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의 자메이카는 햇살이 강렬한 곳이다.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가 다른 어떤 섬들보다 더 매혹적이다. 자메이카는 1493년에 콜럼버스가 발견한 이래 스페인과 영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그곳 원주민들은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노예 출신들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영국 군인들은 그곳의 원주민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했다. 그들은 원주민 여성들이 원하지도 않는데도 성적인 관계는 물론이요, 임신까지 강요했다. 더욱이 남자 원주민들은 심한 모욕과 고역에 시달려야 했다. 그만큼 자메이카 사람들에게는 남모를 애환이 깊게 서려 있다. 그 처연한 역사를 자메이카 특유의 레게음악으로 꿰뚫고 나간 가수가 있었으니 '밥 말리'다. 스티븐 데이브스의 <밥 말리>(여름언덕, 이경하 옮김)는 자메이카 출신의 전설적인 영웅 밥 말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밥 말리의 어린 성장에서부터 반항기와 꿈의 사춘기, 그리고 본격적인 음반 제작과 함께 세계 곳곳을 돌며 자메이카는 물론이요, 아프리카 모든 나라들의 자유와 행복을 외쳤던 투쟁의 음악사를 소개하고 있다. 밥은 자메이카의 서부 빈민가 트렌치타운에서 살았다. 10살 때 아버지가 죽자, 홀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어머니를 따라나선 곳이 그곳이었다. 트렌치타운은 그야말로 ‘천역의 집’이었다. 좁은 공간 속에 서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난무하는 폭력들이 그 지역의 실체였다. 함석판과 시멘트 고철 덩어리들이 나뒹구는 모습은 흡사 황폐화된 전쟁터였다. 밥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공을 차고 노래에 열중했다. 그야말로 그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물론 그는 생계를 꾸려나가는 어머니는 늘 안쓰러워했다. 그 까닭에 15살 무렵 학교를 그만둔 그는 용접공장에 취직했는데 쇳조각이 눈에 튀는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그것이 노래에만 전념케 하는 기폭제가 되었고, 그 무렵 위대한 스승 조 힉스도 만났으니 그것이 행운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뒤 18살 무렵, 그의 어머니는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당연히 밥은 트렌치타운에서 홀로 살며 떠돌이 신세로 전락한다. 친구들과 함께 그는 거리에서 잠을 잤고, 남의 주방에서 밥을 얻어먹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 시절 어머니에 대한 향수가 얼마나 사무쳤을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 유명한 <No Woman No Cry>도 바로 그와 같은 흐름에서 나온 노래다. 물론 그 노래는 단순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 영국 군인들에게 성적인 유린을 당한 자메이카 모든 여성들에 대한 위로의 노래다. 또한, 아이를 낳자마자 내팽개치고 떠나버린 영국 군인들에 대한 반항심의 표출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았던들 자신이 직접 그 노래를 지었을 리 만무하다. “<트렌치타운 록>은 게토의 사람들을 정의로운 소외자로 정의하고 있었고 그러한 정의를 통해 자메이카를 양분시켰다. 그것의 경쾌한 선율과 맥박이 뛰는 것 같은 리듬 그리고 자존감으로 충만한 언어가 자메이카의 젊은이들에게 ‘그들’과 ‘우리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선명하게 부각시켜 주었다. <트렌치타운 록>은 이후 다섯 달 동안 자메이카에서 인기순위 1위 자리를 고수했고 밥 말리는 국가적인 영웅이 되었다.” (183쪽) 1963년 그는 자메이카의 독립 이후 3인조 보컬 그룹을 결성한다. 이름하여 ‘웨일링 웨일러스’가 그것이다. 그리고 크리스 블랙웰의 아일랜드 레코드와 계약을 한 뒤에는 그야말로 날개를 단 듯 국제적인 명성을 날린다. 물론 1966년 2월 10일에는 사랑하는 리타 앤더슨과 혼인하여 즐거운 신혼생활을 보내기도 한다. 그만큼 삶과 음악에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그날의 연주는 웨일러스에게 있어 황홀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밥은 가죽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의 등 뒤로는 굵은 머리채가 마치 작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황홀경에 빠진 듯한 그는 노래하는 동안 종종 자신의 얼굴을 때리거나 긁었고, 노래를 하지 않는 동안에는 연주에 맞추어 힘찬 걸음으로 무대를 활보하거나 즉흥적인 봉고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 공연은 아마도 밥 말리에게 있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432쪽) 그런데 그가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던 1981년, 갑작스런 암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야말로 36세의 짧디 짧은 인생이었다. 비행기 활주로를 달려 이제 막 날개를 접고 숨가쁘게 비행하려는 한 젊은이의 인생이 거기에서 멈춰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가 불렀던 수많은 곡들은 지금껏 자메이카 사람들은 물론 모든 아프리카 흑인들의 가슴 속에 깊이 박혀 있고, 흑인들을 단결시켰던 가장 값진 메시지로 살아남아 있다. 특별히 이 책이 다른 책과 다른 점은 밥 말리와 가진 인터뷰들은 물론이요, 그와 함께 음반작업에 참여했던 많은 동료들의 증언까지 수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밥 말리를 읽는 남다른 묘미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살아생전 그가 불렀던 <One Love, People Get Ready><Love is My Religion><Buffalo Soldier>등 많은 노래들을 CD에 담아냈더라면 그의 투쟁의 음악사가 더욱 빛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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