에 대해 학습하고, 인내심을 기르며, 상대방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온화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간다.

영산성지고 3학년 OOO(19)양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성질이 급한 편이었는데, 마음공부를 하면서부터 인내심이 생기고, 뒤로 한발 물러나 바라보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화가 나거나 혼란스러울 때,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렀다는 것이다."

소개가 끝나고 학교를 둘러보기 위해 도서실을 나왔다. 기다란 복도를 거닐며 둘러보니 과학실 같은, 일반학교에 있을 법한 공간도 종종 눈에 들어왔다. 건물 밖으로 나와 특성화 교실이라 소개하며 조그만 흙집으로 안내해주셨다.

보여주신 곳은 도자기 공예품이 진열된 작은 건물이었다. 학생들이 손수 만든 듯한 도자기들이 선반 위에 가득 놓여 있었다. 다른 방에는 도자기를 구울 수 있는 가마가 있었다. 도자기 공예수업은 여기서 진행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도자기 공예는 선택교과다. 학생들은 하고 싶은 특성화 수업이 있으면 원하는 대로 참여할 수 있다. 원하는 수업이 없더라도, 여럿이 이야기하면 학교에서 수업을 만들어준다.

특성화 교실을 나와 다시 본관으로 걸었다. 수업 시간이라 그런지 밖에 나와 있는 학생을 보기 힘들었다. 가는 길에 나란히 서있는 두 건물이 보였다. 한 건물로 여학생 몇 명이 들어갔다. 두 건물은 남자 기숙사와 여자 기숙사였다.

영산성지고의 기숙사에는 '과'라는 것이 있다. 다른 말로는 '세대'라고 한다. 남자 기숙사에는 7개, 여자 기숙사에는 3개의 과가 있는데 각각 늘푸른과, 온누리과 등의 특별한 이름이 정해져있다. 한 세대(과)가 머무는 공간은 기숙사다운 적절한 구성인데, 가운데에 열 명 정도가 모여 앉을 수 있는 거실이 있고, 근처에 4개의 방이 있다. 한 곳은 지도교사가 쓰고, 남은 곳은 한 곳당 3~4명이 들어가게 되어 한 과당 10~12명의 학생들이 머물게 된다.

한 개의 과에는 1~3학년이 골고루 배정되어서 약 10명의 학생들, 과대표 1명, 지도교사 한명이 한 세대를 이룬다. 과대표는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거나 문제가 있는 친구가 있으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자신이 속해있는 과의 아이들을 대표해 이야기한다. 지도교사는 아이들이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돌보며, 부모와 오랜 시간 떨어져 있는 아이들에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준다. 

'과'라고 표현해 딱딱한 이미지가 연상될 수 있지만, 한 세대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가족처럼 여긴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항상 같이 자고, 함께 물건을 쓰고,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많은 정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선생님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라는 질문에 3학년 OOO(19) 양은 "든든하고,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고, 나를 이끌어 주는 존재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기숙사, 넓게는 영산성지고라는 공간에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부모를 대신할 수 있을 만큼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아무리 상대가 가깝고 편해도 함께라면 불편한 점이 있기 마련이다. 학생들이 느끼는 기숙사의 단점은 무엇일까? 3학년 이솔(19)양은 "물건은 허락을 받고 써야 하는데, 허락도 받지 않고 쓰고는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취침시간, 청소주기 같은 생활패턴이 다른 아이와는 많이 엇갈리게 된다. 나까지 생활이 엉망이 돼버리고, 처음엔 쉽게 타협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다분히 다른 사람과의 공동체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문제점들이다. 

 좌담 중인 학생들
좌담 중인 학생들 ⓒ 이호랑

여러 가지 단점들이 있지만, 그것이 있음으로 인해 '장점'들이 생겨난다. 3학년 OOO양은 이렇게 말한다. "공동체생활에 있어서 스스로의 위치가 어떤지, 또 자신은 어느 위치에 있어야하는지를 알 수 있다. 공동체 생활이라는 것에서 스스로가 감수해야 하는 부분들을 알게 되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하고 싶지 않아도 상대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어느 정도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영산성지고는 두 가지 점이 눈에 띄는 학교였다. 마음공부를 통해 자신을 알고, 자신에게 최선을 다한다. 기숙사 생활을 통해서 타인을 알아가고,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터득한다. 마음공부와 '과'에서의 기숙사 생활. 이 두 가지 특징들은 자기수양과 공동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함께하는 학교, 자신을 만들어가는 학교. 영산성지고등학교는 이 글에서도, 내 머릿속에서도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하자센터#10대#청소년#영산성지고등학교#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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